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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n 21. 2024

수험생의 불안장애 약 복용 딜레마

소방공무원이 되기 위한 수험생활③

 군입대 전, 그리고 부대 내에서 약을 조금 먹어봤기 때문에 약을 먹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약을 복용하면서 겪어야 하는 증상들이었다. 꽤 개운치 못했다. 그리고 수험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 약을 먹는다는 것은 꽤 큰 도박이었다. 약을 복용하면 이런 증상들이 나타났다.


 첫 째, 나른해졌다. 약은 보통 저녁을 먹는 시간에 식사 중이나 후에 먹게 되는데, 늦어도 9시 이전에는 복용했고 약이 매우 세기 때문에 공복에는 절대 섭취하지 않았다. 복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드는 듯도 하고 잠이 들고 나면 다음날은 계속 나른함을 느껴야 했다. 늘 긴장상태이고 불안상태인 몸을 편안하게 하는 작용 같았다. 하지만 수험생인 나는 나른해져서는 안 되었다. 억지로 엉덩이를 붙이고 끝까지 앉아 있으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물론 얻은 것도 있다. 호흡이 편한 시간이 조금 는 것이다.


 약을 복용하며 겪은 변화 중 두 번째는 바로, 첫 번째와 비슷하게 '하품'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다. 정말 쉴 새 없이 나왔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하품을 끝낼 때 즈음에 몸이 살짝 간지럽게 되고, 믿기지 않겠지만 자동으로 웃음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미소에 가까운 웃음이다. 간지러워서 웃은 것인가? 사실 잘 모르겠지만 이것이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당시 아무런 지식이 없었기에 이렇게 받아들였다. '잠을 유도하고 하품을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의 긴장과 불안을 잠재우고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는 것이구나, 그럼 결국 잘 쉬면 괜찮아지는 원리인가?'라고 말이다. 훗날 책을 찾아보고 조금 공부해 보니 비슷한 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번째 변화는 식욕이 뚝 떨어졌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목구멍에서 이상하게 느껴졌다. 웬만한 음식은 목에서 거부반응이 날 정도로 맛이 없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먹기는 먹었다. 최소로. 하지만 막 당기거나 한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건 사실 변화라기보다는 부작용에 가깝다고 느꼈다. 약이 너무 강해서 식도와 위가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식감'은 떨어졌으나 배가 안 고픈 것은 아니니 적어도 '과식'은 막는다는 것이었다.


 약을 복용한 후로는 말수도 적어졌다. 기운이 없고 축 늘어져 말할 기운도 없었다. 확실히 약을 복용하기 전 보다 호흡이 정상인 상태의 빈도가 조금 더 높아졌다. 하지만 일상의 90% 가까이 정상상태를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약물복용을 점점 하면 할수록 그 효과는 점점 떨어져 갔다. 이 것도 훗날 내가 이해하게 된 것은, 약을 복용하며 호르몬의 조절은 도움 받은 것은 사실이나, 시험 준비에 대한 압박과 불확실한 미래, 쉬지 않고 공부하고 있는 상태 때문에 약의 큰 효과를 못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이나 각종 불안장애를 겪는 사람들 중 그 정도가 매우 심해 하루 중 절반 이상이 고통받는 상태면 약물 복용을 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약에만 의지하고 본래의 삶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체적인 리듬도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담센터나 의사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경우는 수험생활을 중단할 수 없었기에 약을 먹기도 안 먹기도, 상담을 받기도 안 받기도 참으로 애매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약을 복용하며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고문과도 같았다. 책을 보고 1시간을 공부하면 한 줄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공부효율로 치면 숨이 '꺽꺽' 차서 계속 몰아쉬며 공부할 때는 50% 정도였다면, 약을 복용한 이후의 공부효율은 1%도 되지 않았다.


 결론을 내렸다. '약 복용을 중단하자.' 


 



 또다시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들이 일상이라고 부르는 그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 남모를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지독한 일상으로 말이다. 


 도서관 주변으로 곱게 핀 벚꽃을 바라보며 합격 후 내년에는 반드시 벚꽃놀이를 가겠다 다짐했지만, 퇴사 후 첫 시험에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답안지를 교체한 후 마킹을 다 못한 것. 시계를 탓할 것도 없고, 감독관을 탓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잘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요행으로 3개월 만에 뚝딱 공부해서 합격했다면 지금의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게나 눈물겹게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겸비해야 할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을 놓쳤을 수도 있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그 눈물겨운 시간들을 통해 나는 나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해보지 못할 소중한 경험도 얻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호흡이 편해지는 시간도 조금은 늘었다. 확실히 도서관에 있으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것은 맞는 것 같았다. 아쉽지만 다음을 준비하기 위해 하던 공부를 내려놓고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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