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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Feb 04. 2024

한 여름밤 비번날 마주친 교통사고 1

사고현장 속 빛난 시민들의 용기

피서철이 되면 도심 속 빌딩 숲을 떠나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조용한 시골에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리니 한편으로는 반갑고 감사하지만, 안전과 씨름하는 담당자들은 온 신경이 계곡으로 가 있다. 아무리 강조하고 아무리 홍보해도 반갑지 않은 안전사고는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러 온 곳에서 끔찍한 사고를 당하는 구조대상자, 유가족들을 보면 내 가슴도 찢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한 여름 피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꼭 여름이 아니더라도 계곡이나 바다를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콩이가 태어나면 한 동안 계곡은 못 가 볼 것 같아 만삭인 아내를 데리고 할머니 집 앞 계곡을 다녀오기로 했다. 시원한 물가와 푸른 숲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자 아내의 표정은 금세 환해진다. 수영은 못 해도 발은 담글 수 있다.


아내와 같이 텐트를 칠 수는 없으니 예약한 사이트에 하루 전 날 혼자 가기로 했다. 서 있기만 해도 무더운 날씨 속에 2시간 넘게 텐트를 치고 장비를 세팅한 후에야 작업이 모두 끝이 났고, 땀에 젖어 찝찝한 옷을 그대로 입고 쉰내를 풍기며 차에 올라탔다.


"텐트 잘 쳤어요? 고생 많았죠~"

"괜찮아요~ 금방 끝나던데요? 내일 몸만 딱! 오면 될 것 같아요. 달콩이랑 잘 놀고 있어요?"

"네~ 이 녀석이 발로 쿵쿵 차네요. 아빠 엄마가 보고 싶은가 봐요~"

"얼른 보고 싶네요~ 이따가 보아ㅇ..."

"키랭이님?"

"어어어어~ 잠깐만요. 다시 전화할게요"


앞, 뒤, 옆으로 차 한 대 없는 어두운 시간에 1차선을 달리고 있던 웬 불빛 하나가 위아래로 곡선을 그리며 흔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전화를 급하게 끊은 것이다. 빠르게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조금씩 늦추자 전방에 차량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2차선으로 피하려고 하자 말도 안 되게 커다란 나무가 한 개 차선을 덮친 채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불빛을 흔들고 있던 사람과 나무를 회피하고 1차선 가드레일을 박고 있는 차량을 지나 2차선에 차량을 세웠다.

실제현장 사진

"무슨 일이시죠!" 불빛의 주인에게 물었다.

"아! 사고가 난 것 같아요. 저도 일단 나무가 서 있어서 차를 세우고 다른 차가 못 들어오게 막고 있는 중인데 차 안에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놀라운 용기였다. 해당 도로는 주택이나 건물이 없고 심지어 가로등조차 없는 도로였으나 제한 속도는 80km인 고속으로 주행하는 차량이 많은 국도였다. 심지어 경사도로의 정상에서 곡선으로 내리꽂는 구간이라 자칫 전방주시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2차, 3차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구간이다. 그런 도로 위에서 휴대폰 플래시 하나에 의지에 서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 차량 사고도 아닌데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불빛을 흔들던 젊은 청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피하느라 여러번 갓깃로 회피기동을 했다고 한다.


중요한 건 운전자다.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차량을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편안한 차림의 한 남성이 자신이 차주라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선생님!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아... 네... 2차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가 쓰러지면서 그걸 피하려다 그만..."

"다행이네요. 차량 잠시 확인하겠습니다."


엔진룸이 밀려들어가거나 연료 따위가 유출되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확인을 하러 갔다. 다행히 화재와도 무관한 상황으로 보였다.


"견인차는 부르셨습니까?"

"아 그게... 어디에 연락해야 될지 몰라서"

"네? 일단 보험회사에 연락하셔야죠!"

"전화번호가..."

"음... 잠시만요"

실제현장 사진

빠르게 대화를 하고 있는 중에 흰색 포터 한 대가 사고 차량 뒤에 속도를 늦추다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운전자는 상황을 감지하고 자신도 경광봉을 들고 1차로를 주행 중인 차량의 서행을 유도하고, 2차로에서는 젊은 운전자가 나무와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유도하고 있다. 나는 운전자를 도와 보험사에 연락을 시도했다.


"선생니~~~~~~~임!" 멀리서 1차로 유도를 도와주고 있는 분에게 소리쳤다. "저희는 나무를 치울 테니 1차로 유도 좀 부탁드려요~ 그리고 삼각대 있으시면 설치해주세요~~~~~~~~~~"


다행히 한 두대 차량이 멈추기 시작하자 도로의 차량들은 서행을 시작했고 도로는 다소 정체가 되었다.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되자 2차로 젊은 시민과 사고차량 운전자 그리고 나는 도로 위의 나무를 한쪽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주 기둥이 아니라 큰 나뭇가지가 쓰러졌던 것이라 장갑을 낀 손으로 힘을 합쳐 옮기니 금세 도로는 깨끗해졌다.


"아이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네~ 진짜 고생하셨어요~"

실제현장 사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어두웠던 도로는 어느새 쌓여버린 차량들의 불빛으로 가득 채워져 도로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환하게 비추는 그 불빛은 남의 일을 제 일처럼 여기고 발 벗고 나선 시민들을 더욱 빛나게 하는 희망의 불빛이었다.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소방관인 나와는 차원이 다른 헌신과 희생, 그리고 사랑이었다.

 

어느새 견인차가 현장에 도착했고, 견인차와 사고차량 운전자가 떠난 후에야 우리 세 사람은 다시 만나 서로를 격려한 후 현장을 떠났다.


얼마가 지났을까... 갑자기 문득 아내가 생각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너무 늦었죠?"

"무슨 일 있었어요?"

"아~ 앞에 사고가 났더라고요~ 그것 좀 보고 온다고~"

"크게 났어요? 안 다쳤어요? 키랭이님은 괜찮아요?"

"아아~ 별거 아니더라고요~ 잠깐 도와드리고 가요~ 시간이 많이 됐네~ 얼른 보고 싶네요~"

"거기 엄청 위험한 데잖아요? 도와주는 것도 좋은데 항상 조심해요~"

"알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집에 다 와가는데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 나는 빵..."

"엇! 잠시만요!!! 다시 전화할게요!"


'경찰차...?'


집 앞에 다와 가 좌회전을 하려던 나는 황급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뭐...뭐야 이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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