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익숙한 이 대화를 나는 벌써 3년째 하고 있다. 결혼하면 살이 찐다느니 어쩌니 난 믿지 않았다. 운동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아예 폭식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무서운 괴담 속 주인공은 바로 내가 되고 말았다.
며칠 전 3년째 작심삼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전문작심사가 또다시 닭가슴살을 주문했다.
"키랭이~ 집에 하얀 박스 와 있던데"
"아, 그거 냉장고에 넣어줘"
"냉장고? 이게 과연 들어갈까?"
"아, 꺼내서 잘 넣으면..."
"안 될 건데?"
"제발... 부탁 좀..."
철없는 나의 행동을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뻬야한다!
일주일이 지났다. 냉동실에 있어야 할 닭가슴살은 냉장고에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행동하자!'
수년간 성공하지도 못할 다이어트를 하면서 딱 한번 성공 비슷하게 갈 뻔한 적이 있었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덮치며 나 또한 확찐자가 되었지만, 그 직전에 딱 한번, 정말 딱 한번 성공의 문턱을 밟아보기라도 했던 것이다.
그 오만함이 아직 몸에 남아 반드시 할 수 있을 거라는 무모한 자신감으로 하얀 닭가슴살을 소금만 끼얹은 채 우걱우걱 씹어 넣고 있었는데, 그 결과 3일이 채 못 가 항상 실패하고 말았다. 양념이 잔뜩 발린 닭가슴살 팩은 당장 먹기는 편하지만 이미 수년 전 수개월 동안 한 적이 있어 트라우마처럼 몸이 기억하고 있다.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린다.
'생각을 바꾸자. 패러다임을 바꾸자. 닭가슴살을 맛있게 먹자!'
닭가슴살에 생명수를 붓자! 아니, 간장을 붓자! 꿀도 좀 붓자!
완성된 닭가슴살 요리는 나의 기미상궁인 아내에게 제공되었다. 직책은 대왕대비 급이지만 음식을 선뵐 때만큼은 흔쾌히 상궁이 되어주신다.
"맛은 좀 어떠시오~"
"오~~~~~~ 이 맛은!!!!"
아내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성공이다...
다음날 오후 아내의 퇴근시간에 맞춰 직장에 데리러 갔는데, 아내가 전 날 먹었던 닭가슴살 스테이크가 한 조각 남아있던걸 기억하고는 오늘 저녁으로 먹을 수 있냐고 묻는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보, 오늘은 닭가슴살로 만든 양념닭구이입니다. 하하하"
오늘 만든 닭구이는 모두 팔렸고,
다음 손님을 위해 냉장고에 대기중이던 닭가슴살을 깨워 다시 양념에 재우고 나는 그 자리를 유유히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