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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생김새 - 기억 전시관

박물관

by 월하문

[1화] 나는 박물관으로 들어섰다.


평범함을 위해,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

평범함을 발버둥치기 위해,

어쩔 때는 특별해야만 했다.


무언가 그만 가지고 있는,

빛이 나는 부분이

그를 평범하게 만들 수 있다.

그가 가진 기준이었다.

그는 그렇게 평범하기 위해

부단히도 빛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평범함’이라는 이름을 가진,

역설적인 생존 방식이었다.


그의 평범함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역사학자가 되어, 철학자가 되어

내가 살아온,

내가 살아갈 내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단순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이유 없이 궁금했던 시절.

말이 되지 않아도 좋았던,

오히려 그게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가 충만했던 그 시절에

그에게는 철학이 있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하이데거를 몹시나도 좋아했다.

왜 하이데거였을까.


하이데거가 그린 현존재의 세계는

매트릭스로 점철된 세계 속에서

현실을 느끼게 한 것이었을까?


스크린을 벗어나,

비로소 ‘진짜’의 감각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가 철학을 붙든 건

어쩌면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나름의 튜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철학의 세계는

현실이라는 박물관적 현실 앞에

조각조각되어 눈앞에 전시되었다.


박물관에서 선조의 향수를 느끼던 그에게

조각되어 전시된 현실은

역시나 단순히 던져진 세계였다.


선택한 게 아니고,

그저 놓인 것.

던져진 존재.


그가 그 박물관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지극히 평범했다.

열린 문이라고는

그 박물관만이 있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유일하게 열려 있는 문.

그 앞에서 그는

별 저항 없이 걸어 들어갔다.


서점을 좋아했던 그는

그렇게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박물관은 굉장히 넓고,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개관을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고,

어두웠다.


전시물도 없고,

안내문도 없고,

빛도 없는 그 공간에서

그는 더듬거리며 길을 찾아 나섰다.


딱히 무섭거나 두렵거나

그런 영역의 길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그가 걸어가는 발자국을 따라

길의 생김새가 생겼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길 위를 걷고 있다는 감각.

그건 다소 묘했지만,

또 한편으론 당연했다.

살아온 시간들이 다 그랬으니까.


단지 혼자였고,

어두웠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 했을 뿐이다.


박물관에서 그가 마주한

첫 작품의 제목은

**《첫 기억의 조각》**이었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무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느낌,

기억이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조짐.

그 앞에 그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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