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 어절에서 3 어절 4 어절을 말하며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다. 보고 싶은 것이 있거나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단어로만 말하려니 답답증에 가슴팍을 여러 번 치고, 아빠 엄마랑 다투기 일쑤였는데 이제 그런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그동안 단어를 연결해 사람답게 말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빠 엄마는 모를 것이다.
나의 화려한 언변의 첫 개시는 잘 기억나질 않으나, 이 문장 하나로 합격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아빠는 모임 갔고~ 우리는 놀자"
"캬~~" 이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아빠가 합창단 모임을 갔다는 이야기에 소파에서 한 번 말해봤는데, 엄마가 놀래서 아빠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는 것 아닌가.
어린이집에서도 언니오빠들과 선생님들의 입모양을 유심히 관찰하며 열심히 연습 중이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다시 들어보려고 하고, '그래서, 그런데, 그러나'와 같은 접속사도 계속 연구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담임선생님께서 낮잠시간에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아~ 네 어머님~ 잘 별일 없으시죠~ 요즘 하은이가요~(생략)"
선생님은 엄마와 그 말로만 듣던 '학. 부. 모. 상. 담.'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둥!!'
잠이 오질 않았다. 그동안 내가 잘 못한 건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았다.
20개월쯤에는 기분이 좋을 때 너무 격하게 반응하다가 친구들을 아프게 한 적도 있었다.
먹기 싫은 반찬이 나오면 심하게 투정을 부릴 때도 있었다.
아데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는 컨디션이 안 좋아 말을 안 들을 때도 있었다.
아빠색깔(아빠상어-파란색)과 분홍색, 노란색을 좋아하는 달달콩
하지만!
하지만, 요즘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부딪혀 넘어지거나, 심지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미안해, 괜찮아" 하며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위로해 주며 안아주었다.
맛있는 것이 나오면 항상 먹기 전에 눈에 보이는 모든 분들께 나눠드리고 내 입에 넣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을 보면 "샤앙해" 안아주며 사랑을 표현해 주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며 선생님 말씀을 기울여 듣다 보니 어느새 긴 통화가 끝이 나 있었다.
숲체험에 가서 댄스댄스 하는 달콩이와 당근을 뽑아버린 달달콩
너무너무너무 내용이 궁금했다. 선생님이 방에 들어오시자 나는 눈을 감는 척했다.
요즘 해가 많이 짧아져 금세 어두워진다. 밖이 깜깜해지고 나서야 아빠엄마가 데리러 왔다. 아빠엄마의 표정이 평소와는 다르게 무척 밝았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몇 톤이나 업(up)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셔서 나도 좋다.
집으로 가 밥빠를 먹는데 아까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랭랭(아빠), 진짜 대박이지 않아? 우리가 그렇게 고민했던 부분들이 었는데..."
"맞아, 나도 어린이집 가면 어떻게 행동하는지 궁금했는데, 또 걱정도 했잖아. 그런데..."
아빠 엄마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아빠엄마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친구들 때리는 거였다고 한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나는 아빠엄마의 특훈을 받은 바 있다.
침대나 식탁, 물건 따위에 걸려 넘어지면 무조건 부딪힌 대상에게도 "미안해~"하며 쓰다듬어 주게 하고 그다음에 내가 아픈 곳을 봐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과자나 과일 같은 간식을 받으면, "고마워요 아빠(엄마)"라고 말한 후 항상 옆에 있는 친구나 어른들에게 하나씩 갖다주고 오라고 시켰었는데, 연습이 많이 된 것 같았다.
아직 인생 25개월 차, 세상에 온 지는 얼마 안 되어 서툰 것들이 많지만
아빠, 엄마에게 그리고 선생님, 친구들을 통해 하나하나 배워나간다.
감사할 줄 아는 달콩이가 되어보자
위로할 줄 아는 달콩이가 되어보자
나눠줄 줄 아는 달콩이가 되어보자
아자아자!!
집에 있는 박스에 들어가는 것을 보더니 아빠가 갑자기 선물로 만들어준 아기 샹어박스다.(feat. 이름출현 히히)
<아빠의 육아 이야기>
흔히들 24개월 전후로 언어가 폭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24개월 전후로 달콩이가 프리스타일랩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말 랩이라도 하듯 무한의 단어들을 쏟아내고 있는 요즘이다.
선생님 말씀으로는 이 시기 아빠와 엄마가 아이와 잘 놀아주는 것이 언어와 행동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행동이 크고 밝아서 친구들을 본의 아니게 건드리는 시기가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부딪히면 바로 미안하다고 하고 쓰다듬어주는 게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달콩이와 함께 살면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하지만 이 시기, 책을 많이 읽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오히려 책을 많이 안 읽는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을 읽다가 보면 달콩이와 지내는 시간 중 책에 있는 것들을 적용해 보느라 육아가 육아가 아닌 실험(?)이 되어버릴까 싶어 두려운 것이다. 그래도 철학이 없는 것은 아니다.
1.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아이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려고 하고
2.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이 있으면 정성을 다해 가르쳐 준다. 그리고 끝에는 꼭 핵심 단어를 되풀이해준다.
3.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캐치해서 반복해서 놀아준다.
4. 리액션은 가능한 크게 해서 다양한 감정표현을 가르쳐 준다.
5. 훈육이 필요한 행동은 최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해시키되,
6. 행동교정이 필요한 것들은 솔루션을 아내와 상의한 후 개발해 반복실행하며 교육시킨다.
이렇게 쓰고 보니 솔직히 위의 여섯가지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다만 아이가 잘 웃고, 밝게 커 주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아마 달콩이가 초등학생이 되거나 공부를 시작할 때쯤에는 책의 힘을 조금 많이 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힘을 잠시 빼두고 싶다. 지금은 그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