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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Feb 01. 2024

냉장고에 닭가슴살 어떻게 할 거야?

스테이크나 만들지 뭐

"여보! 나 닭가슴살 주문했어, 내일부터 다이어트할 거니까 말리지 마!"

"그래? 열심히 해보자 키랭이!"

"운동을 어떻게 할 거냐면, 새벽에 일어나서~(중략), 야채를 많이 먹고~(중략)"


- 이틀 뒤 -


"키랭이 점심 챙겨 먹었어?"

"응응, 너무 배가 고파서 라면 하나 끓여 먹었어"

"운동은?"

"아 라면을 먹어버려서..."



어느 목요일...


"여보! 나 닭가슴살 주문했어, 내일부터 다이어트할 거니까 말리지 마!"

"그래? 열심히 해보자 키랭이!"

"운동을 어떻게 할 거냐면, 새벽에 일어나서~(중략), 야채를 많이 먹고~(중략)"


- 이틀 뒤 -


"키랭이 점심 챙겨 먹었어?"

"응응, 너무 배가 고파서 짜파게티 하나 끓여 먹었어"

"운동은?"

"열심히 먹고, 열심히 운동하지 뭐!"



어딘가 익숙한 이 대화를 나는 벌써 3년째 하고 있다. 결혼하면 살이 찐다느니 어쩌니 난 믿지 않았다. 운동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아예 폭식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무서운 괴담 속 주인공은 바로 내가 되고 말았다.



며칠 전 3년째 작심삼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작심사가 또다시 닭가슴살을 주문했다.


"키랭이~ 집에 하얀 박스 와 있던데"

"아, 그거 냉장고에 넣어줘"

"냉장고? 이게 과연 들어갈까?"

"아, 꺼내서 잘 넣으면..."

"안 될 건데?"

"제발... 부탁 좀..."


철없는 나의 행동을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뻬야한다!




일주일이 지났다. 냉동실에 있어야 할 닭가슴살은 냉장고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행동하자!'


수년간 성공하지도 못할 다이어트를 하면서 딱 한번 성공 비슷하게 갈 뻔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덮치며 나 또한 확찐자가 되었지만, 그 직전에 딱 한번, 정말 딱 한번 성공의 문턱을 밟아보기라도 했던 것이다.


그 오만함이 아직 몸에 남아 반드시 할 수 있을 거라는 무모한 자신감으로 하얀 닭가슴살을 소금만 끼얹은 채 우걱우걱 씹어 넣고 있었는데, 그 결과 3일이 채 못 가 항상 실패하고 말았다. 양념이 잔뜩 발린 닭가슴살 팩은 당장 먹기는 편하지만 이미 수년 전 수개월 동안 한 적이 있어 트라우마처럼 몸이 기억하고 있다.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린다.



'생각을 바꾸자. 패러다임을 바꾸자. 닭가슴살을 맛있게 먹자!'


닭가슴살에 생명수를 붓자! 아니, 간장을 붓자! 꿀도 좀 붓자!



완성된 닭가슴살 요리는 나의 기미상궁인 아내에게 제공되었다. 직책은 대왕대비 급이지만 음식을 선뵐 때만큼은 흔쾌히 상궁이 되어주신다.


"맛은 좀 어떠시오~"

"오~~~~~~ 이 맛은!!!!"


아내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성공이다...

다음날 오후 아내의 퇴근시간에 맞춰 직장에 데리러 갔는데, 아내가 전 날 먹었던 닭가슴살 스테이크가 한 조각 남아있던걸 기억하고는 오늘 저녁으로 먹을 수 있냐고 묻는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보, 오늘은 닭가슴살로 만든 양념닭구이입니다. 하하하"


오늘 만든 닭구이는 모두 팔렸고,

다음 손님을 위해 냉장고에 대기중이던 닭가슴살을 깨워 다시 양념에 재우고 나는 자리를 유유히 떠났다.




주방장의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다.
나의 식단을 따르거라!






맛있게 만들어드릴게요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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