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는 그가 기록한 공책을 천천히 훑어나갔다. 그는 낡은 책표지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것들은 제 인생의 바탕이 녹아들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말하자면 맛집가게의 레시피 혹은 연구노트와 비슷한 거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나 보여주진 않지만 오늘은 예외로 하죠.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첫 번째 두 번째를 찾는 거예요. 대충 기억은 나지만 그때 적어두었던 메모로 확인해 보는 게 저에게도 본인에게도 좋아 보이니까요. 그렇지요?"
나는 마땅히 내뱉을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를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우리는 얼마간 말없이 공책만 뒤적거렸다. 분위기가 어릴 적 갔던 도서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공기는 차가웠고 흐르는 시간은 무거웠다. 책을 넘기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그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꿈해몽을 하면서 문득 생각한 게 있어요. 어쩌면 꿈은 조금이나마 운명에 저항할 수 있게 예언 또는 경고를 하는 게 아닐까 하고요."
"경고요?"
"네. 꿈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고 있어요. 다들 그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요. 가령 불길하거나 께름칙한 꿈을 꾼다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지요. 더 나아가 저를 찾아오는 분들도 계시고요. 예전에 꿈속에서 자꾸 어릴 적 잃어버렸던 코알라인형이 나타난다는 손님이 있었어요. 그 꿈은 하루 이틀 일주일 동안 지속되었죠. 보통꿈이 아니라는 생각에 저를 찾아오신 거죠.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보통의 꿈이었어요. 내용은 전반적으로 다 비슷했죠. 동일한 건 그 코알라인형을 손에서 절대 놓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배경이 어떻게 바뀌든 항상 손에는 그 인형이 붙들려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어요." 그는 나를 보며 '자. 이 얘기를 듣고 떠오르는 생각이 없나요?' 하고 말했다. 나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저는 한번 더 되물었죠. 그 인형이 소중했었나 봐요? 하고 그녀는 소중했지만 여느 때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런 것들은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잊혔다고 하더군요. 사실 저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어요. 그건 그녀가 아이를 임신한 게 아닌가 싶었죠. 결론을 말하자면 제 생각이 맞았어요. 무의식 속에서 아기처럼 소중히 다루던 인형이 그녀의 꿈속에서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