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랭이 Oct 31. 2023

인생 25개월 차, 이제 감을 좀 잡다

인생 첫 감 따기에 도전하다.

나는 과일을 참 좋아한다. 달콤하기도 하고 새콤하기도 한 과일을 한 입 가득 넣으면 걱정과 근심이 사라진다.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딸기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딸기를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아빠는 겨우내 사놓으신 과일을 얼려놓는 습관이 있으시다.


바나나와 딸기, 블루베리, 우유를 넣고 갈아서 주스나 셰이크를 만들어 주신다. 또 체험을 많이 하게 해 주셔서 요즘은 같이 갈아 만드는데, 직접 한 것에 손이 잘 가는 법인 것 같다.

아부지가 만들어주신 주스


오늘은 왕할머니(아빠의 외할머니) 댁에 가기로 했다. 곧 곶감의 계절이 다가와 감을 따야 된다고 했다. 홍시나 단감은 아빠가 주셔서 먹어봤는데, 곶감을 만드는 고종시는 어떤 녀석일까 궁금했다.

고종황제 때 처음 진상한 곶감에 반했다는 설로 '고종시'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늘 아빠는 주간연가를 쓴 것 같다. 도착한 시골집 마당에 왕할머니가 앉아계신다.


"아이고~ 우리 달콩이 왔나~"


1주일째 고열에 시달리다가 이틀 전 기적적으로 떨어져 내가 올 줄 모르셨나 보다. '할머니~  저 왔어요~' 대신 큰 인사(고객 숙임 인사)를 드렸다.


아빠는 장갑을 끼고 할미와 함께 감나무밭으로 갔다. 밭은 위험해서 엄마랑 놀아라고 하는데, 조금 놀다 보니 금세 아빠가 보고 싶다.

어디 계신가요 아부지~~~
아부지를 찾아나서자!

엄마와 산책을 하며 서서히 아빠가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마침 배와 가슴에 열꽃이 피어 엄마가 아빠에게 보여줘야겠다며 이동을 시작했다. '후훗, 아빠를 보러 갈 수 있겠군'

아부지와 한 컷 히히

초록초록 나무들이 감싸고 있는 산으로 향한다. 도착한 곳에는 주황빛깔 감들이 주렁주렁 엄청나게 달려 있었다.

감따고 있는 할미

아빠의 숙모님들과 할미는 낮은 감들을 손으로 따고, 힘이 센 삼촌들은 '엄마손(도구)'으로 높은 곳의 감을 따고 있었다. 아빠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중간 높이의 감을 따는 중이다.

지붕에 올라간 아부지

한참 쳐다보고 있으니 목이 아프다. 닦여 있지 않은 산길을 조심조심 걷다 보니 색색의 꽃들이 흔들흔들 인사를 건네 온다.

"샤~~ 앙해"라며 안아주니 꽃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빠는 꽃 꺾인다고 놀랬지만.

왕할미가 밥을 주는 검은 고양이도 만나 한참을 보았다.


아빠가 대봉감(홍시가 되면 맛있는)을 하나 따게 해 주셨다. 한참 들고 놀다가 단감을 받아먹었다.

고생하셨어요 아부지♡

아빠의 출근 시간이 다가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오랜 시간 집에만 갇혀있어 답답했는데, 맑은 공기에 땀을 흘리니 너무 상쾌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사랑하는 딸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


달콤한 과일을 좋아하는 달콩아♡ 그동안 많이 아파서 힘들었지? 아직 끝은 안 나왔지만 나쁜 바이러스 이겨내 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이겨내서 다음에도 딸기랑 사과랑 복숭아랑 직접 따러 가보자. "샤앙해"




아빠의 공간


그동안 즐겨 먹던 과일을 직접 수확하러 온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음식 관련해서는 아이가 조금씩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고 한다. 칼을 이용해 깎거나 써는 것들은 따로 하더라도 그전 과정에서 손으로 만지거나 정리하는 것 등은 같이 하면 확실히 아이가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드는 것 같다.


아직 인생 25개월 차라고 잘 모를 것 같아도 아이는 다 안다. 아빠가 놀아주는 만큼, 아빠가 신경 쓰는 만큼 아이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려고 애쓴다.


아이와 요리를 하면 나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과정은 살짝 번거로워진다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아이의 반응에 놀라기도 하고 순수한 눈망울을 보고 있자면 꾸덕꾸덕 쌓여 있는 스트레스도 한방에 날아간다.


인생 25개월 차, 육아 25개월 차.

늘 아슬아슬하고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겠지만,

이제 감을 좀 잡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24개월 차, 나의 두 번째 생일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