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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Feb 02. 2024

꼬막 요리 나도 할 수 있을까

일단 엄마한테 전화해 보자

일주일? 아니면 이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가는 박주부.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갈 때도 있고, 혼자 갈 때도 있다. 아내와 가면 나의 폭풍 소비를 조금 막을 수 있고, 아이와 같이 가면 폭풍 소비를 할 수도 있다. '뭐야?'



한적한 주말 오후 바닷가에 바람을 쐬고 집으로 가는 길에 저녁거리를 할 게 없어 시내 한 대형마트에 들렀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제법 많다.


https://brunch.co.kr/@kiii-reng-ee/173



결혼 3년 차 박주부, 키랭이는 마트에 가면 늘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한다.

결혼 전 어린이날 때 2층 IT매장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을 선물 받으며 해맑게 웃던 키랭이였다.

결혼 직후에는 틈날 때마다 IT매장을 기웃거리며 살 돈도 없으면서 구경하러 다녔더랬다.


그런데 이제 나의 관심은 지하에 있다. 신선한 야채와 붉은 고기, 하얀 우유와 빨간 라면, 팩 위에 붙어있는 '할인상품'태그와 이동식 가판대에 올려져 있는 특판상품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 텅 빈 냉장고가 채워져 있는 것만 같다.


가끔은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재료들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무시무시한 다리를 가지고 물에 둥둥 떠다니는 크랩의 왕 킹크랩도 두렵지 않다. 킹크랩을 꽃게라고 가르쳐 준 게 미안하긴 하지만 킹크랩이 먹고 싶다고 할 딸아이에게 꽃게를 제공하면 되기 때문이다.(미안;)


그렇게 평가 절하된 킹크랩 앞에서 하은이는 한참을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다. 가끔 "꽃게야 꽃게야 샤앙해"하며 말도 걸어보지만, 킹크랩은 대답해 줄 리 없다. '나는 꽃게가 아니란다...'


대답 없는 킹크랩을 한참 바라보던 하은이를 달래 수산물 코너를 한 바퀴 더 돌았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할.인.상.품.'


5천 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제법 많은 꼬막이 한 팩 들어있었다.


"오~ 꼬막 맛있겠다. 여보, 나 이거 사도 돼요?"

"해 먹을 수 있어?"

"아니?"

"응?"


그렇다. 나는 꼬막을 아주아주 아주아주아주 좋아하지만 한 번도 해 먹어본 적이 없다. 입맛이 없을 때 엄마가 꼬막으로 꼬막무침, 꼬막조림(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으나)을 해주시곤 했을 뿐이다.


'이걸 어떻게 해 먹지... 할 수 있으려나...'


국 종류와 볶음밥 종류만 겨우 어느 정도 마스터한 내가 반찬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분야가 바로 수산물이랑 김치찌개다.(김치찌개 비하는 다음에 다뤄보겠다.)


'에이, 일단 지르고 보자. 못 하면 배우면 되지'




"북극곰 북극곰, 꼬막 샀는데 어떻게 만들어야 해?"

"아~ 꼬막 샀구나. 꼬막은~(중략)"

"근데 엄마는 왜 숟가락 몇 스푼, 이런 식으로 계량해서 이야기 안 해줘? 왜 죄다 뭐 조금, 뭐 조금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거야?"

"뭐~ 재 볼 게 있나 대충 넣어서 대충 해 먹으면 되지"

"앗,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다시 전화할게"


엄마들은 다 그런 것 같다. 수십 년을 식구들을 위해 요리를 해 오셔서 그런지 손이 저울이고, 눈이 계량컵이다.


일단 시도해 보았다. 씻는 법부터 간 맞추는 것까지 시키는 대로 했다.


한 번 만들어 보실래유?

 1. 꼬막씻기 : 꼬막은 해감을 할 필요가 없는 아주 편안한 재료다. 장갑 끼고 오돌오돌 몇 번 씻어주면 끝.

 2. 꼬막삶기 1 : 사진에는 물이 좀 많다. 꼬막이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조금해야 맛있다. 뚜껑을 닫고 끓이자.

 3. 꼬막삶기 2 : 갑자기 거품이 확 올라온다. 잘 보고 있다가 불을 빠르게 낮춰주자! 그리고 거품은 걷어낸다.

 3. 꼬막삶기 3 : 잘 저어주면서 계속 끓인다. 이때 한쪽 방향으로만 저을 것! 왔다 갔다 하면 꼬막 살이 흐물흐물 해진다(고 북극곰이 알려준 꿀팁이다)

 4. 꼬막삶기 4 : 꼬막 입이 벌어지 끝이다. 안 벌어지는 녀석도 있을 수 있다.

 5. 꼬막을 건져내자. 그리고 나는 껍질을 다 깠는데, 껍질 한쪽만 까도 된다.(사실 그게 더 먹는 재미가 있다)

 6. 껍질을 까는 동안 꼬막물의 불순물이 가라앉고 있다.

 7. 냄비의 꼬막물을 그릇에 조심히 따르자. 냄비 바닥에 가라앉은 불순물은 버리면 된다.(사진참고)

 8. 간맞추기 : 간은 멸치액젓을 한 숟갈 정도 넣는데, 본인 기호에 맞춰 넣으면 된다. 참고로 이 반찬은 짜게 먹으면 맛있으므로, 소금으로 간을 더 맛춘다. 땡초와 대파는 꼭 넣어주고 나는 간마늘을 좋아해서 마늘도 넣었다. 간마늘은 갈아져 있는 제품보다는 마늘을 직접 빻아서 넣는 게 더 맛있으니 참고할 것! 땡초와 소금의 짠맛이 강해야 맛있다. 



물이 너무 많다. 절반 정도로 줄여 넣자


꼬막 조림? 꼬막국물? 뭐라고 명명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완성되었다. 국으로 먹어도 좋고, 반찬으로 먹어도 좋다.

(하은이가 어묵 먹고 싶대서 어묵탕 끓이고, 훈제연어 50% 할인해서 샀던 거 해치우느라 초밥 만들고, 미역국 남아서 버리기 아까워서 미역죽 만들고, 갑자기 파티가 되어버린 밥상.)




요리에 성공한 나는 결과물의 반을 덜어 내어 두 통에 담았다. 한 통은 장모님, 한 통은 북극곰에게 가져다 드리기 위해서다. 반찬을 받아 든 장모님도, 자신의 비기를 전수한 북극곰도 모두 즐거워하신다. 택시운전을 하며 늘 불규칙한 식사를 하는 북극곰은 갑자기 밥이 생각났다며 내 앞에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셨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엄마가 자주 만들어 주시던 반찬을 직접 만들고 보니 새삼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나를 키우셨을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자신의 반찬을 똑같이 따라한 것을 보며 즐거워했지만,

나는 엄마의 거칠어진 손을 보니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주 해 드리지 못해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아직 많이 식지 않은 국물을 한 번 더 들이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박주부, 키랭이는 목표가 하나 생겼다.


엄마 반찬을 마스터해 보겠어!





※ 글에 등장하는 북극곰은 엄마의 별명이자 저희 가족 애칭이라 습관적으로 쓰고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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