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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n 14. 2023

낳고 보니 행복, 키워보니 사랑

열경기를 처음 경험한 초보아빠, 엄마의 숨 막혔던 하루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거리엔 아무도 없다.

 

 태양이 내려쬐던 낮에는 뜨겁게 타올랐을 아스팔트가 태양이 없는 지금은 차갑게 식어 계절조차 알 수 없다. 다만 흥건히 땀에 젖어 내 몸에 착 달라붙은 유니폼만이 내가 여기 무엇 때문에 서 있는지를 계속 알려주고 있다.


 "그래, 여긴 현장이었지?"


 이내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불빛이 반짝거린다. 반짝거리는 불빛 사이로 형체를 알 수 없는 차량 두 대가 서로 엉켜 있다. 헬멧을 쓴 소방대원들이 왔다 갔다 분주하게 움직인다. 차 안에는 아직 숨이 붙어 있을지도 모르는 요구조자가 보인다. 경광등이 돌아가며 간헐적으로 비추는 불빛에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망가져버린 차체 탓에 더 이상의 확인은 어렵다. 우선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이미 뭉개져 있는 차량의 문 어느 한쪽을 힘차게 잡고 뜯어낸다. 뜯겨나간 문을 옆으로 집어던지고 사람을 꺼내기 위해 머리를 집어넣는 순간 온몸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있었다.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보호자나 유가족들의 울음소리 가장 참기 힘들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나까지 무너지면 현장은 아비규환이 된다. 아직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두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한 참을 울다가 눈물을 닦아내려는데 누군가 내 등짝을 잡고 끌어당기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커다란 덩치를 마치 깃털을 들어 올리듯이 가벼이 들더니,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때!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는데,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떠보니 검은 배경이 눈앞이 껌뻑껌뻑 거린다. 일순간 귀가 먹먹하더니 입을 뻐끔거리자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는 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누군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여보 이제 괜찮아~ 꿈꾼 거야~ 괜찮아~"


라며 저도 이제 잠이 덜 깬 낮고 편안한 목소리로 나를 위로해 준다.


꿈이었다.


 얼마 전 한 돌을 갓 지난 딸아이가 병원에 실려간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며칠 안 되었을 때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갓 돌이 지난 딸아이와 함께 맞는 두 번째 설 날을 며칠 안 남겼을 때였다. 10월에 태어난 딸아이와 두 번째 설을 맞아 아버지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사실 첫 설 때는 당시 너무 어려 외출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한참 전부터 '당근마켓'을 들락날락하며 '어린이 한복'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10,000원도 안 되는 돈에 분홍색 아기한복을 구했다. 딸보다 더 설레는 아내의 눈을 보고 있자니 어린아이 같이 맑은 그녀의 눈망울이 꼭 아기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9시, 퇴근을 하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늘 그래왔듯이 차량 내부에 있는 짐을 챙기고, 어제 입었던 땀에 젖은 속옷이며 양말을 주섬주섬 챙겼다. 남아있을지 모르는 쓰레기들을 주머니 속에 꾸깃꾸깃 집어넣었다. 어느 것 하나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소방관의 퇴근길이었다. 그런데 그때!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화면을 보니 이름 뒤에 파란색 하트가 달린 아내의 전화였다.


"여보!!!! 흑흑흑..."


전화기 너머로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나는 이럴 때 늘 심장이 철렁 거린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싶어 말이다. 하지만 아내에게 티는 내지 않는다. 만약 티를 내면 아내의 모든 전화를 철컹거리면서 받아야 하니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목소리는 평소와는 뭔가 분명히 달랐다.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최대한 침착하게 받으며 말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몇 마디 내뱉지 않았지만 내가 말하는 동안 분명 흐느끼는 것이 느껴졌다.


 "콩이가 이상해..! 콩이가... 콩이가... 빨리 와줘요!!!"

아내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실제상황이다!


"열이 계속 나서 칭얼거릴 길래 안아줬는데.. 갑자기... 갑자기....!"

"알겠어요. 여보! 금방 올라갈 테니까 콩이 이름을 계속 불러줘요."

"네.. (흐느끼며) 빨리 와줘요."

"네 여보 금방 가요. 울지 말고 침착하게 기다려요"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의 화살표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아무리 급해서 계단을 뛰어 올라가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가 타가 가는 것보다 못하리라. 심장 터질 것 같은데, 고속으로 내달리는 엘리베이터는 왜 이리도 안 오는 것 같은지...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엄치고 있던 그때 엘리베이터가 내 앞에서 멈췄다.


'띵동'


집 앞으로 나를 내려 준 엘리베이터는 또 다른 주민을 위해 떠났고 현관 비밀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수십 킬로나 되는 현관문을 힘차게 열고 신발을 벗었는지 신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집안으로 들어가니 아내는 딸아이를 안고 울고 있었다. 황급히 아이의 상태를 보니 눈이 풀리고 약간 떨고 있었다. 몸은 축 늘어져 의식이 희미했다. 사고 현장에서 이런저런 상황들을 접해 본터라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이를 엄마에게서 떼어 내어 안아 보니 몸이 불덩이 었다. 땀에 젖어 있는 옷을 벗겨주고는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열을 식혀주었다. 달콩이(태명)는 '으으으으~' 하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좋아졌군' 기본적인 상태를 계속 체크하며 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콩아~ 힘내, 어서 일어나 보렴' 아빠의 마음이 이런 걸까.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걸까. 간절한 외침에 콩이가 울음을 터뜨리는가 싶더니 동료 구급대원들도 집 안으로 도착했다. 아이는 어느새 크게 울며 '아빠' '아빠'를 외쳤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이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코로나 상황이 아직 끝나지 않아 보호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젠장, 코로나!' 하지만 규칙은 지켜야 한다. 응급실 앞 대기실에는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앉아 있는 보호자분들이 많이 보였다. 파랗게 질린 아내와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딸아이는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고, 오늘따라 유달리 빠르게 닫히는 슬라이딩 도어 너머로 두 사람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문을 하나 더 지나 건물 바깥에 있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꽤나 먼 거리인데도 달콩이의 울음소리는 너무도 선명했다. 하늘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계신 분께 간절히 기도하고 싶어 져서다. 그동안 일을 하며 많이 봐왔고 겪어왔던 상황이지만 보호자가 된 지금, 머리가 띵하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직은 태양이 지지 않아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속으로만 기도하고 있었는데, 목에 무언가 걸리는 듯하더니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눈가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이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늘을 바라보던 눈의 초점이 흐릿해지며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이 다시 보였다. 지금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기력한 어깨가 조금씩 들썩 거린다. 아내와 아이 앞에서는 냉정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꾹 참았던 것이 터진 것이리라. 사실 나도 무서웠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그칠 줄 모르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아내가 걱정되었다. 울고 있는 아이는 울 힘이라도 남아있나 보다 스스로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을 합리화를 했는데 아내의 마음은 어떨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곳저곳에 전화를 돌렸다. 아버지 어머니께는 설 전날인 오늘 못 올라간다고 말씀드렸다. 괜찮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으라는 간단하면서도 담담한 말씀이 괜히 위로가 됐다. 이곳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도 전화를 했다. 근무 중이라 바쁜 통에 잠시 짬을 내어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친구의 딸도 달콩이랑 동갑인데 1주일 전 열이 계속 내리지 않아 해열제를 계속 먹이며 관리를 했다고 한다. 의사인 본인도 무척이나 힘들었다며 눈물 찔찔 흘리고 있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느새 어둠이 사방에 깔렸다. 저녁 8시가 넘어서야 검사가 어느 정도 끝난 달콩이는 겨우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일 수 있었다. 물을 마시자 6시간 넘게 울음을 그치지 않던 달콩이는 울음을 그쳤다. 딸아이보다 많이 아프고 불편하셨을 환자분들과 하루종일 시달렸을 의료진 분들께 너무도 죄송했다. 울음을 그친 후 아이엄마가 드디어 첫 사진을 보내왔다. 점심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을 아내와 아이를 위해 죽집으로 가서 죽을 사고,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조금 사서 넣어주었다. 과자를 넣어주니 사진을 보내주는 아내. 사실 아내가 과자 킬러..


까까를 먹고 회복하신 달콩 선생님, 그리고 그 옆에 계속 웃고 계시는 아기상어 선생님
아기상어와 함께 이겨내고 있는 중

  까까와 아기상어로 힘을 얻은 달콩이는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돌려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자 집에 들어가서 편하게 자라는 아내의 전화가 왔다.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새벽 4시나 되어야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양심 없지만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니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몸 누일 곳도 없이 딸아이 옆에 엎드린 채로 눈을 붙이고 있을 아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무의식 중에도 내 양팔은 소리의 정체를 찾아 휘젓는 중이다. 오른팔을 구부려 베개 밑에 손을 넣으니 어젯밤 자기 전에 끼워 넣어 놓았던 휴대폰이 손에 들어왔다. 새벽 3시 30분. 아내와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병원에 도착해 전화를 하니 아내와 엄마품에 안긴 달콩이가 응급실 입구 앞에 서 있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차량 안으로 두 여자를 태우고 새벽 강변을 달렸다.

 차에서 내리면 깨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달콩이는 아빠품에 꼭 안겨 자고 있다. 밤새 딸을 기다렸을 멍멍이와 상쿤이(상어인형), 아띠(사자인형), 아구(악어인형) 사이에, 열이 많이 내린 달콩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거실로 나갔다.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거실 소파에 앉아 서로를 토닥거렸다.


 “여보, 아이와 부모는 함께 커간다고 하잖아. 이번 일로 많이 놀라고 무서웠지만 우리도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아. 더 잘해 주자 우리”


 “맞아, 예전에 우리 부모님은 우리를 어떻게 키우셨을까?”


“그러게 자기는 아빠 출근하는 거 싫어서 울다가 숨이 멎었었다며?”


내가 5살 때즈음 출근하는 아버지와 떨어지기 싫어 소리소리를 지르며 울다가 숨이 멎어 버린 적이 있었단다. 아버지 어머니는 놀라서 도로로 나가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갔다. 당시에는 너무 가난해 택시비조차 없었는데, 병원 간호사분께서 택시비를 대신 내주셨단다. 병원에서 내 상태를 보려고 안는 순간 갑자기 울음을 다시 터뜨리며 호흡이 돌아왔다는 무슨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나의 부모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와 나의 지인들에게 아직까지 에피소드로 활용하여 이야기하고 계신다.


 “아~ 또 그 야기야?”


“아니 나는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아니 진짜 몇 년째 우려먹는 거야 우리 엄마는”


지금 생각해 보니 우려먹는 게 아니라, 아직도 잊지 못할 아프지만 귀한 경험이셨을 테지. 지금의 나처럼.


“어머님한테 다음에 또 다른 과거 물어봐야지~~~”


(물어봐도 떳떳하지만) “아 정말!”


한바탕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나니 그동안 굳어있던 어떤 것들이 다 녹아내리는 듯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터널도 언젠가는 끝이 있고, 그 끝에는 반드시 빛이 찾아온다. 그리고 신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딱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달콩이가 태나고 첫 몇 달은 밤새 수유와 기저귀 갈이를 하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달콩 탄생 이후 첫 시련이었다. 힘들 때마다 우리 부부는 계속 대화하고 서로 도우며 이겨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달콩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는 혹시라도 어디 부딪힐까 싶어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금방 지나갔다. 당시에는 힘들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 사진이나 영상으로밖에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지금을 과거에 비교하면 터널 끝 밝은 빛이지만, 미래와 비교하면 지금 터널을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빛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먹기 싫다며 뱉어낸 반찬을 웃으며 집어 먹고, 내 다리를 꽉 껴안으며 과자를 먹기 위해 협상해 오는 달콩이를 바라보며, 공원에 멍멍이를 따라 뛰어나가버리는 달콩이를 바라보는 이 단순하면서도 소중한 일상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라고 느낀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사진을 담고, 영상을 만들어도 지금의 밝은 빛을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다시는 없을 이 순간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지금의 1분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소중한 1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가슴이 또 아려온다. 나의 내일이 나의 오늘에게 잘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을 더 힘차게 살아가야 한다.


거실 창 밖 배경이 붉은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니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길었던 밤은 내게 태양을 선물해 주었다.


 "엄마~"


 잠꼬대로 엄마를 찾는 달콩이 소리에 아내는 조용히 내게 인사하며 방문을 열었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동시에 담아 손을 흔들며 나도 인사했고, 어제라는 터널을 지나 오늘이라는 빛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출근길에 나섰다.


현장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왼쪽에서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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