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원하던 꿈같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하루하루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2년여 쯤 근무했을 때인가... 본서의 부름을 받아 내근직(본서 행정업무를 보는 일을 함)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현장 출동과 순찰, 훈련을 하다가 완전히 다른 업무를 수행해야 했기에 낯섦도 있었지만, 주로 컴퓨터로 하는 일이니 크게 부담은 없었다. 본서 건물과 같이 있는 직할센터에서 근무를 계속했었기에 사람이나 건물도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다만 사무실 내 공기는 다소 다른 느낌이었다. 대화는 없고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저... 이번에 올라오게 되었는데, 인수인계는 언제 하면 될까요?" 전임자로 보이는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인수인계에 관해 물어보았다. "아, 잠시만요, '타다다다다닥(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어차피 제가 바로 옆자리로 갈 건데 내일 출근하시면 조금씩 알려드릴게요.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보세요" 바빠 보이는 손과 눈빛을 보니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인사를 아주 급하게 내기 때문에 인수인계를 받을 시간이 상당히 부족하다. 주말을 활용해서 받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인수인계는 받기가 힘들다.)
첫날, 자리에 앉아 낯선 공문을 읽으며 온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작은 헛기침도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있으니 제복 안 쪽으로 땀이 흥건히 젖는 것도 잊고 있었다. "키반장!" "네! 과장님" 내 이름이 불릴 때면 깜짝깜짝 놀라며 수첩과 볼펜을 들고 이등병이 된 것처럼 앞으로 달려갔다. "전임자가 바로 옆에 있으니까 모르는 것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봐. 그래도 너는 운이 좋으네, 전임자가 바로 옆에 있으니까" "네! 과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전임자가 옆에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은데, 편하게 물어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행운이 나의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저... 이 공문이 왔던데, 이 부분은 혹시 어떻게 처리하셨었나요?" "아, 지금 바쁜데, 저기 죄송한데 작년 공문 한 번 보시겠어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바쁜 그의 말투와 눈빛을 보며 질문을 하는 것은 참으로 미안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키반장!" "네, 계장님" "아까 말한 거 아직 다 안 했냐?" "네! 계장님 방금 과장님 시키신 것이 있어서..." "아... 뭐 하냐..." "빨리하겠습니다" "키반장!" "네, 과장님" "서장님 시킨 것 언제 마무리될 것 같아?" "네? 서장님.. 아! 서장님, 빨리 하겠습니다." "일단 내가 시킨 것 말고 서장님 것부터 처리해" "네, 과장님!" (다다다다다닥-키보드 소리) "반장님!!" "네! 반장님(전임자)" "아까 계장님 시킨 것 다 했어요?" "네??? 아 방금 서장님 시킨 것이 있어서... 저 근데.. 이거 혹시 어떻게 하는..." "아... 시간 없는데, 과장님 시키신 건요?" "아.. 과장님 시키신 게 뭐였 더..." "아니! 아... 계장님 시키신 것 그냥 저 주세요." 바로 옆 계에서 "키 반장! 문서 이거 왜 나한테 접수시켰어?" "네? 아! 죄송합니다. 작년에 그쪽으로 되어 있길래 참고해서..." "아니, 이게 왜 내 문선데?" "(옆 계 계장) 키반장!" "네 계장님" "잠시만 이리 와 봐!" "네. 계장님"
이 모든 일이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숨쉴틈 없이 일과가 지나갔다. 어쩔 수 없는 부족한 나의 업무역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해 나갔다. 모든 지시사항을 꼼꼼히 메모했고, 처리한 업무는 줄을 그어가며 하나하나 처리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과는 다르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힘들어하고 있던 내게 전임자는 "저도 처음 왔을 때 아무도 안 가르쳐줬어요. 그러니까 반장님도 앞에 3년 치 공문 다 읽어보시고, 바탕화면에 (정리도 제대로 안 된) 폴더 열어서 한 번씩 보세요. 그러면 감이 잡히실 거예요."라고 말하며 조언이랍시고 한 마디 보탰다. 나는 새로운 공문이 쏟아질 때마다 작년, 재작년 공문을 참고하며 업무를 처리했다. 그리고... "아... 이거 아니라고!! 하는 일 보면... 쯧쯧쯧, 작년에 썼던 문서 그대로 복사 붙여 넣기 하는 게 어디 있냐? 뭐야 이게? 야! ○○ 이거 네가 처리해" 계장은 나의 문서를 못 마땅해했다. 나의 업무를 받은 전임자는 씩씩거리며 문서를 작성했고, 나는 그 문서를 참고했다.
"그래, 아이고... 네가 하니까 좀 낫다"
나와 비슷한 형태의 문서였다... 심지어 작년 문서 형식을 갖다 쓴...
오전 내내 어디론가 사라져 있는 계장, 본인 꺼 아니라며 문서 접수 하나라도 실수하면 날아오는 화살(사실 본인 문서인데), 인수인계를 저버린 전임자와 함께 나는 점점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자 나는 지적받지 않기 위해 메모와 피드백 시간을 더 늘려나갔고, 출근도 점점 빨라졌다. 급기야 새벽 6시 7시까지 출근해 문서를 뒤적거렸고, 퇴근도 같이 늦어졌다. 오후 3시 즈음 "계장님, 오늘 이 문서 검토 좀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어... 너 오늘 저녁에 근무하냐?" (사실 8시까지인데) "네? 네... 네! 합니다" "아 그럼 저녁에 보자" "네!" "그리고 저녁에 집에 갈 때 같이 가자~ 차 두고 갈 거야" 밤 9시 혹은 10시가 다 되어서 검토를 하고내일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들어갔다.밤 11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면 나는 어김없이 술을 찾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월화수목금, 주 5일을 아침 7시부터 밤 12시 혹은 새벽까지 사무실에 있어야 했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다. 다음날 보자던 문서는 다시 퇴짜를 맞았고, 띄어쓰기 하나, 점 하나에도 검토가 밀려버리니 쌓이는 업무를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다.야근을 하기 싫은 날에도 야근을 안 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계속 이어졌고, 몸과 마음은 점점 병들어갔다.
무엇보다 더욱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바로 구부정한 자세로 1시간씩 서 있어야 하는 검토시간이었다. 계장은 사람을 세워놓고 하는 검토를 좋아했다. 아니 그것은 그의 습관이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요령이 있는 선배들은 할 말을 하며 빠져나왔지만 나는 쉽지 않았다. 발목이 부러져 목발을 짚고 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40분씩 서서 검토를 받았다. 서류를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직접 처음부터 작성하며, 작은 공문서 하나를 한 시간씩 한 숨을 '푹푹' 내쉬며 문서를 작성했다. 그리고는 늘 이렇게 말했다. "자, 이런 게 바로 문서지! 요즘에는 문서를 다 아무렇게나 만들어. 예전 문서 베끼기나 하고 말이야. 내가 아무도 안 알려주는데, 이렇게 좀 작성해 봐라." 그는 자신의 문서작성 능력을 뽐내며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나는 하나라도 더 배우는 과정이라 여기며 열심히 적으며 경청했지만 그것이 '정서학대, 이른바 가스라이팅(신조어)'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하루 열두 번도 더 혼이 나는 탓에 기억에도 오류가 생겼다. 방금 한 말을 금방 잊어버리고, 앞선 지시사항이 이행되기 전에 다음 지시사항을 받으니 내 작은 두뇌가 파업을 하고 만 것이다. 어떻게든 긍정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과부하가 걸려 시스템이 폭발하고 말았다. 선배들은 "아니, 점 하나 잘 못 찍었다고 사람들 다 있는데서 서류까지 집어던지냐... 아휴... 조금만 버텨라..."며 등을 토닥거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일 못하는, 나약한, 더이사 나아질 리 없는 그런 부류로 낙인찍히고 있었다. 계장에게 깨질 때마다 과장은 전임자가 바로 옆에 있으니 많이 물어보고 배워라며 위로해 주었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고통에 시달렸다. '가르쳐주지 않아요... 과장님...'이라고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오다 말고를 수백 번 반복했다.
오늘 일을 끝내지 못하면 집에 갈 수 없다는 압박에 시달려 결국 나와 아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던 결혼식 준비까지 소홀히 하고 말았다. 결혼 전 날까지 조퇴를 허락받지 못해 밤이 늦어서야 귀가할 수 있었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예식 탓에 결혼 당일, 가까운 친척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친구들, 동료들을 거의 챙기지 못했다.
불안장애로 인해 생겨버린 호흡곤란 증상은 깨어있는 내내 나를 괴롭혔고, 얼마 되지도 않는 머리털도 함께 빠져나갔다. 단기적으로 기억을 거부하는 현상도 며칠 지속되어 결국 병원 진료라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으로 직장에 자리를 잡았는데, 사람 때문에, 업무 때문에 이렇게 무너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낯설지만 사실 익숙하기도 한 상담실에 성큼 걸어 들어가 의사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의사는 능숙하게 공감해 주며 다음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상사의 만행을 알리고 갑질에 맞선다. 이 방법은 극단적이기는 하나 효과 또한 확실하다. 다만 일이 벌어진 후에 발생할 상급기관에서의 조사나 직장동료들의 시선 같은 것들도 감수해야 하며 아주 오랫동안 꼬리표가 따라붙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둘, 지금 있는 조직 혹은 부서를 떠난다. 어렵게 들어온 만큼 일 자체를 그만두는 것은 선택지에 없을 것이고, 부서 이동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만약 부서이동이 예정되어 있지만 조금만 더 견뎌보는 것도 추천했다. 셋,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 들어고 머리를 숙인다. 이 방법은 가능만 하면 가장 원만한 해결방법임에는 틈림없으나 사실, 당사자의 고통 또한 큰 방법이다.
우선 호흡곤란 증상이라도 완화해야 했기에 또다시 약물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딱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담임목사님께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부끄럽지만 눈에 보이는 지푸라기라는 지푸라기는 다 잡고 싶었다.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다. 담임목사님의 조언도 병원에서 얻은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거의 흡사했다. 정확히 위 세 가지를 제시하며 다만, 내가 스스로 선택할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며칠간 고민 후 결국 선택한 방법은. 부서이동을 희망한 후 이동이 될 때까지 참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한 공공기관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이뿐만 아니라 뉴스에도 잊을만하면 갑질 등에 사라져 가는 젊은 별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 내 가슴도 철렁거린다. 혹자들은 아직도 이렇게 이야기한다. "으이그~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런 선택을 하냐? 차라리 괴롭힌 사람한테 피해라도 주고 그러지" 어느 인터넷 기사에 올라온 댓글이 아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발언이다. 겉으로 이해하는 척하지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 공감할 수 없다. 감기는 걸려봐서 알지만, 허리는 아픈 사람만 아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공감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강해져야 한다. 상대의 공감과 이해를 기다리기보다는 나의 내면을 더욱더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욱더 진심이어야 한다.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같이 뒹구는 것도 직접 판단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선가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네가 잘 못한 것 아니라고. 네가 다 안고 갈 필요 없다고. 너를 죽도록 아끼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고. 신체나 정신에 이상신호가 오면 반드시 늪을 빠져나오라고.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내면 강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때론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