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꾼, 현명한 아내의 한 가지 조언

불안장애 극복의 서막

by 키랭이

나는 결혼 전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 생활하는 인간이었다. 21주기 근무를 할 때는 비번일과 퇴근 시간에 꼭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스케줄을 세웠다. 바인더는 늘 월간, 주간 계획이 가득 차 있어 공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21주기 근무 체계
1. 주주주주주비비
2. 야비야비야비당
3. 비야비야비당비

꿈에 그리던 직장생활이라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해서 삶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었다.


삶의 변화를 이끌기 위한 첫걸음으로 나는 우선 책을 선택했다. 도서관에 가 재테크 분야, 인문분야, 소설 분야의 책을 각각 빌렸고, 차에 한 권, 침대에 한 권, 가방에 한 권 비치하여 수시로 읽어갔다.


두 번째 방법으로는 운동을 꾸준히 했다. 임용 전 다친 허리를 치료하고 강화하기 위해 헬스와 수영, 스트레칭을 꾸준히 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자격증이다. 많지는 않지만 1년 1 자격증을 목표로 조금씩 공부했다. 그 결과 워드프로세서나 실용글쓰기, 위험물기능사 같은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참고로 남들은 쉬워 보이는 이런 자격증 취득은 의외로 굉장히 큰 선물을 준다. 작은 성공경험은 큰 성취감과 다음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하고, 이러한 작은 성공경험이 반복되면 삶의 전체 축은 행복과 성공, 기쁨과 감사, 열정으로 조금씩 기울게 된다. 즉, 더 나은 삶으로의 여정을 이끌어주는 좋은 연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상금여부를 막론하고, 다양한 대회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삶의 변화를 이끈 3가지>
독서, 운동, (의도된) 작은 성공경험의 누적


하지만 내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불안장애
신체화를 겪고 있는 인간이다




아내는 아직 나와 결혼을 하기 전, 시간을 통제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대단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많은 걱정을 했었다. 이 때는 불안장애로 인한 걱정이라기보다는 내가 조금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 후에는 본격적으로 조언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 초에는 그냥 나를 걱정해 주는구나 싶으면서도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꾸준히 무언가 하다가 내려놓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계속된 조언과 나의 증상악화로 나도 모르게 변하고 있었다. 아내의 조언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요
잘 수 있을 때 많이 자요


쉬어라. 자라. 딱 이 두 가지였다. 지만 단순하디 단순한 조언이 내가 앞으로 몇 년간 내 증상을 분석하고 완화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15년, 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나의 호흡이 정상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괜찮은 '순간'은 있나, 완치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사실 포기하듯 방치한 세월이 꽤 길었다. 그렇게 된 이유에는 신경정신과 방문도 한몫했다. 발병 초기 병원에서는 불안장애에 따른 신체화증상을 잘 모르고 있었고, 이 증상의 치료로 약물복용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약물 부작용이 걱정되어 지속적으로 복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년간의 시간이 흐르고 아내와 함께 가정을 꾸린 지 몇 년이 흘렀을 때 나는 다시 이 호흡부전 증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마 이유는 지켜야 할 가족이 생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내와 아이, 이 소중한 행복을 오래 지속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건강해야 해.


그리고 아내의 말 대로 최대한 쉬려고 하고, 최대한 잘 수 있을 때 자두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계속 반복해서 노력하니 휴식과 쪽잠이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결과는 놀라웠다. 보통 수면을 마친 후 30분에서 길면 2시간도 호흡이 잠깐 좋아지는데, 이것을 계속하니 호흡이 상당히 좋아졌다. 휴식은 호흡이 불안한 상태에서는 그 어떤 휴식도 도움이 크게 되지 않았다. 해서,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집안일 따위를 시작했다. 노래를 틀거나 드라마를 틀어놓고. 눈치 보지 않는 단순 노동도 증상 개선에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아내의 조언 없이 홀로 살아갔더라면 나는 끝끝내 나를 들여다보기를 망설였을 것이라 지금도 확신한다.




의학적인 지식은 없지만, 마음으로부터 기인한 상처는 물리적인 치료보다는 마음 깊숙이 들어가 만져주어야 치료의 효과가 큰 것 같다. 병을 먼저 이해하고, 나를 들여다보고, 천천히 관찰하는 것. 그것이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나는 여전히 호흡이 불안정하다. 엎드려 자고 싶어도 숨이 차서 포기하고, 차에서 쪽잠을 자고 싶어도 금세 숨이 차서 내린다.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면 숨이 막혀 얼마 있지도 못한다. 글을 쓸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역설적이게도 지금 가장 행복하다. 누군가는 억지로 짜내는 가짜 행복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강력하게 펀치를 날려주고 싶다.


행복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고, 고통과 슬픔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는 디딤돌 같은 것이라고. 진정한 행복은 운석처럼 발 앞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굳은 땅을 뚫고 올라와 나무에 매달린 열매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라고. 계절이 지나 겨울이 오는 것도 행복이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는 것도 행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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