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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Nov 11. 2023

일상으로 돌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61주년 소방의 날, 합창대원 되다 - 2

고대하던 제61주년 소방의 날이 끝났다. 소방에 입문하기 전에도, 입문한 후로도 소방의 날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저 매년 하는 행사 중 하나라 생각했던 지난날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념일은 아무래도 참여를 직접 하다 보니 관심이 더욱 크게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리허설이 있던 8일 아침 7시까지 현장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전 날인 7일 저녁부터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어수선한 첫날이었다. 정복에 부착하는 부착물이 하나 사라져 1시간을 찾아 헤매고, 그걸 찾느라 집으로 갔다가 거기에 가방을 두고 와 다시 회차하며 무려 3시간을 소모했다. 차에 올라탄 지 7시간 만에 서울의 한 숙소에 도착한 것이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탓에 몸을 떨며 리허설 순서를 기다렸다. 합창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노래만 하고 내려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인 만큼 철저한 준비를 통해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무대에 선 시간을 소화해 내어야 하는 것이다.


무사히 리허설을 마치고 둘째 날 밤이 지나갔다.


행사 당일, 갑자기 추워진 어제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다시 추워진 오늘을 생각하면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실수하지 말고, 잘하고 오자.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야!'


같이 계신 분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꿈이었으니, 혼자 들리지 않는 마음의 소리로 다짐하며 무대에 올랐다. 남성파트가 나오는 부분에서 얼굴을 다 훑을 거라고 하니 표정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사진)


합창이 끝남으로써 이번 제61주년 소방의 날 합창 행사도 모두 끝이 났다. 합창대원들은 모두 벅찬 감동에 서로를 격려하며 즐거워하고 있었고, 나 역시 유튜브 방송과 카톡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사진 몇 개가 도착해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시며 아들이 언제나 오나 싶어 사진을 열심히 찍으셨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 얼굴이 안 나와 조금 실망하신 것 같았다. 나는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괜찮다고 했고, 아버지도 "그래, 우리 아들 이런 무대에 언제 한 번 서 보겠어?"라며 격려해 주었다.


빛의 속도로 옆모습 출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말했다.


"무대에 선 건 감사한 일이긴 한데... 아버지 어머니께서 영상에 내가 안 보인다고..."


"에이~ 다음에 독창으로 부르시면 되죠~ 고생했어요. 그리고 옆모습 괜찮던데요?"


https://www.youtube.com/live/gKATUKdtBeI?si=ecvi-ITdvIH9fqqs



아내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그래 다음에 또 노래하면 되지.'


그런데...


이틀이 지난 오늘 아침, 카카오톡 단체방에는 다양한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며 다시 한번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는 대원들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기록을 찾기 어려웠다. 1초도 안 되게 잠깐 나온 얼굴 반 절만 캡처로 건질 수 있는 게 다였다.


다행히 몇 주간 고생해 주신 감독님께서 휴대폰 슈퍼줌으로 당겨주신 사진만 두 장 남았다. 꿈은 이루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무함도 함께 공존하는 것은 왜일까...


'꿈을 이루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허무한 것일까? 그렇다면 다음 목표는 애국가다!'




뜨거운 화재 현장 속 소방관들은 서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잖아도 짙은 연기에 작은 면체를 얼굴에 덮어쓰면 눈동자 두 개로는 도저히 누군지 알 수가 없다. 구경하는 시민들이 바라보는 소방관도 그저 소방관 1, 소방관 2 일뿐이다.


이 땅의 많은 소방관 동료들이 오늘도 사건 사고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일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 없을 것이다. 소방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불 속으로 뛰어들고, 소방관이기 때문에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괜찮다. 소방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는 일이거늘.


합창대원에서 소방대원으로 돌아왔다.



일상으로 돌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업을 시작할 때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관창을 들어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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