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아주 단순하지만 꽤 괜찮은 교훈을 하나 얻는다. 그것은 바로 피하는 것. 우리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피하고 숨으면 살아남았다. 무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진 짐승이나 호전적인 인간들을 피해 이동하며 생존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세대를 거치며 인간은 죽이거나 피하거나 하며 각자의 DNA를 계승, 전승해 왔다. 피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우리 인간의 습성이다.
그런데 가끔은 맞서야 할 때도 있다. 맞서지 않으면 물러날 곳이 없는 인간은 한 발 더 물러서는 그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나 또한 그러한 순간을 몇 번 만났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고, 물러설 곳이 없던 그 순간. 나는 맞서야만 했다. 상대는 아주 강했지만 나는 조금씩 한계를 돌파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생존했다.
놀라운 사실은
벼랑 끝에 만난 그 사내의 정체는
한결같이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불안장애와 함께하는 동안 가장 많이 만난 숙제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문제는 내 안에 있었고, 정답도 내 안에 있었다. 내가 곧 병이자 약이고, 내가 곧 불안이자 평안이었다.
물론 초창기에는 문제의 본질조차 꿰뚫지 못했다. 나라는 책이 한 권 있었다면 나는 단 한 줄도 읽어 내려가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내가 뇌를 속이고 뇌가 나를 속이며 나는 편리하고 유리한 방향으로만 사고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읽기 위해 제일 먼저 독서를 선택했다.
나를 만나는 첫걸음, 독서
어떤 책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타인의 삶이 궁금했다. 소설을 쓴 작가나 교양서적을 쓴 작가나 어차피 다른 사람이 쓴 것일진대, 작가의 가치관이나 등장인물의 삶을 간접체험하면서 무언가 느껴지길 바랐다. 책을 얼마간 읽고 나면 무조건 밖으로 나가 걸었다. 당시에는 담배를 태웠었는데, 담배를 몇 개비 피더라도 밖으로 나가서 생각을 했다. 그럼 무슨 생각을 했느냐?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각을 하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걸으니까, 움직이니까 생각도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생각이 쏟아졌다. 처음 며칠은 잘 못 느꼈는데, 매일 책을 붙잡고 읽으니 매일 내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들의 책 속 내용들과 묘하게 만나며, 간신히 사고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나도 그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매일 조금씩 변하던 내 생각과 행동이 이전보다는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왔다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내 삶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나는 과거의 나, 즉 오래된 피딱지 같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향상된 시선이 생겼고, 나는 그 피딱지마저 떼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침내 나는 독서를 통해 나라는 우주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꽤 유의미한 정보를 수집하며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훗날 이런 습관들이 쌓이고 쌓여 내가 불안장애를 파악하고 분석하며, 이겨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호흡이 가장 편해지는 순간, 글쓰기
틈만 나면 조금씩 썼다. 내가 처음 썼던 글(사실 완전히 처음은 아니겠지만)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나 선사시대 문양보다 못한 욕설이었다. 분노와 울분을 수첩에 써 내려가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10대였던 키랭이는 감정을 그대로 종이 위에 옮겨적으며 가슴속에 품어서는 안 될 맹독을 토해내며 버텨내었다. 그 짧은 글들은 나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겨우 붙들어 주었고, 이후 교회를 다니며 기도문을 주기적으로 쓰고 하나님께 편지를 써나가며 마음을 달래갔다.
그렇게 중학교 때는 시화전에 참가해 표절(?)이 의심되는 나의 첫 작품이 전시되기도 하며 글쓰기의 기쁨을 조금씩 알아갔다.
20대가 되어서도 쓰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아니더라도 연습장에 난잡한 생각들을 정리해 나가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불안으로 인한 신체화장애가 생기기 전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글을 쓰다 보니 호흡부전을 잊게 되는 아주 큰 장점도 있었다. 아주, 아주 신기한 현상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헐떡이던 숨은 가라앉았고 마음은 편안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몇 해전 에세이라는 것을 처음 써서 공모전에 내보내고 상을 받은 후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바로 받았고, 이후 나의 글쓰기는 급물살을 탔다. 또 한 번 나는 과거의 지질했던 나의 엉덩이를 한 번 걷어 찬 셈이다. 브런치를 만나고 나의 어두웠던 과거와 현재의 고통, 감사의 기쁨을 정제된 말투로 써 내려가니 과장을 조금 더 보태서 인생 전체가 변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소소한 재미를 발견했고, 그 작가님들의 응원을 받으며 나의 과거는 조금씩 치유되었다.
집으로 모셔온 최고의 주치의, 아내
결혼 전 나는 아내에게 나의 호흡부전을 이야기했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말해야만 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실 호흡 문제는 티가 잘 나지 않았다. 군복무 시절 티 내지 않고 호흡하는 요령을 익힌 탓도 있고, 데이트를 할 때는 정상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집중을 하거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파민과 옥시토신, 페닐에틸아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나오는 호르몬성 착시현상인 '콩깍지' 덕분에 나도 아내에게 집중을 할 수 있었고, 아내도 잘 넘어가 주었다.
하지만 결혼 후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아내는 내게 끊임없이 처방전을 써주었다.
"쉬어요. 잠을 자요. 멈춰요. 물러서요. 괜찮아요."
하지만 여느 환자들이 그렇듯 나 역시 처방전을 손에 들고 나와 약국을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하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 결과 증상은 잘 나아지지 않았다. 결혼생활 만 5년이 넘어가는 현재는 아내의 처방을 곧장 받아 들고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아주 말 안 듣는 환자였으니 아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요즘은 내가 이렇게 말한다.
"나 좀 쉬어야 될까? 쉬어라고 말 좀 해줘... 쉴게"
평생을 편하게 쉬는 것을 잘해보지 못하고 온갖 고민과 걱정을 침대까지 끌고 들어오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해서 나는 아내에게 명령을 내려달라고 부탁하고 아내는 덤덤하게 명령을 한다.
"쉬어, 쉬어야지. 좀 자둬"
이게 정말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 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변해갔다는 것이다. 불안과 걱정을 침대로 끌고 들어오는 대신 귀가 후 손을 씻듯 마음을 씻어내고 어둠을 바라보기보다는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휴식과 수면의 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아직도 계속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