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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Nov 06. 2023

당신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 2

<추락을 막아라> - 맺는 이야기

https://brunch.co.kr/@kiii-reng-ee/129

당신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그 두 번째 이야기



2 - 1. 고3


특별할 것 없는 대한민국 '고3 수험생'의 하루는 계속되고 있었다. 원하든 혹은 원하지 않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눈을 뜨면 0교시도 모자라 마이너스 교시까지 있을법한 수업시간을 맞추느라 서둘러 학교에 갔고, 오후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갔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물게도 나는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학기 초에는 어쩔 수 없이 학교 룰을 따랐지만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 빠져나왔다. 학교에서 보면 불량스러운 학생이 아닐 수 없었다. 오후가 되면 책가방 하나 을러메고 혼자 터벅터벅 학교 밖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불량학생이니 말이다.


다행인 것은 학교에서 우려할 만한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 그저 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 갇히는 것이 싫었을 뿐이었다. 집에 일찍 가지 않으면 안 될 만한 사정도 있었지만...



그날도 역시 그랬다. 평범한 일상 중 하루였을 그날...


교실 문이 열렸다. 웅성거리던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국사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들어온 것이다. 지성에 카

리스마까지 갖춘 무시무시한(?) 선생님이자 웃기기까지 한 유명한 선생님이었다.


"다 들어왔나?"


"네!!!" 학생들은 크게 대답했다.


"와~ OO이~" 선생님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셨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이름이 불리는 게 참으로 두렵다. 공부를 못하면 늘 주눅 들어 있어야 한다. 당시에는 사랑의 매를 넘어서는 체벌이 성행했기 때문에 자초지종을 모르고 맞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물론 이 선생님은 그 정도로 대책 없이 때리는 분은 아니었지만, 이름이 불릴 일이 잘 없기 때문에 한 껏 긴장하고 있었을 뿐이다. 또 따뜻한 서울표준어가 아니라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르는 억양. 경상도 사투리에 낮게 깔린 베이스음으로 이름을 부르니 긴장은 몇 배나 더해졌다. 호명된 이름 뒤에 이유를 빨리 달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OO이~" 하고 이름 뒤가 허전하니 무슨 일인지 궁금해지던 참이었다.


"네가 인마 슈퍼맨이야?"


"네? 아... 아닙니다."(요즘은 다. 나. 까. 를 쓰는 게 버릇이 되었지만 그때는 무엇을 더 많이 썼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와~ 이거 그리 안 봤는데, 니 인마... 우와... 니 정체가 뭐야 도대체 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며 어느새 내 옆까지 온 선생님은 계속 흥분 상태였다.


"무슨... 일이신지..."


교단으로 돌아간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갔다.


"와... 인마 이거 완전 미친네"


화가 나신 것이 아니라 뭔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오히려 그 말에 긴장감이 살짝 풀리고 있던 찰나 믿기 힘든 이야기기 내 귀에 꽂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온몸이 오그라들고 말았다.


"니 아파트 그 높은 데까지 어떻게 올라간 거야? 니가, 니가 무슨 스파이더맨이야? 우와~"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다시 말씀을 이어나갔다. "야~ 다 박수 한번 쳐줘라. OO이가 아파트에 기어 올라가서 사람을 구했단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80개가 넘는 눈동자와 100 데시벨은 금방 넘을 것 같은 박수소리에 식은땀이 절로 났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한 일이라 이렇게 이야기가 퍼져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당황했던 것도 있었다.


흥분한 탓에 말도 살짝 더듬어 가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니, 니, 그, 와~ 니 그 어떻게 한기고? 안 무섭드나?"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냥... 올라갔습니다..."


"마! 뭐 하나 다시 박수 한 번 쳐줘라! 니 진짜, 우와~"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명령에 학생 일동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곧이어 선생님께서 나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경위가 파악되었다.


"이웃 주민이, 이웃 주민이 학교에 글을 하나 올맀드라. 이그는 완전 기사감이다. 와~ 마, 하이튼 대단하네"


이웃주민이 제보를 한 것이다. 이. 웃. 주. 민.




2 - 2. 이웃주민


내 이야기는 금세 학교 전체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지나가는 선생님들 마다 어깨를 한 번씩 쳐주며 응원과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평소 잘 모르던 친구들도 칭찬 한 마디 씩 하며 지나갔다. 학교 내에서는 학업성적 때문에 기가 많이 죽어있어 선생님을 피해 다니곤 했는데, 이때만큼은 고개를 조금 들고 다녔던 것 같다.


'이웃주민이 도대체 누구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제보를 한 걸까?' 이제 이 부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녁이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막내외삼촌이 니 참 대견하다고 전화 왔더라. 그리고 숙모가 뭐라 뭐라 하던데, 나중에 전화드려봐" '삼촌이? 엄마가 또 자랑했나 보네...' 별 생각이 없었다. 자식자랑이라면 침이 마르는 것도 모르게 하시는 게 부모님이다. 세상 모든 부모는 그럴 것이다.


"숙모, 잘 지내셨어요?"


"어, 니 대단한 일 했데~"


"네? 아.. 네..."


"그런데..."


숙모는 놀랄만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며칠 전 낮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이웃을 만났는데 숙모의 조카로 추정되는 학생이 사람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숙모는 인상착의와 나이를 물었고 그 학생이 누굴까 하던 찰나 다른 이웃 한 명이 연락이 와 그 학생이 누구인지 이야기하고 갔다는 것.


그렇다. 추락위기에 놓여있던 시민을 구한 그 아파트는 숙모가 살던 아파트이고 라인마저 동일한 라인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도 몇 해 전까지 살던 아파트라 거의 집처럼 들락날락하던 나를 똑똑히 기억하는 이웃이 꽤 있었다.


이웃주민의 정체는 '막내외숙모'였다.


"이거는 진짜 칭찬받을만한 일인데, 아주머니한테 들어보니까 나이만 이야기하고 자리를 빨리 떠서 이야기도 많이 못했다고 하시더라고. 많이 아쉬워하시던데... 나라도 올려야지 싶더라고. 아무튼 고생했다. 도움받으셨던 분이 나중에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더라."




2 - 3. 인터뷰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시민을 구한 지 어느덧 며칠이 지나가고 있었다. 졸지에 슈퍼맨 혹은 스파이더맨이 되어버려 기분은 좋았지만 부담도 적잖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더 부담스러운 일이 하나 더 들어왔다.


인터뷰였다.


첫 번째 인터뷰는 시청에서 이뤄졌다.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카메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니 사진이 찍혔다. 그리고 이 사진은 15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인터넷에 박제(?)되어 있다. 기자님은 당시 상황에 대해 상세히 물었다. 사람하고 이야기를 할 뿐인데,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잘못을 저지르고 조사를 받으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 기자님이 무섭게 이야기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인터뷰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인터뷰는 신문사에서 이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터뷰를 따야 하는 사람이 자기 사무실로 대상자를 부른다는 게 참 의아하긴 하지만 그때는 카페도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다. 이 번 인터뷰는 내 이야기를 꽤 많이 들어주었다. 한참을 신나 떠들었는데, 기자님이 호응을 많이 해주신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떠든 이야기는 첫 번째 기사와는 다르게 굉장히 길게 실려 나갔다. 아버지와 있었던 일화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이 기사는 종이신문으로 발간되어 지금 아버지께서 스크랩으로 보관 중이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말을 어떻게 조리 있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이것저것 두서없이 쏟아내었던 것 같다. 그때 그 기자님은 아마도 속으로는 '빨리 끝내라 이 녀석'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하'




2 - 4. 시민상 수상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 참으로 숭고한 일이기는 하나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다 보니 '내가 이런 관심을 받을 자격이나 있나?' 하는 의심도 들었었다.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이 세상에 넘쳐날 텐데, 꼭 나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싶었다.


내가 사는 '시(市)'에서 상을 준다기에 더욱 그러했다. 용감한 시민상 같은 그런 상이 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올 한 해 좋은 일을 한 시민 몇 명이 뽑아 시장 상을 수여하는 것이다. 나 말고도 몇 분 더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내 손을 잡으시던 당시 시장님께서 안아주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진짜 용감한 일 했네. 상 받을만하다. 축하해"라고.



연말이 되어 의사협회 측의 상도 하나 받게 되었다. 소방서에서 시상을 하게 되었는데,

3층 대회의실 겸 강당으로 올라가 차례를 기다렸다.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나도 바라보았다. 그때 그 환한 얼굴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

.

.


이웃을 조금 도와드렸을 뿐인데 너무나 많은 관심과 이벤트로 내 삶의 한 부분이 채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담스럽고 민망하기도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던데, 나는 발이랑 머리랑 몸통이랑 발가락이랑 손가락이랑 아주 그냥 온 동네방네 소문 다 나버린 것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대학진학과 취업의 갈림길에 서서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으로의 회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구름 위를 타고 날아다니는 꿈은 이제 깨어야 한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2 - 5. 에필로그


타 소방서에서 발령을 받아 지금의 소방서로 온 지 며칠 안 되었을 때이다. 3층 강당을 이곳저곳 둘러보며 역대 서장님들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쭈욱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새 제법 많은 서장님들이 다녀가신 것 같다.


"반장님, 여기서 뭐 하십니까?"


멍하게 강당에 서 있는 나를 후배 한 명이 보더니 물었다. 어느 겨울, 이곳 강당 한가운데에 코트를 입고 서 있던 학생 한 명이 떠올라 멍 때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여기... 그대로네... 20년 동안 크게 안 변했네. TV형 모니터 생긴 것 외에는 진짜 그대로인 것 같아."


"여기 와 보셨습니까?"


"아... 응... 20여 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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