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랭이 Nov 01. 2023

당신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추락을 막아라> 내 생에 가장 뜨거웠던 5월

그 해 5월 저녁은 꽤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정이 다 되어가면 어떤 봄 저녁이든 추워지기 마련이다. 수능시험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온 수험생의 밤은 더욱 그러했다. 딱히 공부를 하지는 않더라도 고3 수험생이라면 독서실 하나쯤 끊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녀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없는 돈에 아버지를 꼬셔 독서실에 내 앞으로 된 책상 하나를 분양받았고, 그것을 빌미 삼아 저녁마다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애써 해 본 집중은 1시간도 가질 않았다. 의자랑 엉덩이랑 싸웠는지 의자에 엉덩이만 붙이면 몸이 들썩들썩 거린다. 도저히 합의가 안 되는 부분이다. 그날도 역시 독서실 친구들과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놀이터로 우르르 몰려갔다. 무게를 못 이기고 삐그덕 거리는 그네를 타기도 하고, 하지도 못하는 턱걸이를 한다며 철봉에 매달리기도 했다. 가끔 꿈과 관련된 이야기도 하며 꽤 고상한 '고삼'인척도 해본다.


"야"


"왜?"


"니 대학 어디 갈긴데?"


"모르겠다. 내가 되겠나?"


"나는 OO대학 갈 거다."


"아~ 맞나?"


"응"


뭐 이런 싱거운 대화나 하며 시간을 축내고 있는 고3들이었다.


그때였다.


"아~~~~~~~악!!!!!!!!!!!!!!!!!!!!!!!!!"


한 번 더 울렸다.


"아~~~~~~~악!!!!!!!!!!!!!!!!!!!!!!!!!"


(???) 시끄럽게 떠들던 친구들은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비명소리인 줄도 몰랐다. 우리는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아파트 숲 옆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있었는데, 거리가 멀어서인지 식별이 잘 되지 않는 그런 소리였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나는 학교를 홀로 빠져나와 빠른 걸음으로 소리를 쫒기 시작했다.


"아~~~ 악!!!! (숨을 몰아쉬며) OO 아!!!!!!!"


분명 여자의 목소리였다. 누군가를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


나의 걸음도 동시에 빨라졌다. 운동장에서 놀던 친구들에게는 먼저 간다고 말을 하며 현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뛰었을까. 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아파트 베란다에 눈이 멈췄다.


당시 상황을 그려(?)보았다.

베란다에는 검은 물체를 양손으로 붙잡고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으악!!! 안 되겠어. 놓치겠다. 으악!! 제발!! 제발!! OO 아!! 아!!!!!!"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은 물체는 남자로 보였고, 여자는 양손으로 남자의 손을 포개어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며 아주머니에게 소리쳤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제가 올라갈 테니까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금방 갈게요!"


몇 초만 늦으면 정말 몇 초만 늦으면 남자가 땅으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아주머니는 "못 버티겠어요!"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용감한 척 말은 꺼냈지만 아파트 화단에 다다랐을 때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3초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올라갈까. 아니면 먼 거리를 돌아 아주머니 집으로 들어갈까.'

하지만 돌아가봐야 아주머니 집은 잠겨져 있을 것이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옆 집으로 들어가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었다. 3초가 지났다. 결단했다.


"아주머니 제가 베란다를 타고 올라갈 테니까 진짜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네!!! 네!!! 아이고...!!!!"


1층 베란다부터 밟고 올라가려는데 뒤따라왔던 친구가 한 명 있었음을 깨달았다.


"OO아! 내가 올라갈 테니까 119에 신고해 주고, 혹시 경비아저씨 오면 나 도둑 아니라고 설명 좀 해줘!"

그렇다. 말하다 보니 내가 도둑으로 오해받진 않을까 두려움도 사실 있었던 것이다. 한 밤 중에 베란다 샷시가 흔들거리면 주민들도 얼마나 무섭겠는가. 혹시나 올라가다가 나를 떨어뜨리거나 욕을 하진 않을까 싶어 친구에게 신신당부를 해뒀다.


"어! 그래 내가 신고할 테니까, 조심히 올라가!"

"어~ 땡큐!"


첫 번째 층의 난간을 잡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1층 베란다에 올라섰을 뿐인데 벌써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1층을 벗어나 2층 베란다로 막 올라서려던 순간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손이 너무 떨렸던 탓인지, 땀이 많이 났던 탓인지 순간 손을 놓치고 말았다.


"악!"


짧은 비명을 지른 나는 얼굴이 벌써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다행히 어둠 속이라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주머니에게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리라 안심하며 한 발 더 내딛는데 다음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번쩍) 1층의 불이 켜진 것이다. '당황하지 말자 후... 후...'

"OO아 설명 좀 해줘!" 애꿎은 친구에게 부탁했다.


이제 2층이다. (번쩍) 이번에는 랜턴 불빛까지 같이 들어왔다. "뭐 하시는 거예요?" 경비아저씨였다. 친구는 아저씨와 2층 주민에게 설명을 해 나갔다.


"아~ 학생 조심히 올라가! 내가 불빛 비춰줄게. 어~어~ 선생님~ 지금 학생이 사람을 구하러 올라가는 거니까 안심하셔요~ 도둑 아니랍니다~"


'크게도 말하신다... 도둑 아닙니다...'

그림 컴플렉스가 있으니 그림은 언급하지 말자.

그렇게 경비아저씨와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구조대상자가 있는 곳까지 겨우 도착했다. 정신을 잃은 아저씨는 90kg 정도 되어 보였다. 아주머니에게 손을 떼시라고 한 뒤 나의 왼손은 난간을 오른손은 아저씨를 끌어안았다. 60kg 조금 더 나가던 내가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다음은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나의 힘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 째, 친구, 경비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아저씨를 다시 난간 위로 끌어올려놓는 것이었다.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단점이 있다면 정신을 잃은 무거운 남성을 과연 위로 끌어올릴 수 있겠느냐였다. 평소 같으면 금방 끌어올렸겠지만 축 늘어진 남성의 체감 무게는 상당했다.


둘째, 아래층으로 내려 보내는 방법이 있었다. 베란다를 타고 올라오면서 아래층에 노부부께서 불을 켜셨다. 베란다에 머리를 내밀고 보고 계셨는데, 아래층에 흘러내릴 수만 있다면 노부부께서 아저씨를 끌어안아주시는 형태로 순식간에 구조가 가능했다. 시간이 가장 덜 걸리는 아주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리스크는 한 가지 있다. 내 키의 한계로 난간을 까치발로 선채 아저씨의 무게를 버티는 것이다. 나만 실수하지 않으면 가장 빠르게 구조가 가능하다.


'그렇지! 2번이다!'


"아주머니, 지금부터 아저씨는 내릴 거예요. 안심하시고 숨 좀 돌리셔요. 아래층에 어르신! 아저씨를 밑으로 보낼 거니까 발부터 내려가면 끌어안아주세요. 무거우니까 두 분이서 하시고, 조심하세요!"


아래쪽 지원팀에게도 당부했다.


친구에게 "119 아저씨들 오면 이쪽으로 좀 안내해 줘"라고 전달했고, "다른 주민들 안심 좀 시켜주세요"라고 말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아저씨의 배를 감싼 오른손을 서서히 조심스럽게 내리며 내 몸을 미끄럼틀 삼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조금 내려가기 시작하자 나는 손을 미끄러뜨려 양손으로 난간을 붙잡았고 아예 몸을 활 자로 만들어 내려보냈다. 아저씨의 몸이 반쯤 내려갔고 아래층 노부부는 안전하게 아저씨를 끌어안았다. 나도 서둘로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렸고 난간 아래 끝에 다다랐을 때즈음 아저씨도 아래층에 무사히 인계되었다. 손과 팔, 다리, 발, 온몸에 힘이 다 빠진 나도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로 했고, 아래층 베란다에 같이 쓰러졌다.


생에 처음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손 발이 떨리다 못해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고 잊고 있었던 고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고생했다는 노부부의 말에 대답도 나오지 않았을 정도니 말이다. 마치 과호흡이라도 하는 듯 숨을 격하게 몰아쉬며 한참을 베란다에 누워 있었고, 노부부는 그런 내게 조금 누워 있어라며 배려해 주셨다.


아래층으로 내려온 아주머니는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해주셨지만 나는 그 말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 "네" 인지 "에" 인지도 모를 이상한 대답을 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10분 정도 지난 것 같다. 물을 건네주는 노부부를 바라보며 마침내 웃어 보였다. 어디서 나를 많이 본 것 같다는 말에 머쓱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몇 살이야 학생?"


"아.. 저 열아홉 살이에요"


"아~ 대단해 학생. 장하다. 고생했어.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나? 학교는?"


"네? 아... 아닙니다. 저는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봐서... 아무도 안 다쳤으니까 가보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아, 아니 그래도 학교라도.."


"감사합니다 어르신"


뭐가 그리 쑥스러웠는지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아마 떨림이 계속 남아 있어 부끄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정신도 없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기도, 가볍기도 했다. 근육통이 아프기도 기분 좋기도 했다. 머리가 복잡하기도 맑기도 했다. 이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과 느낌, 고통은 아마도... 사람을 구했다는, 한 생명을 구했다는 성취감? 만족감? 뭐 그런 게 아니겠는가 싶었다. 생전 처음 경험해 보는 그 느낌에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살면서 이런 일을 앞으로 얼마나 겪을까 싶었다. '평생 없겠지! 아마 다시는 없겠지! 내가 이런 일을 언제 다시 해보겠어! 그래 잘했다. 잘했어'라며 홀가분한 생각도 들었다.


.

.

.


그런데 평생 이런 일 없을 거라던 그가 결국 소방관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생명을 구하는 것이, 시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내 직업이자 사명이 되었다.

나라고 다른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 많은 도전과 실패, 성공과 좌절도 맛보았다. 그런데 돌고 돌아 소방관이 된 것이다.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지만 나는 그때의 일이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남을 돕는 일이 얼마나 값지고, 생명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지를 알려주기 위해 내려주신 선물 말이다.


오늘도 출동벨이 울리면 현장을 향해 달려간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던 그때의 5월을 떠올리며.

매거진의 이전글 떨어진 화살을 굳이 내 가슴에 꼽지 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