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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Apr 25. 2024

4살 딸을 위한 시팸마요 덮밥

햇님이 반짝, 정신이 번쩍!

 푸릇푸릇한 채소의 참 맛을 알려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4살 꼬맹이는 알까. 당연히 모르겠지. 나도 몰랐으니까. 붉은 고기와 하얀 생선의 맛을 보았으니 이제 푸른 채소를 먹을 차례다!


 우리 집 요리 주 담당자는 바로 나다. 엄마와 함께 지내던 시절에는 간을 보거나 라면 냄비를 들고 오는 것 외에는 싱크대 근처도 잘 안 갔는데, 어쩌다 보니 국자를 들고 매일 간을 보고 있다.


 요리를 계속하니 자연스레 아이의 먹거리도 계속 챙기게 된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다른 사례를 따라가지 않으려고 애쓴다. 왜냐하면 아이마다 가정마다 환경과 상황이 너무도 다르기에 아이를 꾸준히 관찰하며, 우리 아이에게 맞는 육아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내 관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일이 늦은 탓에 이제 막 30개월을 지나고 있지만 4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어 식사가 조금 신경 쓰이기도 하다. 같은 반 친구들은 대부분 일찍 태어나 벌써 이것저것 잘 먹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은 많이 어리기에 천천히 하고 싶지만, 건강과 관련된 부분이라 어떻게든 서두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얼마 전 울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봄나물을 아주아주 맛있게 비우고 있다. 하도 맛있어서 3일 정도 먹으니 시금치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이 났다. '시금치를 먹이고 싶은데... 어떻게 먹이지... 음...'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니 수요일 아침, 글을 하나 발견했다.


https://brunch.co.kr/@jinaeroom/746



 너무 흥분된 나머지 '라이킷'도 잊은채 '댓글'부터 막 들이댔다. 흡사 식당에 들어가 음식은 시켜 먹지도 않고 리뷰를 다는 그런 꼴이라고나 할까. 정신없이 댓글을 쓰고, 한참 지나니. 님이반짝 작가님께서 소곤소곤 '無라이킷'을 알려주신다.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참고로 안 소곤소곤했다! '으잇?')

 하원 시간이 다 되어 하은이를 데리러 가, 오늘도 놀이터에 빨려 들어갔다.


요즘 최애 친구와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인상이 찌푸려졌 딸바보 아빠지만, 시금치 먹이기 실험(?)을 할 생각을 하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미소는 무슨, '그 손 놓지 못할까~~!!!!!!!!')

먼저 손을 잡자고 하는 '하은이'.........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앞치마를 내려놓겠다!!!'


 아내가 운동하러 간 사이 작전이 개시되었다. 시금치를 잘게 썰어 먹기 좋게 다듬고, 스팸을 구웠다.

밥을 한 공기 떠서 잘 구워진 스팸과 잘게 다져진 시금치를 넣고, 준비해 둔 양념장을 넣었다. 양념장이래 봤자 간장 한 스푼에 설탕 1/2스푼, 참기름 1/2스푼이 끝이다. 그리고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마요네즈 한 스푼을 넣고 쓱싹쓱싹 비벼,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예쁘게 담아 올려 드렸다.


이름하여, "시(금치)팸마요덮밥"  되시겠다!!! 두둥!



 결과는???



 성공!!! 한 톨도 남김없이 뚝딱 해치운 달달콩!!


 

 이번 작전으로, 시금치의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잘 못 만들어 식사를 거부하면 버리거나 내가 잔반처리 반장이 되기 일쑤였는데, 그럴 때마다 자존감이 한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었다.


 아까운 반찬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며 내 마지막 희망까지도 버려지는 듯한 침울한 기분이 든 적도 있었는데, 이제 다시 한번 더 일어설 용기를 얻은 것이다.


 아이와 아내의 먹거리를 만드는 것은 참으로 즐겁다. 맛있게 만들어 쓱싹쓱싹 먹는 모습을 보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을 알 것도 같다. 만족스러운 표정과 행복한 눈빛, 뽈록 튀어나온 따님의 배를 보노라면 '다음에 또 어떤 음식을 만들어줄까' 생각하며, 나 역시도 행복한 감정에 휩싸이고 만다.


오늘도
밥 한 그릇을 통해
사랑을 배웠고,
행복을 배웠고,
감사를 배웠다.

그리고
나와 따님은
한 뼘 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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