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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n 18. 2023

저랑 맞는 게 하나도 없네요

"딱 하나만 같으면 되는 것 같아요"

퇴근 후 헬스장 가서 쇠질 좀 하다가 단짝을 불러 함께 초밥을 먹으러 갔다. 헬스장 근처에 있는 초밥집은 웨이팅을 해야 할 정도로 맛으로 소문난 곳이다.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나도 눈이 돌아가버린 것.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니 베이지색 단아한 원피스를 입고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단짝이 서 있었다.


초밥집에 들어섰다. 유일하게 두 사람이 맞는 음식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초밥이다. '초밥 먹으러 갈래?'라는 제안에는 늘 이견이 없었다. 다만 초밥 중에서도 선호하는 초밥이 극명하게 갈렸다. 특히 나는 계란초밥을 싫어하는데 아내는 계란초밥을 좋아한다. 그래서 모둠초밥이 나오면 먹으면서 서로 좋아하는 초밥으로 배달을 해 준다. 그래도 간장새우만큼은 포기하지 못해 아내는 늘 간장새우 한 마리를 양보한다. 난 눈치껏 튀김 종류로 보답한다. 맛있는 것은 늘 마지막까지 생존한다. 아껴먹고 싶어서이다. 오늘도 역시 그랬다...



아내가 "우린 어쩜 이렇게 맞는 게 하나도 없죠?"라고 말했다. 내가 대답했다. "그렇죠... 덕분에 맛있는 걸 싸우지 않고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서로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한 바탕 웃고 나니 앞에 있던 각자의 초밥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기가 아쉬워 차를 더 몰아 드라이브에 나섰다. 시골길을 한 바퀴 돌며 아내와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고 초록초록 색깔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힐링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차를 타고 가며 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는 나이가 들어 지금 하는 일을 할 수 없을 때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고. 내가 가진 작은 능력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하며 세상의 소금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사실 이것은 나의 비전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도 나와 비슷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당신은 저랑 정말 다른데, 딱 하나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꿈이요".

그렇다 아내와 난 비전이 같았다.


"그거 기억나요? 당신이 우리 첫 만남 때 카페에서 노후랑 비전이랑 이야기했던 거요."

"그... 그랬죠..."

"처음 만난 사람인데 그런 이야기를 해서 조금 놀라긴 했는데, 저는 좋았어요. 전 꿈이 있는 사람이 좋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전이 저랑 같아서 좋았어요."

"아... 네네..." 이야기를 듣자니 쭈뼛쭈볏하면서도 당당 한척하며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내 옛 모습이 강제로 소환됐다. 얼굴이 붉어졌지만 아내의 말이 싫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보 그... 비전 말고는 우리 진짜 너무 다른 것 같아요" 아내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니깐요, 신기한 게 분명 연애할 때는 다 같은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저한테 왜 그래요?"라며 농담을 던지자 아내는 소리 내어 웃었다.


다른 것이 너무 많았다. 나는 더위를 많이 타고 아내는 추위를 많이 탄다. 그래서 난 창을 열고 자야 하고 아내는 이불을 꼭 덮고 자야 한다. 아내는 단 음식을 좋아하고 나는 싫어한다. 음식 가지고 싸울 일이 잘 없다. 성격도 성향도 많이 다르다. 그런데 연애를 할 때는 서로 다 맞는 줄 알았다. 아마도 서로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약간만 좋아해도, 아니 싫지만 않으면 "저도 그거 좋아해요"를 남발했을 것이다. 특히 내가.


"이렇게 다른 우리지만 마지막 목표 하나는 딱 같네요." 아내가 말했다. 핵심이었다. 모든 것이 다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고 아껴준다.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채워준다.


처음 연애할 때는 관심을 얻기 위해, 사랑하기 때문에, 조금 좋아해도 많이 좋아한다고 말했고, 싫어도 상대방의 눈치를 봐가며 좋다고 말한 적도 있다. 물론 많이 싫은 건 싫다고 했고, 조금 싫은 건 이제 좋아하려고도 해 봤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같이 붙어살다 보니 서로 많이 솔직해지게 되었다. 어쩌면 솔직해졌다기보다는 서로를 잘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란초밥을 늘 양보하는 모습에 좋아했을 아내는 이제 내가 먹기 싫어서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린 이게 재밌다. 같지 않아서, 다르기 때문에 재밌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바로 옆에서 본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아내를 통해 나는 분명 많은 것을 배운다. 아내도 나를 통해 꿈꿔보지 못했던 것을 꿈꾼다.


똑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한다. 비슷할 수는 있어도 결국 조금씩 다 다를 뿐이다. 우린 '다른'사람과 어울려 산다.


'다르다'는 것이 나와 맞지 않아 때론 충돌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다름'을 인정할 때 관계가 더욱 건강해진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존중하면 관계는 반드시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


아내와 나도 이따금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늘 '다름'에서 시작되었다. 서로의 다른 성향과 성품을 이해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항상 문제의 중심을 '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되었다.


오늘 아내와 짧은 데이트를 하며 다시금 꿈에 관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늘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따뜻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있는 아내를 위해, 나도 나의 비전을 위해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각자의 다른 방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 끝은 같은 곳이 아닐까.


많은 부분이 달라도 같은 곳을 향해 함께 걸어갈 소중한 동반자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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