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랭이 Jun 14. 2024

불안장애, 완치할 수 있을까?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한 수험생활②

 아무 이유 없이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이 처음 나타나 일상이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생활 전반에서 불편한 점들이 많았고 특히 호흡이 불편할 때 생기는 짜증과 정서적 불안이 이따금 외부로 표출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호흡곤란으로 인해 특히 불편했던 것을 꼽으라면 낮잠을 못 잔다는 것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점심시간에 잠깐 잠을 자는 것은 남은 하루를 보내는데 아주 큰 활력을 준다고들 한다. 수험가의 많은 강사들도 낮잠이나 쪽잠을 통해 수면과 체력을 보충할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이 단순한 조언이 내게는 단순하지 않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할 때도 숨을 '헉 헉' 몰아 쉬는데, 엎드려 버리면 식은땀까지 흘렀다. 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붙이면 숨을 몰아 쉴 때 몸을 앞으로 구부려야 하는데, 그때마다 일어나서 몰아쉬고 다시 눕고를 반복하니, 아예 차에서 잔다는 생각을 몇 년간 한 번도 하지 못했었다. 잠은 오는데 잠을 못 자니 공부시간이 확보되어 좋지 않은가 싶은 긍정적인 생각도 해보았지만, 몽롱한 상태로 계속 책을 보니 집중도 안 되고, 몸은 더 피곤한,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이대로는 수험생활을 빠르게 마칠 수 없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 두려움 덕분에 또 다른 불안이 가중되고 내 호흡장애는 그야말로 역대급으로 치닫고 있었다.  '병원에 가볼까...'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두려웠다. 수험생은 하루 1시간 쓰는 것도 계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내가 날 때부터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다면 모를까, 지금 나의 수준은 커트라인 근처에 가기도 어렵기 때문에 시간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10년 참았는데, 몇 달 못 참겠어?'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병원에 가기 망설였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수익도 없이 한 달에 약 4만 원 정도를 생활비로 사용하며 버티고 있었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다가 이야기해서 병원비를 조금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 싫기도 했고 부모님 지갑에 더는 의지하기 싫었다.


 마지막 이유는 바로 '경험'때문이었다. 10여 년 전 처음 병원에 방문했을 때도 병원에서는 뚜렷한 해답을 주지 않았었다. 약을 처방받은 것 외에는 상담내용도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었다. '불안장애'라는 것도 잘 알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짧은 경험에서 나오는 편견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안다.


 이렇게 많은 이유에도 결국 나의 선택은 '병원 진료를 받는다'였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일단 이런 몸 상태로는(정확히는 정신적인 상태) 집중 있게 공부할 수 없기 때문에 효율성 면에서도 병원진료에 투자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담배도 끊었으니 지출이 많이 줄어들어 병원비를 조달하는 데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방문한 '신경정신과'에서 의사 선생님은 내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자세한 건 조금 더 살펴봐야 알겠지만, 우선 불안에 의한 신체화 증상이 있네요. 키랭 씨 말고도 최근에 이런 증상을 보이시는 분들이 더러 있어요."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왜 이런 증상을 달고 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지???'


 수많은 꿈 중에서도 호흡곤란 증상에 대한 완치가 단연 0순위에 들어가는 꿈이었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오랫동안 겪었기에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일상이 지장 받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까지 달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섣부르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아프고, 왜 아픈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서 속이 다 후련했다. 처방받은 약봉지를 손에 들고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방정맞게 눈물을 쏟았다.  '드디어... 완치를 할 수 있는 건가... 아...' 그리고 정말 일시적으로 30분가량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호흡곤란 증상으로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어쩌면 이번기회에 완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 하나만으로도 증상이 제법 호전되었다. 그때는 잘 알지 못했지만 훗날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는 내 호흡곤란 문제는 정신과적 문제임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서관에 차를 세워 두고 잠시 생각했다.


 '건강한 성인 기준 분당 12에서 20회를 하는 평범한 호흡을 하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엎드려 잠시 쪽잠을 잘 수 있다면 공부하는 내내 얼마나 좋을까, 밤에 잠들기 전 숨을 몰아쉬지 않고 스르륵 잠이 드는 기분은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이러한 꿈이 이뤄질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포기하지 말자, 진짜!!!'


 

이전 13화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