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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Sep 18. 2023

직장인이 취미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

퇴근 후 삶은 내가 설계하고 싶어

작년 가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아는 동생이 고향에 잠시 내려왔다. 노래를 한 곡 짧게 불러주었는데, 정말이지 직관을 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로 너무너무 황홀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목 라이브가 아니라 공간감이 살아있는 땡글땡글한 목소리로 현장을 꽉 채웠다.


직장에서 주는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내가 꿀 수도 없는 꿈이겠거니 싶으면서도 나도 저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동생에게 연락해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저... 음... 노래를... 음... 배워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을까...? 나도 뮤지컬 노래 부를 수 있을까?"


"오빠~ 목소리 좋잖아요. 한 번 해봐요! 제가 선생님 소개 해 드릴게요."


지방에서는 레슨을 해주시는 선생님을 찾기가 어려워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선생님까지 소개해 준다니 너무 고마운 것이 아닌가. 당장 연락처를 입수해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다음 미션으로 나의 단짝에게 이 사실을 설명해야 했다.


그 어떤 사업설명회 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다. 취미생활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적극 어필하게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어느 저녁 무렵 아내에게 첫마디를 내뱉었다.


"노래 한 번 배워볼까요?"


"네"


"네?"


"배우면 좋을 것 같은데?"


"아, 네... 고마워요..."


결재가 너무 빠르게 났다. 회사에서도 힘들게 보고서 만들어 올리면 생각보다 빠르게 결재를 받을 때가 있는데 허무한 느낌이 그때와 비슷했다.


아내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또 그것이 가정에 해가 되고 문제가 되지 않으면 할 수 있게 적극 응원하는 편이다. 그래도 비용이 들어가는 부분이라 설명을 해야 하는데 말하기도 전에 바로 허락을 해 주었다.




나는 직장인이다. 집보다 직장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아내보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어쩔 때는 일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저녁에 사적인 모임을 해도 대부분 직장 동료들이다.


만나면 또 일 이야기.


업무적으로 발전적인 대화도 많지만 가끔은 험담도 하고 답답한 심정도 마구 털어놓기도 한다. 그것이 잘 못 되었다고는 절대 생각지 않는다. 다만 내 삶 전체가 일에 둘러 쌓여 세상의 다른 모습을 못 볼까 봐 두렵다. 세상엔 내가 알고 있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한 잔 술로 풀 때가 많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침이 되면 늘 후회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일을 하자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맑지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배는 점점 나와 고개를 숙였을 때 내 발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끝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퇴근 이후의 삶은 온전히 내가 설계해 나가고 싶다. 그리고


 직장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는
 신발장에 넣어두고 퇴근하고 싶다.


그래서 내가 취미생활을 그토록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노래를 배우고 있는 지금. 온전히 내 몸이 악기가 되어, 성대를 어떻게 할지, 혀는 어디다 둘지, 배는 어떻게 할지, 자세는 어떻게 할지 등 섬세하게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나와 친해져 있다.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다.


결국 내가 나를 위로하고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된다.


꼭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휴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게다가 그 휴식이 나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면,

취미생활...  볼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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