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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공룡엑스포 간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인생 23개월차, 드디어 공룡을 만나다.

by 키랭이

토요일 아침, 오늘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러 가지 않는 날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오늘은 아빠의 둘째 비번 날!!! 하루 일 하고 이틀 쉬는 아빠가 오늘은 집에 있는 날이다. '후훗 분명 오늘 공룡을 보러 간다고 했지' 그 동안 책으로만 보던 공룡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공룡이 얼마나 큰 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책에서 보았을 때는 생각보다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른 자고 있는 아버지를 깨우러 가야지'하며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갔다.


속으로 '아부지, 아부지, 아부지'를 계속 외치며 문을 연 그 순간 눈 앞에 마치 공룡 같은 거대한 인간 두명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아빠, 엄마였다.


"딸~ 일어났어?" 오늘도 역시나 환하게 웃으며 아침인사를 건네는 아빠.

"달콩이 잘 잤어요?" 온화한 엄마의 목소리도 귓가를 간지럽힌다.


공룡엑스포에 가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는 두 분을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기 위해 오늘은 밥 투정도 안 하고 '아침 행동요령'을 잘 따라보겠노라 다짐한다.





경남 고성군에서 펼쳐지는 경남고성공룡세계엑스포는 2006년, 즉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작되었는데 몇 년에 한 번씩 개최를 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2021년, 즉 내가 태어난 가을부터는 매년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과 들판을 바라보며 눈과 마음의 양식을 채우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이... 깜깜했다. 아직 오전도 못 벗어난 시간인데, 왜 하늘이 깜깜한지 의문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대화를 들어보니 비가 올 것 같다나 어쨌다나.


생각보다 한적한 주차장을 들어서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비.가.내.리.기.시.작.했.다.


'아부지...'


아빠와 엄마가 상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열띤 토론을 이어가던 두 분을 보고 있자니 나의 다리도 어느새 빗방울에 조금씩 젖어가고 있었다. 그 때 아빠가 협상테이블로 나섰다.


아빠가 말했다. "달콩아~"


"?"


"아빠랑 엄마랑 콩이랑 오늘 공룡보러 가기로 해서 여기 왔잖아~ 그런데... 비가 내려서 구경하기 어려울 것 같애. 우리~ 콩이가 좋아하는 마트에 가서 작은 공룡친구들 만나러 가지 않을래? 아빠가 공룡친구 이쁜걸로 사줄께"


정리하면 이렇다.


비가 와서 야외 구경이 어렵다. 마트에 간다. 마트에서 공룡인형을 사준다.


내 대답은... 'NO !' 였다.


하지만 아빠는 완강했다. 이번에는 엄마까지 가세했다. 하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실망감은 컸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달무룩 : 아기상어와 함께 기분이 확 쳐진 달콩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 다음부터는 날을 잘 잡아야겠네. 달콩이 한테 너무 미안해..."


"에이~ 너무 신경쓰지 마요~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나도 비가 올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두 분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침울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때 엄마가 말했다.


"공룡박물관에 가볼까요?"


"하이면에 있는 거 아니에요? 1시간 거린데... 가서 별로면 어떡하지..."


공룡박물관에 가본 적이 없는 아빠의 걱정어린 눈빛이 룸미러를 통해 비춰졌다. 엄마와 아빠는 운명을 걸어보기로 한 것 같다. 우회전을 해야할 차가 좌회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룡박물관이다!



거대한 티라노사우르스가 입구에서 맞아주고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책 속에서만 보던 신비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입구에서 맞아주는 오색빛깔 작은 공룡들은 내가 환호를 지르기에 아깝지 않은 친구들이었다.

연신 소리를 질러대며 공룡들과 포옹하고, 손을 흔들어가며 인사를 했다. '공룡, 공룡이라니' 비가 오는 바람에 오늘 나들이가 무산될 뻔 했는데, 아빠엄마의 결단 끝에 이토록 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가 절로 흘러 나왔다.


아직 말이 서투니 즐겁게 노는 것으로 보답하리라.


아빠와 엄마는 서로 마주보며, "와~ 바로 여기다. 여기다. 여기구나."를 외쳐댔다.


공룡친구들과 실컷 놀고나니 배가 출출해져 매점으로 왔다. 어떤 것을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돈까스를 입 안 가득 넣고 오물거리고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실컷 배를 채운 후 밖에 나가니, 또 다른 공룡들이 나를 맞아준다.

엄마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아빠랑 카페 쪽으로 산책을 갔는데, 어떤 오빠가 공룡빵으로 추정되는 어떤 것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눈을 떼지 못하고 응시하고 있자, 옆에 있던 오빠의 엄마가 "아이구~ 귀여워라. 하나 먹어볼래?"하며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갑자기 눈치없는 아빠는 "아~ 정말 감사한데, 괜찮습니다. 아이도 먹어야 되고, 몇 개 없는 거잖아요. 정말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아주머니께서 "에이~ 애기 하나 줘요~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라며 내 손에 소시지 공룡빵을 하나 쥐어주셨다.

아빠는 90도로 인사하며 내게도 큰 인사(허리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큰 인사라고 한다)를 시켰고, 우리도 한 봉지를 사게 되었다. 아빠는 간식 필요했는데 잘 됐다며, 아주머니에게 빵 한개를 갚으셨다. 참으로 훈훈한 장면이었다. 이 순간 승자는 바로 나니까 말이다. '후후후'


한참을 놀다보니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입구에서 즐겁게 맞아주던 공룡친구들에게 이제는 잘 있으라는 인사를 남기며 하나하나 안아주었다. 즐거웠던 만큼 아쉬움도 크게 밀려왔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는 오늘 이렇게 또하나의 추억을 쌓아올린다.



사랑하는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


언젠가 너도 공룡은 이미 멸종했음을 알게 되겠지만 공룡이 남기고간 발자국, 화석, 그 흔적들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있음은 분명하단다. 늘 곁에 있던 사랑하는 사람들도 공룡처럼 어느순간 없어지고 말겠지만 공룡이 남기고 간 즐거움처럼 아빠도 네게 즐거운 추억거리를 많이 남기려고 해. 함께 있는 동안 자주자주 안아줄게. 사랑해 달달콩





아빠의 공간


흐릿한 날씨를 보며, 비를 떠올리지 못한 나의 실수였다. 하지만 다시 한 시간을 가야하는 고성 공룡박물관을 택한 덕분에 그 날의 추억은 흐릿한 구름에서, 파란 구름으로 바뀔 수 있었다.


누구나 실수를 하는 순간이 온다. 누구나 100%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다른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생각지도 못하는 즐거움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하루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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