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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Sep 12. 2023

인생 23개월차, 동물원을 처음 가보다.

저는 곰이 제일 좋습니다만

토요일 오전, 햇살은 따사롭고 하늘은 높다. 주방 문틈 사이로 들어온 선선한 바람은 거실로 들어와 내 몸을 휘감은 뒤 거실 창 밖으로 몰래 빠져나간다.


가을이다.


소풍 가기 좋은 날씨. 아빠 엄마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오늘은 어떤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줄 것인가. 인생 23개월 차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고, 온갖 것들이 새롭다. 장소가 어디든 아빠엄마와 함께라면 무조건 재미있을 것만 같다. 아빠가 말했다.


"랭랭(엄마의 애칭이다. 으~~) 오늘 동물원 가자"


"동물원? 좋지~~"


"동물 털 알레르기 있으니까 마스크 꼭 끼고~"


닭살이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 애칭을 부른다. '랭랭~' '랭이랭이~' 이러면서 말이다. 엄마가 아빠에게 "랭이랭이"라고 하길래 내가 "랭이랭이~"하고 따라 하니, 웃겼던지 깔깔깔 웃으신다. '히히'


어쨌든 목적지는 자기들끼리 결정했다. '동물원?' 동물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곳인가? 그동안 영상으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많이 봐왔는데, 진짜 동물이 있는 곳이라니 어떤 곳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동물원이 있어, 금방 도착했다. 설렘도 잠시 처음 가는 곳이라 낯설고 냄새도 나 들어가기 싫었다. 하지만 아빠가 예쁜 동물들이 많다는 말에 강제로 끌려들어 갔다.

물아 안녕♡

먼저 작은 호수가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물을 좋아해서 금방 신이 났다. 최근 배운 문장인 "신나요~"를 외치며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어보았다.

원숭이가 눈에 들어왔다. 긴 팔과 긴 꼬리를 가진 원숭이가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나도 원숭이에게 "우끼끼"라고 하며 인사했다.


이어서 꼬꼬가 보였다. 꼬꼬는 보통 빨간 꼬꼬만 있는 줄 알았는데, 흰 꼬꼬, 검정 꼬꼬 다양한 색상의 꼬꼬들이 있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데, 매점 앞에서 '랄라'(뽀뽀로 노래 가사 중 하나로 뽀로로를 랄라라고 부른다)가 나타났다. "랄라~~~~~"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랄라에게 다가갔다. 아빠가 동전이 없어 차에 갔다 오신다더니 금방 오셔서는 동전을 건네주셨다.

불곰은 아빠가 아니란다...

한참을 랄라와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이동했다. 이번에는 아빠와 무게가 비슷해 보이는 곰이 있었다. 불곰과 반달가슴곰이 목욕도 하고 어슬렁 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곰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은데 내 키가 너무 작아 아빠한테 "몬마(목마)"라고 하자, 아빠가 금세 나를 번쩍 들어 올려 목마를 태워 주셨다.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가 있어도 곧잘 들어주신다.


곰을 볼 수 있는 장소는 그늘이 없어 뜨거운 태양에 땀을 뻘뻘 흘리며 보았지만 아마 가장 재미있었던 곳이 아니었나 싶다.

곰 다음으로는 호랑이도 보고 그네도 타고, 사슴, 염소, 토끼 친구들을 만났는데, 그중 곰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아마 곰의 커다란 덩치와 순수한 눈망울이 아빠를 연상시키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불룩 튀어나온 배까지. 완벽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이 쏟아져 차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엄마아빠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참으로 즐겁다. 아빠가 어렸을 적에 놀던 곳이라고 하니 아빠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아빠는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을 만끽하고
 나는 행복을 만끽하며 추억을 쌓아 올린다.

 



사랑하는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


30년 전 내가 다니곤 했던 동물원에 이제 너도 가보는 구나. 나의 어릴 적 추억들이 서려있는 비밀 장소를 너와 공유할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구나. 내가 지나온 길 중에는 꼬불꼬불한 길도 있었지만 아빠가 지나가면서 다 펴 놓았단다. 혹시나 아빠가 가보지 못한 꼬불꼬불한 길을 만나면 그 길도 한 번 가보렴. 아빠 엄마가 늘 너의 뒤에서 함께 할게. 그리고 너만의 예쁜 추억을 많이 만들어 보자꾸나. 사랑한다 내 딸.





아빠의 공간


딸이 곰을 보면 자꾸 '아빠'라고 한다. 툭 튀어나온 배? 순수한 눈망울? 커다란 덩치? 도무지 왜 아빠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다.


범인을 찾았다.


아내가 딸이 돌 때즈음부터 불곰 사진을 보여주며 "불곰아빠~ 불곰아빠~"라고 했던 것이다.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범인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네가 너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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