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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Feb 07. 2024

한 여름밤 비번날 마주한 교통사고 2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

빵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려던 아내의 전화를 다급히 끊고, 적당히 차를 댈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저마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거나 발을 동동 구르는 인파 사이로 신원미상의 남성이 한 명 보였다.


'교통 사곤 가?'


비스듬하게 세워진 차량 옆을 지나자 사태의 심각성이 뼛속까지 와닿았다. 밀려들어간 엔진룸에서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창문너머로는 분명 사람의 실루엣이 확인된 것이다.

'빵빵빵!!!'


긴급차량도 아니면서 괜히 클락션을 울리며 겨우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차를 댔다. 통사고가 확실하다! 오토바이가 쓰러져 있는 걸로 보아 차 대 오토바이 사고인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괜찮은지 정도만 물어보고 곧 구급대가 오니 조금만 참으라고 이야기해 주었겠지만 이번엔 뭔가 심상치 않았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차를 탔을 때는 클락션을 울렸지만 사람일 때는 목소리를 울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보험회사에서 빨리도 왔다며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사고 난 지 2분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놀랄 만도 하다.


차량을 살펴보니 총 세 사람이 있고,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음하고 있었다. 교통사고가 나면 부상의 고통이 곧바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고통의 감각이 깨어난다. 의식이 없는 환자를 우선 대강 평가해 보니 CPR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문제는 보닛의 연기! 얼른 몸을 돌려 내 차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처음보다 두 배 넘게 많아진 인파 사이를 다시 뚫고 지나가 트렁크 문을 열었다.

'윙~' 평소 차량용 소화기를 싣고 다니고 있고 위치는 알고 있어서 트렁크 문이 다 열리기 전 얼른 소화기를 집었다. 마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에 몸을 밀어 넣어 빠져나가는 성격 급한 모습과도 같았다.

"저기요 선생님! 이 소화기 드릴 테니까 혹시 차에서 불꽃이 난다! 그러면 바로 뿌려주세요"

얼떨결에 나의 간택을 받은 시민은 어리둥절해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아, 네.. 네!!"

"아! 그리고 소화기는 쓸 줄 아시죠?"

"여길 잡고..  이렇게...  이렇게..  좀 부탁드릴게요!"


혼자 해도 될 일을 굳이 지나가는 시민 1께 부탁드리는 이유는 재난 사고 현장은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눈 판 사이 불이 붙을 수도 있고, 다른 차량이 현을 덮칠 수도 있다. 불은 나지 않았지만 소화기를 사전에 전진 배치 하고, 신호수를 세워 안전을 도모해야만 한다.


"여보! 흑흑 어떡해! 여보!"


소화기를 남성에게 건네주고 다른 구조대상자를 보려고 하는데, 둥그렇게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웬 중년 여성의 흐느끼는 비명소리가 귀에 꽂혔다. 속으로 오토바이 운전자인가 싶어 자리를 이동하려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 발 옆에 10대로 추정되는 대상자가 비명을 지르며 끙끙댔고, 차량 보닛 앞, 그러니까 살짝 밑으로는 마찬가지로 10대로 추정되는 대상자가 곧 숨이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의식은 없었다. 비명을 지르는 여성 옆에는 중년 남성 한 명이 가늘게 신음하며 불편한 자세로 버티고 있었다.


출동거리 3분도 안 되는 소방대는 도착이 지연되고 있었다. 아마도 다른 관할에 출동을 나간 것 같았다. 다급해진 나는 숨을 고른 후 상황을 급히 정리해 보았다.


차량 속 구조대상자 3명, 차량 밖 구조대상자 3명.

화재발생 위험 존재함.

인파가 많아 2차 사고 우려되나 구조인력으로 사용 가능함.

경찰차와 경찰관 2명이 있으므로 활용가능함.


우선순위를 세웠다. 먼저, 상황 통제가 필요하다. 현장 옆에 서 있던 경찰관 2명에게 말했다. "119 신고했나요? 주변 교통, 인파 정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동네 마실용 반바지와 흐물거리는 반팔티, 소금물에 절어버린 생선처럼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눈빛과 음성만큼은 살려놓은 탓에 전달이 잘 되었다.


안전이 어느 정도 확보된 후 두부출혈이 있는 중년 남성에게 접근했다. "어머님, 119 구급대가 곧 도착하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갑작스럽게 당한 사고에 남성의 아내는 거의 패닉상태였기에 협조를 부탁드렸다. 아버님! 어디가 제일 불편하세요?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아이고~ 아~ 아악~" 고통

스러운 신음만 하는 남성의 머리는 부계단 모서리에 찍힌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움직임을 보아 골절이 의심되었다.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구부정한 환자의 자세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겠다 싶었고 본인도 편한 자세를 원하는 듯했다. "자 제가 말씀드리면 천천히 옆으로 높일게요 하나~ 둘~ 셋!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남성을 이동시키자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환자평가에 나섰다. 차 앞 쪽에 고꾸라진 대상자 의식이 없고 호흡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긴급환자로 보았다. 바닥에 쓰러진 10대 남성은 의식과 호흡은 명확했고 걷지 못할 뿐, 다만 고통 때문인지 가장 크게 소리르 지르고 있었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소리를 제일 크게 지르는 사람에게 시선이 쏠렸다가 더 긴급한 환자를 놓칠까 싶어 호흡을 가다듬고 차량 앞 대상자에게 집중했다.


마침 119 구급상황센터와 연결 중이었기에 CPR 실시 여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구급상황센터CPR을 실시할 것을 언급했다. 불규칙한 호흡을 하는 대상자를 향해 가슴을 압박하려던 찰나 어디선가 '스르륵'하는 매끄러운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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