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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an 31. 2024

곶감은 냉동실에, 글감은 냉장고에

글태기에 관한 나의 독백

2023년은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한 해였다. 브런치스토리에 처음 입문해 내 이야기를 쏟아내며 글 쓰는 기쁨에 취해 있었다. 글을 쓰는 즐거움에 더해 읽는 즐거움까지 생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브런치스토리에서 살았다. 틈만 나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읽고 쓰고 읽고 쓰고를 반복했다.


글을 쓰면 모든 일상이 특별해진다. 특별하다고 해서 일상이 거창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지루한 일상에 의미를 하나하나 부여하다 보면 그것이 곧 특별해지는 것이다. 특별해진 일상은 내게 기쁨을 안겨 준다. 그 기쁨은 행복한 미소와 예쁜 언어로 출력된다. 출력된 밝은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행복한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세상을 따뜻하게 해 준다.


그러던 2023년 말 즈음 글쓰기를 잠시 멈추었다. 직장 내 인사이동에 대한 걱정과 여러 가지 산적한 과제들과 씨름하다 보니 멈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이다. 맞춤법 검사를 돌리면 늘 스무 개가 넘는 지적을 받으면서 말이다. 주제도 없이 이것 썼다가 저것 썼다가 하니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도 했다.


나는 여러 종류의 글을 남발(?)하고 있다. 육아, 일상, 직장, 취미 등 쓰고 싶은 건 죄다 써보고 있다. 그런데 다시 글을 쓰러 돌아와 보니 이것저것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이 곧 내 정체성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일도 하고 육아도 하고, 성악도 배우고, 합창도 하고, 운동도 하는 일상이 곧 나의 모습이고, 그 일상에 의미를 부여 글로 남겨 글서랍에 쌓고 있는 게 바로 '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글을 계속 쓰기로 했다.

단일 주제로 써야 된다느니, 알고리즘이 싫어한다느니 무슨 상관인가.



얼마 전 수확한 감들이 곶감으로 출하되고 있다. 시골에 올라가 한 상자 받아 온 곶감은 한 번에 많이 먹지 못하니 한 개만 빼먹고 나머지늣 냉동실에 관해야한다. 냉동실에 들어간 곶감은 웬만해서는 돌처럼 딱딱하게 굳지 않는다. 다음 해 곶감이 나올 때까지도 제법 말랑말랑한 상태를 유지하며 젤리 같은 식감을 제공하는게 곶감이다.


하지만 글감은 곶감과는 다르게 냉동실에 보관할 수 없는 것 같다. 글감은 싱싱한 횟감과 같아서 바로 썰어 먹지 않으면 곧 상해버리고 만다. 다음에 써야지라는 마음으로 냉동실에 장기보관하면 식감이 떨어져 버린다.


오늘 잡은 신선한 글감은 깨끗한 흐르는 물에 씻어 바로바로 떠 먹자. 그 의미가 변질되기 전에 말이다.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지 말고 내면에 더욱 집중하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도 역시 이 글은 반복되는 글태기에 대한 저의 독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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