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한 수험생활②
아무 이유 없이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이 처음 나타나 일상이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생활 전반에서 불편한 점들이 많았고 특히 호흡이 불편할 때 생기는 짜증과 정서적 불안이 이따금 외부로 표출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호흡곤란으로 인해 특히 불편했던 것을 꼽으라면 낮잠을 못 잔다는 것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점심시간에 잠깐 잠을 자는 것은 남은 하루를 보내는데 아주 큰 활력을 준다고들 한다. 수험가의 많은 강사들도 낮잠이나 쪽잠을 통해 수면과 체력을 보충할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이 단순한 조언이 내게는 단순하지 않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할 때도 숨을 '헉 헉' 몰아 쉬는데, 엎드려 버리면 식은땀까지 흘렀다. 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붙이면 숨을 몰아 쉴 때 몸을 앞으로 구부려야 하는데, 그때마다 일어나서 몰아쉬고 다시 눕고를 반복하니, 아예 차에서 잔다는 생각을 몇 년간 한 번도 하지 못했었다. 잠은 오는데 잠을 못 자니 공부시간이 확보되어 좋지 않은가 싶은 긍정적인 생각도 해보았지만, 몽롱한 상태로 계속 책을 보니 집중도 안 되고, 몸은 더 피곤한, 그야말로 악순환이었다.
이대로는 수험생활을 빠르게 마칠 수 없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 두려움 덕분에 또 다른 불안이 가중되고 내 호흡장애는 그야말로 역대급으로 치닫고 있었다. '병원에 가볼까...'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두려웠다. 수험생은 하루 1시간 쓰는 것도 계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내가 날 때부터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다면 모를까, 지금 나의 수준은 커트라인 근처에 가기도 어렵기 때문에 시간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10년 참았는데, 몇 달 못 참겠어?'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병원에 가기 망설였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수익도 없이 한 달에 약 4만 원 정도를 생활비로 사용하며 버티고 있었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다가 이야기해서 병원비를 조금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 싫기도 했고 부모님 지갑에 더는 의지하기 싫었다.
마지막 이유는 바로 '경험'때문이었다. 10여 년 전 처음 병원에 방문했을 때도 병원에서는 뚜렷한 해답을 주지 않았었다. 약을 처방받은 것 외에는 상담내용도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었다. '불안장애'라는 것도 잘 알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짧은 경험에서 나오는 편견일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안다.
이렇게 많은 이유에도 결국 나의 선택은 '병원 진료를 받는다'였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일단 이런 몸 상태로는(정확히는 정신적인 상태) 집중 있게 공부할 수 없기 때문에 효율성 면에서도 병원진료에 투자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담배도 끊었으니 지출이 많이 줄어들어 병원비를 조달하는 데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게 방문한 '신경정신과'에서 의사 선생님은 내게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자세한 건 조금 더 살펴봐야 알겠지만, 우선 불안에 의한 신체화 증상이 있네요. 키랭 씨 말고도 최근에 이런 증상을 보이시는 분들이 더러 있어요."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왜 이런 증상을 달고 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왜 이걸 이제야 알았지???'
수많은 꿈 중에서도 호흡곤란 증상에 대한 완치가 단연 0순위에 들어가는 꿈이었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오랫동안 겪었기에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일상이 지장 받는 것도 사실이다. 언제까지 달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섣부르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아프고, 왜 아픈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서 속이 다 후련했다. 처방받은 약봉지를 손에 들고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방정맞게 눈물을 쏟았다. '드디어... 완치를 할 수 있는 건가... 아...' 그리고 정말 일시적으로 30분가량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호흡곤란 증상으로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어쩌면 이번기회에 완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 하나만으로도 증상이 제법 호전되었다. 그때는 잘 알지 못했지만 훗날 이러한 현상을 보고서는 내 호흡곤란 문제는 정신과적 문제임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서관에 차를 세워 두고 잠시 생각했다.
'건강한 성인 기준 분당 12에서 20회를 하는 평범한 호흡을 하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엎드려 잠시 쪽잠을 잘 수 있다면 공부하는 내내 얼마나 좋을까, 밤에 잠들기 전 숨을 몰아쉬지 않고 스르륵 잠이 드는 기분은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이러한 꿈이 이뤄질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포기하지 말자,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