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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Sep 21. 2023

들어가는 글

삶 가운데 찾아온 의도하지 않은 '화재'

나는 아직 화재 현장의 검은 때가 덜 묻은 6년 차 소방관이다. 주요 임무는 화재를 진압하고, 인명을 구조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나쁜 불은 빠르게 없애는 것이 나의 일이다. 출동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면 아직은 늘 심장이 쿵쾅거린다. 구조대상자에 대한 걱정과 어떤 현장을 만날지 모르는 긴장감, 그리고 사명감으로 온몸이 전율한다.


또 하나의 주요한 임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빠로서의 역할, 남편으로서의 역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지금의 아내와 만나 1년 간의 연애 끝에 2020년 늦은 가을, 우리 두 사람은 가족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선물도 도착했다. 바로 지금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 하고 있는 하은이다.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 나의 중요한 임무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자


지난 6년 전 꿈에도 그리던 소방관 시험에 합격하고 스스로 세운 비전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힘으로 이룬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는 나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또 누군가는 함께 울어주었다.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또 누군가는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기도해 주었던 어머니가 있었고, 잘해준 것 하나 없는 나의 예쁜 여동생도 내가 길고 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눈물로 기도했다. 주머니가 다 털려 밥 한 톨 빌어먹지 못할 때 선뜻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준 동네 형도 있었다. 갈 곳 없는 나를 받아 주신 분도 있었고, 말없이 응원해 주신 분도 계셨다. 무엇보다 좋지 않은 선택을 거듭했던 나에게 고난과 시련을 주어 더욱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하였고, 평범한 가정과 평범한 삶을 선물로 허락하신 하나님이 계셨다.


“화재”란 사람의 의도에 반하거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하여 발생하는 연소 현상으로서 소화할 필요가 있는 현상 또는 사람의 의도에 반하여 발생하거나 확대된 화학적 폭발현상을 말한다.
  
※ 「소방의 화재조사에 관한 법률」제2조(정의)


불은 좋은 불과 나쁜 불로 나뉜다. 좋은 불은 우리 삶을 이롭게 해 준다. 맛있는 음식을 먹게도 해주고,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기도 한다. 어두운 곳을 걸어갈 때도 환하게 밝혀준다. 나쁜 불도 있다. 내가 의도한 것과 다른 불은 나의 생명과 재산을 순식간에 앗아간다. 누군가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고의로 불을 지르기도 한다. 이러한 불은 반드시 꺼야 하며, 초기에 잡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화재'라고 부른다. 


인생에도 나쁜 불이 있다면 나는 현재 완진(소방대에 의한 소화활동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 상태다. 화재 초기 적절한 대응을 했더라면, 나는 지금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화기 하나로 달랑 끌 수 있는 그런 불이 애초에 아니었던 것 같다. 화재는 천천히 성장하며 나를 삼켜버렸지만 끝내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든 살려고 했던 의지와 나를 지지해 주었던 분들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평범함 밖에 없다. 그러나 그 '평벙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안다. 그리 평범하지 않았던 나의 과거가 항상 평범함을 갈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계발서에서 다루는 몇십억 몇백억 자산가의 꿈을 꾸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속으로는 비싼 옷을 입고, 명품 시계를 차고, 드림카에 올라타는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화려함이 아니라 바로 '평범함'이라는 것을 어느 날 깨달았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그 따뜻함. 나는 그런 따뜻한 일상으로의 여정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전혀 평범해질 수 없을 것 같은 나조차도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내가 걸어왔던 길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손을 뻗어 주고 싶다. 나도 누군가 내어준 손을 잡고 지금까지 달려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따뜻한 일상을 붙잡기 위한 나의 처절한 몸부림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이고 싶다. 내 삶에 찾아왔던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걸릴 것 같은 화재를 '완진'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은 채용기준이 조금 바뀌기는 했으나, 혹시 소방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면 나의 별 것 없는 이 미흡한 글을 통해 한 가지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공부를 전혀 해 본적이 없는 수험생,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수험생, 지난 날 아픈 과거로 인해 한 걸음도 나아가기 힘든 분 들... 그리고 처한 현실의 어려움으로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런 분들에게 귀히 도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나의 멘토이자 나의 동반자인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나의 귀여운 딸 달콩이, 그리고 방황의 시간동안 나를 끝까지 믿어준 든든한 버팀목 아버지.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맺히는... 나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그 옆에서 함께 기도해 준 나의 사랑하는 여동생, 나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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