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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n 18. 2023

금연 : 내 인생 가장 잘한 일

나의 금연일지 ②

담배를 끊기로 결심한 그날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자연스럽게 흡연장으로 몸이 돌아갔다.


손이 뻘쭘했다.


그냥 폴더폰만 만지작 거렸다. 얼마 전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모든 휴대폰을 다 끊고 집에 돌아다니던 폴더폰으로 교체했다.


그냥 벤치에 앉아서 멍 때리기만 했다.


시간이 가지 않았다.


미칠 것 같았다.


금연을 시작하자마자 밀려오는 이 허무함이 스트레스로 변질되어 다시 담배를 필 것만 같았다. 당장 책을 싸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들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내 체중을 잘 버텨준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공부라는 압박감에서 조금은 해방된 기분도 느꼈고, 몸이 편안하니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저녁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냉장고에 있는 아무거나 꺼내 먹고는 다시 누웠다. 아버지께서 오늘은 쉬냐고 물어보시길래 "네 오늘 좀 쉬려고요"라고 건조하게 답하고 다시 방문을 닫았다.


새벽에 잠시 깨었다가 다시 날이 밝았다. 금연 1일 차 성공이다. 그리고 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착각한 것이다.


아차 싶어 다시 방으로 들어가 다시 누웠다. 턱끝이 간지럽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말초신경이 모여있다는데 뻑뻑한 느낌이 들며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금단증상인가


한 모금만... 딱 한 모금만 피고 싶었다. 그러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담배를 살 돈이 아예 없었다. 마음을 접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사흘을 방에서 버티고 나니 가려움도 많이 가라앉았다.


오랜만에 도서관으로 향했다. 뭔가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소화장애 같은 것도 좀 없어진 듯했다. 도서관은 아주 가파른 오르막길이라 예전에는 숨이 좀 찼었는데, 이번에는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대략, 성공인 것 같았다.


내가 내 의지로 이뤄본 것 중 아마 처음 성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것 중에 말이다.


인생을 살아오며 무언가 크게 걸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룬 것도 없었다. 그저 돈이나 쫒고 멋이나 찾아다니는 형편없는 20대를 보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내 20대를 무작위로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이제 하나쯤 걸어보고 싶었다.


시험을 합격하면 어떤 기분일지는 모르겠지만 평생 먹고 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기횐데, 무슨 액션이라도 취해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의 미신 바람도 있었다. 내가 담배를 끊으면 시험도 단번에 합격할 의지 같은 게 생기지 않을까 해서다.


인생 걸린 시험 준비하는데 금연 한번 해보면 어때? 그런 마음이었다.




나중에 시험 합격 후 동생들이 이런 질문을 많이 했었다.


"형, 시험 합격하려면 어떻게 하면 돼?"     


그러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 네가 지금 하고 싶은 걸 안 하던지 참으면 돼."   


수험생활을 방해하는 요소는 너무나도 많다. , 게임, 이성, 담배, 취미, 모임, 직장, 우울감 등등

아무것도 안 끊거나 어느 한 가지만 끊어도 합격할 자신이 있으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모두 끊어버려야 합격할까 말까 할 거다. 난 위에 저걸 다 하면서 합격할 자신이 없었다.

    

많은 인원을 채용할 당시에는 5개월 바짝 하고 들어왔다느니, 한 번에 합격했다느니 하는 영웅담 같은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부러웠다. 쪽팔리기도 하고. 내 인생만 벌을 받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학보면 수능 8등급인 내가 힘겹게 합격을 한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경험말이다. 나는 인고의 시간을 겪는 동안 사람이 되어갔고, 어느새 정신을 차렸다. 고배를 몇 번 마시며 겸손을 배웠고, 나를 더 깊이 있게 관찰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실패와 고통이 담겨 있는 내 과거를 사랑한다. 무엇하나 의미 없는 역사는 없기 때문이다.

실패와 고통 속에서 또 다른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다. 그때는 조금 아프지만 말이다.     


담배를 끊는다고 인생이 좀 달라지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난 당당히 말한다.     


금연은 내 일생일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것들을 저의 방식대로 써봅니다. 때론 웃기도, 때론 울기도 했던 지난 시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수험생, 직장인, 아빠, 엄마 그 누구라도 잠시나마 위로가 되시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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