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보니 베베~ 꼬인 꽈배기 모양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집 근처 마트 앞에 차를 세우고 아이스크림과 충동구매 물품 몇 가지를 담았다.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으니전화가 한 통 왔다.
"아들 ~ 차 좀 빼주세요~"
"어디야 북극곰~" (북극곰은 수년 전부터 엄마를 부르는 애칭이다)
"차 댈 곳이 없네요~"
계산대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내 차 뒤로 하얀 택시가 비상등을 깜빡이며 서 있다.
"계산해 주러 오셨나요 북극곰~"
"오늘 손님이 많이 없어서 계산해 줄 돈이 없심 미데이(없습니다)"
"잘 안 들립니다. 계산 바랍니다"
"차 댈 곳이 없어서 못 내리겠네요~"
"기달 기달~(기다려)"
엄마와 난 통화를 하면 대부분 농담이나 상황극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장난을 좋아하는 나와 지금은 아이엄마가 된 여동생이 장난을 많이 쳤는데, 엄마도 동화된 듯하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내일 새벽녘까지 일을 해야 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오늘도 밝다. 물건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가 겨우 차 댈 곳을 찾은 엄마에게로 갔다. 그리고 조수석에 불쑥 올라탔다. 곧바로 수다가 시작되었다. 주제는 나의 딸 달콩이 었다.
"아까 파인애플 주러 갔는데 너무 귀엽더라, 가니까 아빠 약을 들고 오더니 '아부지, 아부지'라고 하고, 자기 약을 들고 오더니 '하으니, 하으니'라고 하더라"
아마도 이틀 전 예방접종을 하고 왔는데 자기 위로해 달라는 제스처인 것 같다. 나는 일하고 있어 보지 못했지만 그 모습이 상상이 되어 입가에 아빠미소가 돌았다. 나도 한 술 더 달콩이가 얼마나 귀여운지 엄마한테 실컷 자랑했다.
그러다 시계를 보았다. 바쁜 엄마를 계속 잡아두는 게 아닌 것 같아서
"돈 많이 벌고, 안전 운전해 북극곰~"이라며,
엄마를 잽싸게 배웅해 주었다.
차를 돌리려는 찰나 갑자기 생각나 "음료수 사줄까?"라고 물었지만 엄마는 컵홀더에 물이 있다며 손을 흔들었다. 싱글벙글 웃고 계신다.
멀어지는 흰색 택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엄마는 온통 손녀 이야기뿐인데 나는 왜 엄마 건강상태 한번 묻지 않은 걸까 하고 말이다. 내가 너무 못 됐다...
너무 익숙하기에, 혹은 내가 너무 이기적이기에 그런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나 유튜버 같은 데서 '아버지나 어머니의 삶'과 같은 종류의 영상을 시청하고 나면 "아! 나도 매일 한 번씩 전화드려야겠다."며 머릿속 효자가 되어보곤 한다. 그러나 막상 실천이 안 된다. 해도 이틀이면 금방 끝이다.
'자반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 매일 몇 알의 진통제와 매달 값비싼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엄마는 약값과 생계를 위해 택시운전을 벌써 10년 가까이하고 있다. 몸이 많이 좋지 않을 때는 팔과 다리가 '괴사'를 한 것처럼 시커멓게 변하고, 얼굴과 머리가 퉁퉁 부어 눈이 떠지지 않아 앞을 보지 못하는 지경까지 가기도 한다. 그런 날은 며칠씩 쉬거나, 일을 하지 못해 사납금을 쌩으로 날리기도 한다. 그걸 아는지 회사와 동료분들이 엄마를 배려해 주신단다.
자신의 몸은 그렇게 불편하면서 자식들이 필요로 할 때는 온몸을 불사르며 도와주신다. 그러고는 집에서 꼼짝 않고 휴식을 취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엄마는 어디선가 손님을 집으로 무사히 데려다주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며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네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 자신의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13만 원의 택시비가 나왔는데 요금을 내지 않고 도망갔던 청년이 잡혔다는 기사를 보았다.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며 택시기사님께 거짓말을 했고, 기사님은 진실인 줄 알고 진심으로 걱정하며 손님을 모셨다. 그런데 그 배은망덕한 청년은 그대로 달아났고 기사님은 손님을 쫓아가다가 넘어져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후 얼마 뒤 기사님의 자녀분이 인터넷이 글을 올려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나도 그 기사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동시에 기사님이 안 되었다는 생각, 그리고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가 직접 겪었던 이야기도 가끔 해주셨었다. 천 원짜리 한 장 아쉬워서 자판기 동전 커피 뽑아 드시고, 매일 회사에 납부해야 하는 사납금을 맞추기 위해서 발에 불이 나도록 페달을 밟는 엄마. 그런데 "이모 잠시만요" 하더니 몇 천 원 요금이 아까워서, 돈도 없이 타서 도망가는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속상한 마음은 당연히 있지만, 속으로 기도를 한단다. 도망간 사람을 위해서 하기도 하고, 자신의 다음 손님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나 같은면 지구 끝까지 가서 찾아낼 것 같은데, 굳이 그러지 않으신다. 정말 큰돈이면 위 기사님의 자녀분처럼 대응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쩔 때는 왜 대응하지 않았냐며 엄마에게 답답하다는 표현도 했는데, 엄마는 그때마다 웃으며 말했었다. "아니 글쎄 ~ 그런 애들 내려주고 나서 잠시 차를 대고 기도하고 나면, 그날 꼭 장거리나 좋은 콜이 떠서 돈을 더 벌었다니까?"라며 소녀같이 웃는 엄마. 들어보면 신기하기도 한데 자주 그런단다. 엄마가 좋아하니 나도 할 말이 없어진다. 엄마는 문제상황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상황에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이 평안한 상태가 되어야 다음 손님을 기분 좋게 모시게 된단다. 하나의 사건에 계속 신경을 쓰면 그날 하루종일 마음이 좋지 못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사실 반대의 성향에 가까웠다. 하나의 문제 된 상황을 해결해야지만이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 좋게 말해서 그런 거지 사실, 싸워 이겨서 해결 봐야 하는 직설적인 모습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을 많이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그런데 엄마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나도 생각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래... 이겨서 뭐 하나... 이겨도 내 마음만 더 상한다, 그냥 다음을 생각하자'라고.
공무원이 되기 위해 수험생활을 하며 대리운전을 몇 년간 했었는데, 엄마의 가르침은 이때 특히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당장의 문제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한 생각을 하는 것 말이다. 다행히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무사히 대리운전을 할 수 있었다.
엄마는 가끔 "아무것도 물려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다. 내가 독립을 할 때 형편이 좋지 못해 큰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못한 엄마가 미안한 마음에 한 번씩 이런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미소로 답한다.
'엄마, 엄마가 내게 준 것은 얼마의 돈으로도 계산할 수 없는 아주 값지고 귀한 거야.
엄마의 낙천적인 성격 덕분에 난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어.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말을 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늘 내 주변을 밝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어.
배려가 몸에 베인 엄마를 보며 나도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게 되었어.
감사를 쉬지 않는 엄마를 보며, 삶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때에도 감사를 할 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