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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n 18. 2023

담배라도 끊으면 내 인생이 좀 나아질까?

나의 금연일지 ①

제3장. 백드래프트


화재가 계속 성장하다가 밀폐된 공간에서 산소가 부족할 때,


순간적으로 문을 열게 되면 폭발을 하는 현상이 있다.


바로, 백드래프트다.


소방관 살인현상이라고도 불리며 소방관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화재 현상 중의 하나다. 


백드래프트가 발생하기 전의 증상으로는 짙은 연기가 내부로 빨려들어가거나


창문이나 문이 상당히 뜨거운 상태에 이른다.


백드래프트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붕 쪽을 배연하거나 측면에서 진입하는 방법이 아주 중요하다.




빚을 갚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 위해 기꺼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방으로 들어갔다.


창문하나 없던 그 방.


현관문 틈으로 시커먼 연기와 산소가 겨우겨우 비집고 빨려들어오며 폭발하려던 그 순간,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 책은 나의 폭발을 막아주었고, 내가 새로운 선의 폭발을 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었다.




5년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직장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나쁘지 않은 수입에 장기적인 전망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책' 한 권을 읽고 마음이 바로 바뀌어버렸다. 이직에 대한 몇 달간의 고민 끝에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2월 31일 종무식을 마지막으로 회사식구들과는 작별인사를 하고 야밤에 짐을 싸서 집으로 들어왔다.

누구든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특한 새 해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3개월 남짓 남은 첫 시험에 바로 붙어버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각오를 하고 새해 첫날 아침 바로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나는 공부를 해본 적이 거의 없어 공부 방법 같은 게 몸에 배어있지 않았다. 회독을 많이 해라는 강사들의 말에 책을 여러 번 읽어라는 말로 이해했다. 여러 번 읽기가 힘드니 어떻게 읽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중요한 부분만 집중해서 힘을 주고 읽어라는 말에, 진짜 눈에 힘을 주고 읽은 적이 있던 나였다. 학창 시절 영어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8등급인가 그랬다. 등급 따위에 관심도 없었으니,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주변 친구들의 조언을 참고해 일단 자리에 앉아 강의를 몰아들었다. 하루에 8강 10강씩 듣고, 며칠이 지나 다 들으면 책을 보는 식으로 했다. 당연히 효율은 없었다. 무엇이 머리에 남겠는가... 한 달이 지나 2월이 되었고 꼴에 수험생이라고 초조한 감정도 느껴보았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통장 잔고마저 바닥이 났다. 몇 년간 경제적 독립을 하고 있던 탓에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우선 이번 시험 때까지만 버티자! 딱 두 달만 더!


남아있는 돈을 최대한 아껴 써야 했다. 아침엔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을 간단하게 먹고 아버지 출근 시간에 맞추어 공부를 하러 갔다. 한 달에 15만 원씩 하는 독서실비를 내지 않아도 되니 시립도서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내 책상이 있었고 정수기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힘들면 잠시 쉴 수 있는 벤치와 마음과 눈을 잠시 풀어줄 자연도 있었다.


점심이 되면 집에서 싸 온 식빵 한 조각을 흰 우유에 적셔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누가 볼 세라 빠르게 삼켰다. 그래도 우유에 적시니 빠른 속도로 잘 넘어가는 편이었다. 우유는 시중에서 가장 싼 흰 우유를 사서 먹었고, 우유가 없는 날에는 물이 우유를 대신해 주었다.


요즘 세상에 이 무슨 우울한 이야기인가 싶겠냐만은 그냥 그랬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싫기도 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몇 년간 일을 했지만 돈 한 푼 제대로 모으지 못하고 철없이 시절을 보낸 것도 부끄럽고 죄송한데, 공부한답시고 고향에 내려와서     


"아빠 카드 좀..." 이러면서 '아카충'이 되긴 싫었다. (이것도 이제 옛날 말인가...)


부모님의 형편이 썩 좋지 못한 데다가 어머니께서 최근 희귀병 진단을 받아 매달 약을 계속 타야 하는 상황에 나쁜 아들이 되기는 싫었다.


'돈을 아낄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했다. 공부도 해야 하는데, 돈도 아껴야 하고 머리가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음에 흡연장에 나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두 모금 빨아 당기면 생각이 나겠지. 한 참을 연달아 줄담배를 피우다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담배를 끊어야 되나...'


'안 돼!! 담배는 절대 안 돼!!!'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에 두 사람이 싸우는 것 같았다. 말려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100분 토론도 부럽지 않은 열띤 토론 끝에 최후의 승자가 가려졌다.


'담배를 끊자'


금연을 주장했던 또 다른 내 자아가 한 마디 더 했다.


'너는 지금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 의미는 있겠지. 하지만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건 처절한 패배감과 담배 몇 개비뿐이야. 아니면 라이터 정도? 너는 인생에서 무엇을 걸어본 적 있니? 처절하게, 절실하게 살아본 적 있니? 만약 아직 없다면 네가 가장 놓지 못하는 걸 한 번 내어 놓고 싸워보는 게 어떻겠니? 그것 하나 못 내어 놓는데 네가 다른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까? 물론 담배를 피우는 모든 사람들이 다 성공을 하지 못했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넌 지금 네가 내어놓을 게 없잖아. 금연이라도 해봐. 그걸 성공하면 지금 네가 목표한 것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꽤 긴 내 자아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난 마지막 담배 한 개비와 인사를 하고 라이터와 함께 쓰레기통에 보내주었다.


결정은 순간이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것들을 저의 방식대로 써봅니다. 때론 웃기도, 때론 울기도 했던 지난 시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수험생, 직장인, 아빠, 엄마 그 누구라도 잠시나마 위로가 되시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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