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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Sep 13. 2023

어느 날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신체화 장애'가 도대체 뭐길래

제2장. 화재성장기


화재 성장기는 화염이 점점 커지는 단계다. 이 시기 가연물과 산소가 충분하면 성장기는 지속된다. 화재가 초기 단계에서 성장기로 접어들면 소방대가 도착해야만 잡을 수 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인원이 있다면 인명구조 또한 시급하다. 


이 중요한 시기에 나는 불이 더 활활 타오르도록 내 몸에 알코올을 붓고 말았다. 소주, 맥주, 막걸리 할 것 없이 들이 부었다. 그것도 모자라 악랄하게 비율까지 맞춰가며 말아 붓기도 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내 인생은 정말 열심히 불타올랐다. 장장 10년 동안 취해 있었던 것 같다. 


변명도 필요 없이 나는 그렇게 썩어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20대가 시작되었다.


원하지 않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며 나는 더욱더 비뚤어져갔다. 그렇게 바랐던 졸업이 사실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미보다는 이제 더 마음껏 망가져 놀겠다는 다짐인 듯 보였다. 대학교에 가기도 전에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기다렸다는 듯 술을 퍼부었다.


매일을 술독에 빠져, 살며 1학기는 겨우 장학금을 받았지만, 2학기 때는 학사경고를 받았다. 원치 않는 대학을 오게 되었다는 분노와, 끼니를 해결할 돈조차 없는 상태였다는 것은 핑곗거리니 잠시 접어두자. 돈이 없어도 선배들이 사주는 술은 잘도 받아 마셨다.


남들은 학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따로 공부하고 한다지만, 나는 따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1학년이 끝나고 나도 누구나처럼 군에 입대하기 위해 휴학을 했다.




휴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로 병원신세를 졌다. 뇌출혈과 함께 안면, 턱, 가슴 등을 크게 다쳐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가슴이 답답해 침대에서 일어나 집 앞으로 나갔는데, 머리가 핑 돌며, 구토를 하려는 증상이 나타났다. 아무리 숨을 크게 들이마셔도 가슴이 답답했고, 숨은 쉬어지지 않았다.


호흡은 보통 무의식적으로 한다. 들이마시는 호흡량을 100이라고 했을 때 나는 30을 마시고 있는 느낌이었고, 마시는 양이 적으니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말을 하려고 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누우니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고, 크게 숨을 몰아쉬는 행위를 가슴의 실핏줄이 터져 아플 정도로 반복하다 보면 한 번 정도 정상적인 호흡으로 돌아와 약 10초 정도는 정상인의 상태를 경험했고, 수 초가 지나면 다시 숨이 가쁜 상태가 계속 반복되었다.


새벽 4시... 숨을 쉬지 못해서 잠을 자지 못하니,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없었다. 부모님께 말씀드려 검사를 받아보고 싶었으나, 괜히 말씀드렸다가 또 걱정만 끼치고 혼이 날 것 같아 혼자 속앓이만 했다.


잠을 못 자니 정말이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아침 9시... 아침이 아니라 보통 오전이라고 부르는 10시, 11시가 다 되어서야 피곤에 절어 잠이 들었다.


밤마다 술을 마시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고,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면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책을 보려고 하면 숨이 찼고, 걸어 다니면서도 숨이 쉬어지지 않으니 몸을 비틀어가며 억지로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참다못해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의 상황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는 수없이 혼자 신경외과부터 흉부외과 등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검사를 받아보았다. 심전도를 체크하기 위해 몸에 홀터를 달고 24시간 동안 지내보기도 했다.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인을 알 수 없음'이었을 것이다.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남은 건 '신경정신과' 뿐이었다. 병원을 찾았다. 당시에는 신경정신과에 가는 걸 알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많은 부담이 있었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방문했다.


병원에 가니 검사지 같은 것을 주었다. 한참 시간이 걸리는 검사였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모니터 화면을 보시던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을 이어갔다.


"우울증 중증 상태입니다"


우울증??? 우울증??? 내가 우울증???


"쉽게 말하면 과거에 받았던 마음의 상처들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가 이번 교통사고로 인해서 그게 터져버린 것이죠. 가족분들 전체 상담과 필요에 따라서는 약물치료가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숨을 못 쉬는 증상도 그것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 마음 상태는 대충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정신과적 문제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한 편으로는 속이 시원한 것도 있었다. 내가 숨을 잘 쉬지 못하는 것이 우울증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을 같이 모시고 오라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는 못했다. 그리고 우울증 치료의 중요성도 별로 느끼지 못한 채 군 입대를 덜컥해 버렸다.


숨을 잘 못 쉬는 사람이 적응을 잘 할리가 없었다. 칼 각과 제식이 생명인 군인이 바로 서 있지를 못하니 곤욕이 따로 없었다. 오와 열을 맞춘 상태로 서 있거나 줄을 맞춰 서 있으면 숨이 가빠 몇 초를 못 버티고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온몸이 땀이 나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매일 매 시간 매 분마다 느껴야만 했다.


동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부대에 이야기를 했다. 숨을 잘 못 쉬어 몰아서 쉬는데, 제식 중 움직일 수도 있고, 훈련 중 불편해 할 수 있어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조교와 교관님께 세 잘 받아 주셨고, 좋은 성적으로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막 찾아올 때 즈음이었다.


문제는 자대에서 터졌다. 자대배치를 받고 얼마 안 되어서 침상에서 자기 전 매일 숨을 몰아 쉬다가 자니 참다못한 선임이 "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냐?"라며 소리치기도 했다. 눈치채지 못하게 숨을 몰아쉬는 연습을 해야 했다. 결국 나름 발견한 것이 마지막에 헛기침을 하는 것이다. 나의 이러한 노력에도 자다가 1인용 매트리스를 넘어가는 실수를 몇 번 했고, 자고 일어나면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얻어먹었다.


다행히 낮에 일을 할 때는 정상적인 소통과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했는데, 줄을 서 있거나 밤에 잠을 자거나, 가만히 있거나, 긴장하는 상태일 때가 정말 곤욕이었다.


우울증으로 의가사전역을 하는 전우들을 보며, 나는 왜 들어왔나 싶기도 했지만, 간부들과도 잘 지내며, 다행인지는 몰라도 꼴에 전문하사까지 지원해 그래도 만기전역을 했다.




본격적이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본격적인 치료는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 서였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10분도 앉아있지 못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1분 간격으로 계속 숨을 몰아 쉬니 나중에는 가슴팍이 아파 손으로 연신 쳐 대었다.


혹시나 싶어 담배도 끊었다. 하지만 담배와 장애는 큰 연관성이 있지 않았다.


결국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완전히는 아니지만 약간은 개선되었다. 약효 때문에 잠이 오고 멍한 증상이 있었으며, 무의식적으로 하품을 하고 입맛이 없어지는 불편함은 있었지만 호흡이 나아지니 부작용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신체화 장애 증상이 많이 완화된 상태다. 아마 완치까지 가려면 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하며 살고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하는 상황이 오면 가끔 증상이 나타난다. 10년도 더 넘게 달고 사니 이제 친구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고 난 후부터는 증상이 실제 많이 완화되어 지금은 꽤나 정상적인 호흡도 잘하고 있다.


이 신체화 장애는 결국 나의 어린 시절부터 터질 시한폭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빨리 만났을 뿐이다. 언젠가는 만날 녀석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만나 '지금이라도'치료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너무 늦게 만났더라면 나는 아마 지금까지도 평범한 일상을 갖지 못한 채 방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찍 만난 덕분에 조금이라도 일찍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일찍이래 봤자 10년이나 걸렸지만... 10년이라도 어딘가.


또 하나님이 내게 주신 시련 같은 것이라고 생각도 했다. 죽음의 공포마저 들게 했던 극한의 시련을 줌으로써 지난날의 과오를 되돌아보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하기 위한 예방접종 같은 것 말이다.


10년도 더 넘은 나의 이 '신체화 장애' 증상에 새삼 감사를 해본다.


또한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너무 무딘 삶을 살아간다. 눈이 건강하면 잘 보이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 키가 크면 큰 키에 감사할 줄 모른다. 나 역시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살아있는 그 자체에,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신은 내가 삶 자체를 감사하며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신체화 장애'라는 고도로 특화된 선물을 주신 것 같다.




그때의 그 사고로 얼굴에 큰 상처가 생겼다. 결혼 전에 신부를 위해, 또 미래의 있을 아이를 위해 흉터를 치료하려 했지만, 우선 두기로 했다.


흉터를 보며 과거를 떠올린다. 흉터를 보며 놀리거나 웃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지난날의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언젠가는 치료도 받고 흉터도 지워보겠으나 아직까지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몸에 남은 흉터나,
 마음에 남은 상처가
 지워지지 않고
 늘 우리 마음을 괴롭힐 때가 있다.
하지만 주눅 들지 말자.
 그 흉터는... 그 상처는...
두 번 다시 똑같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를 지켜주고 있는 친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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