여행자에게 날씨는 중요하다. 찌는 더위나 비가 내리는 험한 날씨는 스케줄에 제한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준비해 온 것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다음날은 옥스퍼드, 그다음 날은 파리로 이동할 예정이어서 런던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오늘뿐이다.
1)출근하는 런더너들 2)3) 대중교통으로 버킹엄궁전으로 향하는 중
숙소를 나와 길을 걷는데, 시내 쪽으로 향하는 출근러들 중에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이는 내가 평소에 자전거 라이딩을 취미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자동차 정지선 앞에 자전거 정지선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자전거 라이더들에 대한 엄청난 배려이다. 도로에 자동차와 자전거가 잘 공존하도록 만들어 둔 법과 배려가 부럽다.
우리는 오늘의 첫 투어지로 잡은 버킹엄 궁전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환승해서 가기로 했다.
전날 2층 버스를 다섯 번이나 탔더니 벌써 2층 버스가 친숙해졌다. 지하철 서클(Circle) 라인의 지하철 객실은 유난히 작았던 피카딜리 라인과 달리 우리에게 친숙한 일반적인 사이즈다.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
버킹엄 궁전은 영국 왕실의 관저이며 왕실의 대명사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주중에 지내는 곳이며, 궁전 앞에서의 근위병 교대식이 유명하다. 가끔 TV로 그 교대식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서 궁전 앞에 왔다. 솔직히 여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없다. 유명한 관광지여서 찾아왔을 뿐이다. 우리의 일정과 근위대 교대식의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않고 다음 스케쥴 장소로 이동할 것이다.
우리는 궁전 앞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쿨하게 이동해서 인근의 세인트 제임스 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버킹엄 궁전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씩!
관광객들로 늘 붐비던 뉴욕 맨해튼 인근에서 몇 년을 살면서, 최고의 관광은 어떤 특별한 장소를 보거나 체험하는 것보다 일상의 거리를 걷는 것이라 평소 생각했었다. 영국의 버킹엄 궁전에서 세인트 제임스 공원을 거쳐 트라팔가 광장과 내셔널 갤러리까지의 런던 걷기를 했다. 궁전 앞을 떠나 공원을 가로 길러 걷는데 이것만 해도 여행이 실감이 되었다.
공원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는데 한 건물 앞에 긴 줄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처칠 워 룸(Churchill War Room, 처칠의 전쟁 작전상황실) 박물관이다. 전쟁 당시 실제로 처칠이 사용했던 작전 상황실 벙커란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다른 일정들이 많아서 따로 계획에 넣어 둔 곳이 아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을 발견하게 되어서 그냥 기념으로 사진 한 장씩 찍고 이동했다.
1)세인트 제임스 공원 2)3)처칠 워 룸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우리는 내셔널 갤러리 앞 트라팔가 광장에 도착했다. 런던에 와서 처음으로 왔던 곳이다. 전날에는 다른 일정들 때문에 관람을 오늘로 미뤄두었었다.
1)트라팔가 광장에서 내셔널 갤러리를 배경으로 2)3) 내셔널 갤러리에서 광장을 배경을으로
내셔널 갤러리는 대영박물관과 함께 영국 최대의 미술관 중 하나이다. 초기 르네상스에서 19세기 후반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의 전시품 관람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지역 중심에 있는 이 건물 자체가 작품이다. 건물 외형 자체가 멋있고, 런던의 분위기와도 조화를 잘 이룬다. 바로 앞의 트라팔가 광장과 이어져서 사람들이 이 곳에서 쉬기도 하고 여러 아트 퍼포먼스도 펼쳐지고 있는 풍경 자체가 예술이고 런던의 멋으로 느껴졌다.
내셔널 갤러리의 관람은 무료다!! 경비 부담이 있는 여행자에게 더없이 반갑고 배려받는 곳이다.
곳곳에 익숙한 작품들이 보인다. 작품뿐만 아니라 갤러리 내부 자체가 예쁘다. 중간에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체험할 수 있는 코너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역시 무엇이든 손으로 만져봐야 하는 서연이는 바로 뛰어들어서 만져보고 체험한다. 미국에 살 때 구입했던 랄프 라*렌 원피스를 입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있으니 마치 이 곳에 사는 아이처럼 친숙해 보인다.
유명하고 익숙한 작품들 앞에는 역시 사람들이 많다. 가까이에서의 관람도, 사진 찍기도 쉽지 않다. 미술의 문외한 같은 우리였지만, 빠른 이동 속에 작품들을 마음속에 담아본다. 2년이 지난 지금 벌써 다 잊혀졌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가끔 방문했던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들,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이나 현대미술관, 또한 이런 내셔널 갤러리 같은 곳들에서 지난 시대의 작품세계를 관람한 경험이 앞으로 살아갈 삶에서 무엇이라도 플러스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본다. 여러 작품 들을 둘러보지만 워낙 방대하고 작품들이 많아서 짧은 시간 내에서 다 보기가 쉽지 않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일정을 위해서 나왔다.
유명한 장소들을 방문하기는 했지만 많은 비용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대단한 체험을 하지도 않았던 오전 일정이다. 하지만, 걸으며 눈과 코로 런던의 풍경과 향기를 맡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 몇 세기의 작품과 세계를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일상과 같은 오전 일정이 평범하면서도 마음의 쉼을 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