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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Nov 08. 2023

제61주년 소방의 날, 합창대원 되다

올해 마지막 목표 리스트

비번 날 카톡이 하나 도착했다.

심장 콩닥콩닥 뛰었다. 아니, 쿵쾅쿵쾅 뛰었다. 같이 식사를 하고 계시던 장모님과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드디어... 합창대원을 모집한대요"


"아 진짜요? 지원해 봐요~"


안 그래도 선 지원 후 보고 할 생각이었다.


소방의 날 기념행사 때 합창단을 늘 뽑았던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아마 이번 행사준비팀에서 합창단을 활용하기로 한 것 같았다.




이번 행사에 합창대원으로 지원하는 것은 내게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바로, 소방의 날 기념행사 때 노래를 부른 다는 것 자체가 나의 목표이자 꿈이었는데 그것이 실현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꿈은 최근에 생긴 것이 아니다.


10대 시절,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여건이 썩 좋지 않아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하고서는 진학을 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두 번째로 지원한 대학을 선택해  뭉그적거리다가 학비 문제로 제대 후 자퇴를 하고 말았다.


그런 내게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노래는 취미로 하고, 다른 길을 선택해라. 직장 가면 얼마든지 취미생활 할 수 있는데, 왜 꼭 그걸 직업으로 생각하니"


철없던 나는 이 말이 상처가 되고 말았다. 아하는 일을 직업 삼아야 된다는 당연하지만 힘든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음악은 특히 3박자를 갖춰야 한다고 한다.


재능, 재력, 노력(혹은 다른 것)


하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갖추지 못했었다.


어느덧 철이 들어 직장도 생기고 장가도 가고, 아이도 키우는 평범한 가장이 되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노래하고 싶다.


아버지께서는 소방관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실컷 할 수 있다는 말했었다. 나는 그런 거 해서 뭐 하냐며 속으로 거세게 저항했다.


아들놈을 위로해 주시고자, 걱정되는 마음에, 잘 되었으면 해서 해주는 말인데, 나는 공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꼬박 20여 년이 흐른 지금


제61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에 합창대원으로 서게 된 것이다.


7일 저녁 가족들과 서울에 올라와 오늘 낮 동안 리허설을 무사히 마쳤다. 꿈이 이뤄지기 12시간 전이다.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눈물을 많이 삼켰지만, 나는 지금 꿈을 이뤄가고 있다.


아버지를 만나면 꼭 이야기해드리고 싶다.


'당신의 씀 중 그 어느 것 하나도 틀린 것 없으며,

풍요롭지 못했던 지난 시간에 대한 미안함도 절대 가지지 마시라'라고, '당신의 피와 땀방울, 그리고 눈물 덕분에 저는 이렇게 꿈을 이뤄가고 있다'라고.


2시간 전 전화가 한 통 왔다.


"아들, 리허설 잘했어? 목은 괜찮아?"


"네, 잘하고 왔어요."


"그래, 몇 시에 시작하니?"


"아, 오전 10시에 시작해요"


"그래, 아빠 방송 볼게. 우리 아들 출세 했네"


"에이 농담은, 잘하고 올게요. 내려가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잘하고 조심히 내려와"


"네 아빠"


전화를 끊고 돌아서니 먹먹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아빠, 저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꿈이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어요.


현재는 예약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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