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만 들어도, 얼굴만 봐도, 잠깐 이야기만 나눠봐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동글동글한 눈은 아이같이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계속 틀어놓고 싶은 내레이션 같다. 이 기분 좋은 사람은 바로 김완태 작가이다. 10여 년 전 직장에서 만나게 된 완태형님은 늘 그랬다. 어떤 장소에서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상황이든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누가 무슨 말을 건네든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아주 모난 곳 없는 동그란 분이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는 형과는 연락이 잠시 끊겼었다가 소방공무원을 준비하다가 다시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되었다. 사정이 있어 부산에서 내가 사는 곳으로 그것도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나는 그냥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었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딱 한 번 뵌 적이 있었던 형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제야 이사를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자세한 사연은, 형이 출간을 앞두고 있는 글을 쓰러 장기간 매장을 비우며 알게 되었고, 더 더 자세한 것은 무슨 책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제목을 보고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형님의 웃는 얼굴 뒤에 어떤 일들을 겪고 계셨는지 사실 잘 몰랐던 것이다.
책의 제목은 "암환자가 뭐 어때서"였다.
'암? 내가 아는 그 암인가? 형이 암이었다는 건가?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책의 표지에 자그맣게 쓰인 글씨를 보고는 이 형님의 글이, 아니 인생이 궁금해졌다...
암환자의 아들이자 암환자의 남편, 그리고 암환자였던 한 남자의 이야기
「암환자가 뭐 어때서」 표지 발췌
촌수가 조금은 먼, 그러니까 직계가 아닌 분들의 암발병은 조금 있었는데, 직계가족 중 암투병을 해 본 경험이 없어 암에 걸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실 잘 몰랐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는 이야기였고, 최근에는 내가 결혼하기 한 해 전에 돌아가신 장인어른께서 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하셨다는 이야기를 접해본 게 다였다.
한 명을 간호하는 것도 힘든데, 두 명을 간호하고 갓 태어난 둘 재까지 보며, 자신도 암환자였던 이... 참으로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는 궁금해졌다. 책을 권하면서도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있던 작가 김완태 형님을 너무도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조금은 낯설기도 한 한 남자의 이야기보따리를 그렇게 열었다.
괜히 열었다. 닫고 싶었다. 일단 너무 슬펐으니까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마다 무슨 행복한 그림을 그려도 나는 눈물만 줄줄 흘렀다. 동정의 눈물도, 위로의 눈물도 아니었다. 거짓말 같은 운명의 쓰나미 앞에서 남자는 꿋꿋하게 버티고 서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나는 바로 이 점에서 감동이 끊어지지 않았다. 나도 가정을 꾸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덜 공감했을지 모르나, 글을 읽는 내내 나의 아내와 딸,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형수님께서 돌아가시기 불과 몇 달 전 처음 뵈었는데, 그때 보여주신 두 분의 미소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처음 보는 나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시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내게 좋은 에너지를 주고 갔었다. 그 후로 종종 '아~ 나도 형님처럼 멋진 사람이 되어야지. 형수님처럼 예쁜 아내를 맞이해야지' 하며 내심 선망하기도 했었다. 두 사람은 정말로...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형의 책을 읽어보니 형수님은 당시 100번도 넘는 항암치료를 하고 수차례의 수술을 이겨낸 상태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었을 시기일 텐데... 어떻게 나는 눈치 하나 못 챘을까 싶다. 그만큼 형이 보여준 행복은 가짜 행복이 아니라, 진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형은 '올' 행복을 기다리지 않았고, '지금이라는 순간'의 행복을 늘 좇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즉, 현재는 영어로 'present'라고 하고, 우리가 흔히 아는 '선물'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다가 올' 행복을 기다리지 말고, '현재'의 상황과 사람을 소중히 하자.내가 정말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랑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현재의 진짜 행복'을 경험한다.
결코 쉽지 않았을 긴 시간을 묵묵하다 못해 밝고 멋지게, 행복하게 보낸 형의 삶을 통해 지난 시간 내가 지나온 나의 터널이 아주 짧고 작았음을 깨달았다. 내가 과거를 떨치지 못해 고통의 굴레에 얽매어 사는 동안 형은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키랭아~ 언제든지 집에 놀러 와. 아이랑 아내랑 함께 놀러 와. 우리 애들도 좋아할 거야. 와서 고기도 구워 먹고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너 요즘 글도 쓰니까 책 이야기도 많이 하자"
형님이 늘 먼저 제안해 주시는데 지척에 있으면서도 계속 가지 못했다. 동네 순찰을 돌거나 어머니 집에 갈 때 대리점을 한 번씩 보고 가는 정도로 만족했었는데, 이제 달콩이도 많이 크고 했으니 해 넘어가기 전에 연락한 번 드려봐야겠다.
글을 통해... 책을 통해... 그리고 사람을 통해... 감사와 행복... 사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