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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an 21. 2024

누가 나의 소중한 휴대폰을 부수었는가

새해 첫 출근 날 부서진 나의 휴대폰

아내의 기념비적인 복직과 함께 새해가 시작되었다. 이른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내를 보니 새해가 밝았음이 실감 났다. 2년여 시간 동안 휴직을 했으니 신입직원이 되어 출근하는 기분 같단다. 그런 아내를 보니 문득 나도 제법 편하게 생활했었나 싶다..


'이제 진짜 맞벌이인가?'


1시간 육아시간을 써 놓은 내가 오늘 등원 담당이었다. 아내 아이 퇴근해 조금이라도 편히 있을 수 있게 분주하게 움직였다.


'세탁기를 돌려놓아 볼까?'


그동안 세탁기에 예약기능이 있어도 한 번도 쓰지 않았었는데, 휴대폰에 연결도 해보고 예약도 걸어보며

' 룰루랄라'를 해본다.


'신세곈데?'


그런 후 한바탕 '등원룩 입히기' 전쟁을 치렀다.


 "입기 싫어도 어쩔 수 없어 달달콩~"

옷을 다 입히고 나서 주방에 잠시 다녀오니 양말을 벗어던진 하은이가 자기 방 침대에 올라가 "가기 싫어~"를 외친다. 평소 같으면 스스 양말을 벗은 달콩이를 칭찬해 줬겠지만, 오늘은 칭찬 대신 새우눈꼬리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승자 없는 등원길 전쟁을 마무리한 후 한 손에는 하은를, 한 손에는 어린이집가방과 이불가방, 그리고 남은 손가락에 소방기동복 옷걸이를 걸고 식단가방까지 챙겨 현관 앞까지 갔다.


날씨가 많이 추운 탓에 차량에 원격시동을 걸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그런데... 아니 그런데...


스마트폰 액정이 박살이 나 있었다.

양쪽 끝단이 거의 평행하게 깨졌는데, 도무지 어디서 깨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필름에 찍힌 흔적은 없었다. 필름 안쪽에서 충격을 받았고, 곡면 양쪽 끝이라 동시에 찍기도 쉽지가 않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그동안의 상황을 잠시 정리해 보았다.


1. 아일랜드 식탁 위에 휴대폰이 있었다. (멀쩡)

2. 아이 등원 준비를 했다.

3. 모든 준비를 마치고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이때 시간 체크를 위해 화면을 보았을 때 멀쩡했다.

4. 가방을 손에 들고 현관까지 갔다. 현관에 가방을 내려놓고, 원격시동을 걸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다.

5. 부서져 있었다.


움직임도 크지 않았고 상황도 이해되지 않았다. 기억이 조작된 것인지 아니면 망각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 손에 닿지 않는 위치에 있어 들었다 떨어뜨리고 다시 주웠을 리 없었다. 바지는 거의 똥바지 수준으로 펑퍼짐해 압력을 받을 세도 없고, 부딪힌 기억도 없었다.




결국 다음날 퇴근길에 휴대폰을 수리하고 왔다... 액정을 수리한 지 3주도 채 되지 않았고 떨어뜨린 기억도 없어 억울해했지만 돈을 내지 않고 무상수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깨끗해진 화면을 바라보며 이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억지로 교훈을 찾아댔다.


 우선 한 가지가 먼저 떠올랐다.

 1. 그동안 참 편하게 생활했구나. 출근 날에는 휴직 중인 아내에게 등원을 맡겨 크게 불편함 없이 출근했었는데, 새해 첫 출근 날부터 황당한 일을 겪다 보니 정신이 확 들었다. 2024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야 하는지 신이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았다.


2.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다 옳을 수만은 없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만 보이는 귀신을 보았다고 한들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대방은 이해할 수가 없다. 휴대폰을 깨뜨린 적이 없다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결국 깨진 건 깨진 것이다.


나는 과정을 중시하는 편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에서부터 온 것이고, 과정을 통해 무엇을 배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처럼 과정을 알 수 없는 결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결국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안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때론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겸비해야 세상과 부드러운 소통이 가능해짐을 깨달았다.


3. '왜'가 중요하다. (倭 말고...) 휴대폰이 부서지고 줄곧 왜를 빼고 생각했다. 꽤 논리적 인척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만 사고한 것이다. '왜'를 뺀 다섯 가지는 객관적 사실을 드러냄에 있어 충분할지는 모르겠으나 '왜'가 빠진 사건은 교훈 없이 종료된다. 그래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보면 사건의 앞 뒤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설사 이번 일처럼 깨끗하게 규명되지 않더라도 늘 '왜'를 생각해야 한다.



수리가 완료된 깔끔한 스마트폰 액정을 바라보며 또 한 번 생각에 잠겼다. 시동이 걸린 차에 올라탄 지 오래였다.


다시 한번 다짐했다. 새해 둘째 날이자 첫 출근 날 벌어진 이번일이 주는 교훈을 꼭 잊지 않기를...


생각과 고집을 꺾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해 내는 유의미한 삶을 살아내자.


하원 후 오빠들을 구경하는 하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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