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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Dec 30. 2023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민원인

생활안전 출동, 고드름 제거 현장 민원

"관계자분 되십니까? 헬멧이 있으면 헬멧을 착용해 주시고 조금 더 물러나 주신 뒤 주변을 통제해 주시겠습니까?"


"아.. 아.. 네네!!"


빌딩 높은 곳에 고드름이 있다는 관리사무소의 신고로 현장에 나왔다. 평일 오후 시간대라 사람들이 종종 다니는데, 현장 통제가 필요해 관계자들께 이리저리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아래쪽은 제가 통제할 테니까, 선생님들은 윗 쪽이랑 우측에 차랑 사람 좀 막아주세요!"


"네!"




현장은 통제가능한 변수와 통제불가능한 변수가 있다. 통제가능한 변수란 나 자신과 나와 생각을 같이 하고 같은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대원들과 관계자들이다. 통제불가능한 변수란 그 외 모든 상황을 말한다. 현장은 통제불가능한 변수가 훨씬 많다. 특히 사람이 많이 몰려있는 곳은 더욱 그렇다. 조금만 방심해도 안전사고는 삽시간에 발생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무슨 일인지 질문하는 분들은 당장 그분들께 피해가 직접적으로 가는 상황이 아니라면 목례를 하거나 미소만 지으며 지나간다. 일일이 다 응대했다가는 작전을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관계인 집까지 신분을 밝히지 않은 남성이 쫓아와 그 급박한 순간에 이런 질문을 해왔다.


"불났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그 어떤 말과 행동이라도 구조대상자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그래서 조용히 대답했다.


"불은 아닌데, 누구시죠?"

"제가 여기 아파트 관리인입니다."

"아... 별 일 아니니까 내려가 계십시오"


아파트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아파트 관리인이라면 자위소방대 중 한 명이므로 아파트 밑에서부터 신분을 밝히고 질문을 주셨어야 했다. 하지만 책임감 있게 달려온 관리인을 나무랄 수는 없는 일.


현장은 때론 '상황'보다 '주변상황'을 통제하는데 많은 힘을 쏟곤 한다.




지상에서 약 30여 미터의 높이에 달라붙은 고드름은 길이가 약 2.5미터가 넘는 아주 거대한 녀석이었다. 이 고드름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소방 사다리차를 불러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 전 주차장 입구를 막을 수밖에 없음을 관계자 분께 안내드리면서, 출차가 지연되는 차량에 양해를 구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작업을 시작한 지 약 5분쯤 지났을까... 고개를 위로 한 번 들었다 내리는 순간 깜짝 놀라 소리를 치고 말았다.


"선생님!!!!!!!!!!!! 뒤로 물러나주세요!!!!!!!!!!"


사다리차의 쨍~한 엔진소음을 뚫고 목소리가 닿아 여자분 두 분이 나를 돌아보았다.


"고드름이 떨어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 주시겠습니까?"


그중 한 분이 내게 말했다.


"아니, 이 작업 도대체 언제 끝나요?"

"아, 안에 대기 중이신 분이군요.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보다시피 고드름이 많이 커서요."

"지금 저 나가야 되는데, 많이 결린다뇨! 그리고 차가 빠져나갈 수 있게 강구를 하고 작업을 하셔야지 이게 뭐예요 도대체!"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작업하도록 하겠습니다. 차를 배치하는 게 이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이 방법 밖에 없다는 게 말이되요? 저기 위로 올리면 되잖아요!"


사실 경사가 있어 딱히 더 방법이 없었다. 몇 번의 시뮬레이션 끝에 결정한 작전이다. 더 대꾸했다가는 크게 싸움이 날 것 같아 돌아서기로 했다.


"죄송하지만 안전을 위해 조금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같이 계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소리치셨다.


"이 추운 날 밖에서 좋은 일 하려고 나온 소방관들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진짜 너무하시네 정말! 우리가 사는 건물에 위험을 제거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그래요???"


그 한마디에 나를 몰아세우던 분은 조용히 들어가셨고, 고드름 같이 얼어버렸던 내 마음도 동시에 녹아내렸다.


15분 정도 걸린 작업이 무사히 끝나고 차에 올라타며 동료들을 격려하는데, 기다리고 있던 차량들이 줄지어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가장 오래 기다렸을 첫 번째 차량에 타고 있던 아주머니가 창문 너머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나는 아까 그 칠★사이다 아주머니를 알아보고 조용히 엄지손가락을 가슴 위로 올려 보였다.






요즘 부쩍 현장에 접근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역 SNS 채널에서 지역소식을 제보하면 커피쿠폰을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교통사고 현장을 지나던 차량이 차량을 아예 멈춘 채 운전자가 휴대폰을 꺼내 사고 현장을 촬영한 후 떠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도 꿈쩍도 않는다.


서비스직 5년에 대리운전 2년까지... 다양한 고객 클레임과 상황을 경험해 온 덕분에 다행히도 민원인들의 민원이 크게 불편하거나 두려운 것은 없다. 다만 현장에서 내가 통제하지 못한 통제불가능한 변수로 인해 나와 내 동료, 그리고 시민들이 다치고 죽게 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고 숙제다.


현장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되는 것이 그나마 목소리인 것 같다. 그 어떤 사이렌을 울려도 목소리가 최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주 1회 1시간씩 투자한 복식호흡과 비강공명으로 소리친다.

https://brunch.co.kr/@kiii-reng-ee/14



"선생님! 현장은 위험하니 통제 선 밖으로 물러나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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