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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l 07. 2023

대리기사, 첫날 한 콜 뛰고 퇴근하다.

나의 간절함 메이커, 대리운전

"아~ 여~기 앞이요. 네네. 여기 여기. 주차 좀 부탁해요"


"네! 사장님 알겠습니다."


'탁'


"얼마죠?"


"네! 8,000원입니다."


"여기 만 원이요. 아, 거스름돈은 됐어요"


"감사합니다!!!"


땅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힘차게 인사하고 다시 파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니 콜이 제법 많이 떠 있었다. '보자~ 어떤 걸 선택하나... 오케이~ 이거'


"감사합니다. 00 대리운전입니다. XXAA으로 모시러 가면 되겠습니까~ 아 네, 5분이면 도착하겠습니다~"




첫 시험에 답안지를 바꾸는 실수를 하며 시원하게 떨어졌다. 내년 수험기간까지 버티려면 어느 정도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인력사무소를 기웃거렸다. 어차피 직장을 구할 것도 아니라서 현금이 바로바로 나오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생각만큼 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며칠을 인력사무소를 기웃거렸지만 일을 구하지 못해 사무실 옆 상가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어잇! 오랜만이네!"


그러고 보니 내가 앉아 있던 상가 건물 1층은 예전부터 나와 같은 업종에서 일을 하시던 사장님의 가게 앞이었다.


"아~ 사장님 진짜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그럼 잘 지냈지. 들어와 커피 한 잔 하게"


"네 사장님"


인상 좋은 사장님은 나를 가게 안으로 데리고 가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내어 주셨다. 요즘 무슨 일을 하냐는 물음에, 공무원 시험 쳐보려고 고향에 내려왔는데 이번에 시원하게 떨어지고 일을 구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사장님이 숨도 안 쉬고 "내일 바로 출근할래?"라며 직구를 날리셨다. 아무리 직원 구하기가 어렵다지만 사장님께 누가 될 것 같아 거절을 해봤는데, 사장님께서 내가 원하는 조건에 다 맞춰 주시겠다며 동아줄을 내려 주셨다.


원래 10시부터 8시까지 일을 하는데, 수험생이니 특별히 11시부터 8시까지로 배려해 주셨다.


아침 출근이 늦는 덕분에 저녁 일을 추가로 알아보았고 대리운전도 같이 시작하게 되었다.


바짝 벌어 빨리 그만두고 공부를 해야 한다.




하루 일과는 이러했다.


08:30 기상

10:30 ~ 20:00 가게

20:10 ~ 02:30(04:00) 대리운전


운전이라면 자신 있었는데 대리운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익숙해질 때까지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다.


첫날은 한 콜만 타고 집에 간 적이 있다. 그것도 버스를 타고 말이다. 다들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술에 취한 상태의 손님을 1:1로 직접 상대해서 어딘지도 모를 목적지까지 직접 모시고 간다는 게 어떨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콜은 계속 뜨고, 가까이 있으면 자동으로 콜을 받아라고 휴대폰이 계속 울리는데 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참을 콜을 날리고 있다가 겨우 한 콜을 어떻게 어떻게 받았다.


외곽 도심이었다.


최대한 친절 모드로 "고객님 안전하게 모셔 드리겠습니다."라며 인사를 한 후 출발 했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귀에 꽂혀 있는 블루투스에서 쉴 새 없이 무전이 오갔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외곽으로 빠질 때는 합류차가 따라올 수 없으니 진입 전 무전을 보내라고 했는데, 어디서 어떤 타이밍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첫 손님을 보내드리고 큰 길가로 무작정 나갔는데 나와 같은 기사님이 몇 분 보였다.


기사 한 분이 "어디 콜이십니까?"라고 묻자 나는 "아, 00 대리운전입니다"라고 답했다. 몇 마디 나누자 승합차 한 대가 도착했고 그 기사님은 고생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른 기사님 한 분이 내가 있는 쪽으로 오더니 "몇 호 기사입니까?"라고 물었고, 나는 "아 저 000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뒤 이어 도착한 합류차에 기사 한 분 더 탄다고 하니까 합류차에서 "아~! 자리 없습니다~! 왜 말을 안 하지?"라며 퉁퉁거리면서 빠르게 사라졌다.


..


..


..


30분이 흘렀다.


..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콜을 타는 게 무서워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고 집으로 향했다.


나의 시시한 대리운전 첫날은 이렇게 끝이 났다.


나이 서른 넘어서 무전하나 못 듣고, 차 한 대 못 잡아타는 나를 보며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일을 할 때는 술도 마시고 하니 대리운전을 자주 불렀었다. 운전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무엇이 이렇게 어렵단 말인가...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법.


합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몸이 편하고 누릴 것 다 누리면 간절함도 없었을 텐데... 몸이 불편하고 서러워보니 간절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역시 사람은 시련을 겪어야만 성장하는 것 같다. 시험에 합격하고 난 후 느낀 사실인데, 내가 만약 대리운전을 안 했으면 아직까지 수험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수능 8등급인지 뭔지를 받으며 공부재능이라고는 없는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 수험생활이 그리 평탄치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웬만하면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하는 것이 낫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일을 하게 되어 합격에 대한 간절함이 더 깊어진 것 같았다.



대리운전! 잘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것들을 저의 방식대로 써봅니다. 때론 웃기도, 때론 울기도 했던 지난 시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수험생, 직장인, 아빠, 엄마 그 누구라도 잠시나마 위로가 되시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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