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의 어둠이 당신의 빛이 되기를
처음 발령받았던 소방서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직할센터 1선 펌프 경방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 직할센터는 시군구 소방 본서 건물에 소속된 1개 119 안전센터(그 외는 외곽센터)이며, 직할센터는 보통 1선 펌프, 2선 펌프, 화학차 등으로 구성되어 1선 펌프가 관내 1차 출동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화재출동! 화재출동! 주택에 불이 났다는 신고입니다. 현재 건물 내 할아버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원들은 도착하는 즉시 안전에 유의하여 활동해 주시고 인명구조 최우선으로 활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벽 6시,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는 빨간 소방펌프차에 올라타 장비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차가운 장화 속에 언 발을 넣고 바지를 끌어올려 멜빵을 메고 '똑딱!', 방화복 상의를 입은 후 목까지 지퍼를 올리며 숨을 한 번 고른다. 소방펌프차를 운전하는 대원의 심장도 고강도 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아주 빠르게 뛰고 있어 액셀페달 위에 올라가 있는 발이 조금씩 떨린다.
공기호흡기를 메고 면체를 얼굴에 씌우는 동안에도 다급한 무전은 계속 흘러나온다.
현장에 도착 즉시 차를 어떻게 대서 호스를 몇 장을 빼고, 누가 먼저 나가고 누가 뒤를 따라가며 어떤 장비를 추가로 들고 갈지 차에서 논의하다 보면 어느새 빨간 불길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현장에 다다른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긴장은 바짝 하지만 다행히 면체와 헬멧, 방화복 덕분에 나의 불안한 감정은 조금은 숨겨진다.
"할머니! 여긴 위험하니까, 옆으로 옆으로 물러나세요!!!"
여느 현장이 그렇듯 시골의 어르신들은 늘 집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오랫동안 아궁이불을 사용하며 불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도 있고, 집도 그리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 집 안으로 들어가 물건들을 챙기려 하다가 생각보다 높은 확률로 사망에 이르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할머니! 뒤로! 뒤로!"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나는 할머니를 번쩍 들다시피 하며 밖으로 모셨다. 그런데 할머니가 내 어깨를 또 한 번 잡아당기며 나는 순간 넘어질 뻔하고 말았다.
"영감이!!! 흑흑흑... 영감이!!!"
"할머니! 영감님 저희가 들어가서 구해드릴게요. 제발 저희 좀 도와주세요!"
"영감이... 영감이!!!"
"네!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그래... 영감이... 알면 안 되는데..."
"네???"
"영감이 알면 안 되는데... 내가 저 방에, 장판 밑에 영감 몰래 돈을 숨카(숨겨) 놨거든. 그것 좀 찾아주이소"
"네? 네? 뭐라고요?"
당황한 나는 할머니를 다시 옆으로 보내드리려 밖으로 나갔는데, 밖에는 놀랍게도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급히 무전을 날렸다.
"(무전)아... 지휘팀장님, 여기 1선 경방입니다. 그, 그! 영감님이 아니고 영감님이 알면 안 된다며, 돈을 좀 찾아 달라고 합니다."
(지휘팀장 무전)"아... 지휘팀장입니다. 현재 건물 붕괴 우려되니 구조대원들은 밖으로 철수하시고 전원 마당 쪽으로 집합 바랍니다."
지휘팀장님은 한숨을 내쉬며 재지시를 내렸다.
"건물 내부에는 사람이 없고,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알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한 현금을 찾아야 하니 화재진압 시 유의하면서 안전하게 활동하기 바랍니다."
불안했던 현장은 어느새 웃음기 없는(웃을 수 없으니) 웃음바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
치솟는 불길
울부짖는 사람들
욕설과 주먹이 오가는 현장
방화복 옆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고 지나가는 차량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
오물과 혈액이 뒤섞인 방바닥
언젠가 나는 내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편안한 일들도 찾아보면 많이 있을 텐데 왜 불안이 일상인 이 일을 선택했을까 하고 말이다.
내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치 예상문제를 알고 공부해 온 것처럼 나는 단숨에 대답했다.
불안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불안해야 고민하고 연구하며 살아남는다. 다만, 나는 불안 과잉상태로 현재 오류가 심각하게 발생한 상태다. 그런 나는 불안이라는 오류를 관리하며 뛰어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하는 일은 불안(不安), 그러니까 불(火)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불(火) 안을 점령하고 신선한 공간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내가 느꼈던 불안보다 더 큰 감동과 기쁨, 보람으로 가득 차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어둠을 겪어본 사람은 어둠 속을 잘 안다. 어둠 속을 지나온 사람은 빛의 소중함을 잘 안다. 나는 어둠을 공감할 수 있고, 빛을 밝혀줄 수 있다. 내가 지금껏 데리고 살다시피 한 나의 어둠을 통해, 어둠을 돌파해 온 나의 삶의 여정을 통해 한 분이라도, 단 한 분이라도 빛을 볼 수 있다면 나는 오늘도 기꺼이 불(火) 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불안(不安) 속에 있는, 불(火) 안에 있는 그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불안한 호흡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나의 어둠이 당신의 빛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