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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Nov 24. 2023

너의 오늘 하루가 가장 즐거웠던 날로 기억되길...

동물(유기견) 구조가 불편한 ENFJ 소방관 이야기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들이라면, 혹은 주 5 ~ 6일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눈을 붙이고 있을 수 있는 시간,

일요일 아침 8시. 오늘도 출근길에 나섰다.


태어난 지 25개월 되시는 달콩이와 인사하고, 사랑하는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서면 늘 그렇지만 에너지가 넘쳐난다.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하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밖에 나가면 아이만 보인다. 빨간 소방차를 타고 운전을 하고 있으면 솜사탕 같은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미소로 내 심장을 마구마구 공격한다. 모두가 천사 같다.


하얀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달콩이가 생각나기도 한다. 목줄이 없는 강아지들도 가끔 돌아다니는데, 예전에는 '저러다 집에 돌아가겠지', '마실 나왔나 보네~' 하며 귀여워해 주었다. 도망가는 녀석들도 있지만.


나는 동물을 참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이 불편하다.





오전 교대와 점검을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공유된 공문을 읽어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따라라라라~라라라~ 생활안전 출동"


'벌집제거 시기도 지났는데 무슨 출동이지? 개포획인가?'싶어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작은 글씨로


"등산로에서 개가 다리를 물고 안 놔준다"라고 쓰여 있었다.


긴급한 상황임을 감지한 팀원들은 빠르게 출동했다. 큰 펌프차를 산으로 가져갈 수 없기에, 한참을 빠르고 큰 걸음으로 목적지까지 올라갔다.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몸에는 서서히 땀이 차기 시작했다.


"여기요~ 여기요~"


신고자분이 애타게(?) 부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 네!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우선 안심시킨 뒤 신고자와 조우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반달가슴곰 같은 문양을 가지고 있는 작은 믹스견 한 마리가 신고자의 다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잡고 있었다.)


'귀... 귀여웠다!!!'


우리 팀원이 얼른 다리에서 떼어내어 불쑥 들어 안았다.


'가... 가벼웠다!!!'



너무도 얌전히 안겨있는 녀석을 보니 목줄 흔적도 있고, 사람도 잘 따라 누군가의 손길을 많이 받은 아이인 것 같았다. 하산을 하며 등산객들에게 주인을 아는지 물어보았는데, 이렇다 할 정보는 얻지 못했다.


센터 후정에 줄을 길게 해서 매어놓으니 곧잘 직원들과 어울린다. 유기견(으로 추정되는)들은 데리고 오면 탈수증상이 있는 녀석들이 많아 곧바로 물을 먹이곤 한다. 이 아이도 물을 갖다 주니 허겁지겁 핥아먹는다. 잠시 출동이 없는 시간을 틈타 밥도 조금 챙겨 주었다.


사람을 잘 따르고 겁도 많은 녀석이다.


'누가... 잃어버렸을까... 혹시... 누가... 왜... 버렸을까...' 별 생각을 다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

.

.


검둥이는 무슨 일인지 밤새도록 울어댄다.




동이 트자마자 밖으로 나가 보았다.


"멍멍아~ 잘 잤어?" 밝게 인사하자 저도 반가운지 "멍! 멍!"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뛴다. 밥을 간단하게 챙겨주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곧 교대를 하고 나면 이제 검둥이를 못 본다는 생각이 벌써부터 마음이 침울해진다.


퇴근 후 낑낑거리는 검둥이가 혹시나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혹시나 집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녀석은 어제 잡혀올 때와는 다르게 힘차게 산을 올랐다.

마치 "형! 여기 봐요! 여기가 제가 놀던 곳이에요!"하고 자랑이라도 하듯 쏜살같이 올라갔고, 나는 딸려 올라가다시피 한다. 달콩이도 항상 퇴근하는 아빠를 보면 자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소개하며 자랑하는데, 괜히 쓸데없이 오버랩이 되어버린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수소문해 보아도 녀석의 주인은 보이지 않고, 쓸만한 정보도 얻지 못했다.


검둥이와 나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 산책을 끝내고 땀을 식히며 하산했다.

퇴근하기 전 한 번 더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득 안아주며 귀에다 속삭였다.


"멍멍아~ 만나서 반가웠어. 너랑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이 내겐 정말 잊을 수 없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해 멍멍아~ 잘 있어!"




그리고 2023년 11월 24일, 오늘이 녀석의 주인을 찾는 마지막 공고일이다...


동물보호법 제43조(동물의 소유권 취득)
 시ㆍ도 및 시ㆍ군ㆍ구가 동물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유실물법」 제12조 및 「민법」 제253조에도 불구하고 제40조에 따라 공고한 날부터 10일이 지나도 동물의 소유자등을 알 수 없는 경우
2. 제34조제1항제3호에 해당하는 동물의 소유자가 그 동물의 소유권을 포기한 경우
3. 제34조제1항제3호에 해당하는 동물의 소유자가 제42조제2항에 따른 보호비용의 납부기한이 종료된 날부터 10일이 지나도 보호비용을 납부하지 아니하거나 제41조제2항에 따른 사육계획서를 제출하지 아니한 경우
4. 동물의 소유자를 확인한 날부터 10일이 지나도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의 소유자와 연락이 되지 아니하거나 소유자가 반환받을 의사를 표시하지 아니한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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