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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l 09. 2023

대리기사님은 낮에 무슨 일 하세요?

아! 네, 전 공시생입니다만...

"감사합니다 고객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다음에 꼭 시험에 합격하길 바랄게요"


"... 감사합니다...!!!(울컥)"



가게 일을 마치고 바로 휴대폰을 열었는데 첫 콜이 떴다. '오~ 첫 콜이 라니'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객님께 전화를 드렸다.


계신 곳이 생각보다 멀었나 버스를 탈 수도 없는 법.

큰 걸음으로 나의 마수걸이 고객을 모시러 갔다.


40대 후반 즈음 되어 보이는 여성 고객님이 밖에 서 계셨다.


"00 대리운전입니다. 00 아파트 가시는 고객님 맞으시죠. 아~ 네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대략 이런 인사를 주고받고는 고객님의 목적지로 향했다.


가는 동안 멀끔하게 차려입은 나를 계속 보시더니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말투로


"저기... 기사님은 낮에 하시는 다른 일이 있으시죠?"


"아... 네, 아는 사장님 가게 잠시 봐주고 있어요."


"아~ 그럼 따로 직업은 없으시고요?"


"네, 지금은요. 사실은 소방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공부하러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첫 시험에서 시원하게 떨어지고, 집에 손 벌리기도 뭐해서 투잡 뛰고 있고요."


사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 돈 도 없는데, 부모님께 도움이 되고자 일을 시작했다는, 돈은 있다는... 소설을 쓰며 효자 코스프레를 조금 했다.


"내가 대리운전 많이 불러봤는데, 기사님처럼 젊은 사람은 처음 봐서요"


"아.. 그렇습니까?"


"사람도 착해 보이고(실제로 그렇게 보인다)

이렇게 열심히 사시는 것 보면 꼭 합격하실 거예요 호호"


"말씀 감사합니다 고객님"




대리운전을 하며 만취고객님만 아니면 꼭 물어보시는 게 있다.


바로, 낮에 무슨 일 하시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리운전을 업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은가.

나도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업으로 대리운전을 누가 하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틀렸습니다(유튜브 멘트 따라 해봤다)'


실제로 일을 하다 보니 대리운전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꽤 되었다.

물론 전업 기사는 드물었고, 합류차 기사나 지입 사장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쨌거나 낮에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무슨 무슨 일을 한다'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직업이 없으니 대답하기가 애매해서

망설이기 일쑤였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니 내가 답답해서 그냥 시원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 공부 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말을 내뱉기 시작한 순간 고객님들께서

거스름돈을 안 받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동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한 청년의 처절한 몸부림에 대한  아낌없는 후원이라 생각했다.


거스름돈을 대부분 받지 않거나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더 챙겨 주시니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며 새벽잠을 조이라도 더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따뜻한 말씀도 함께 해주셨다.


붕어빵 수레에 재료를 대시는 총판(?) 사장님은

"내 주변에도 자식들 공무원 준비한다고 서울에 많이 보내던데, 자넨 참 대단하구먼"


우연히 두 번이나 만나게 된 남자 손님 한 분은

"시험 준비 잘하고 있죠? 진짜 내가 응원합니다! 악수 한 번 해요!" 하며 차 트렁크에 있는 비싼 즙을 몇 봉지 주셨다.


전기를 업으로 하시는 사장님께서는

"보니까 일도 잘하고 착실할 것 같은데 혹시나 내 명함 줄 테니까 시험 떨어져서 일할 곳 없으면 나한테 전기 한 번 배워봐요"


50대 중년의 푸근한 인상을 가진 어머님은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걸 보면 시험도 꼭 합격해서

좋은 소방관이 될 거예요."




수년이 지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절대 잊지 못하는 따뜻한 말씀들은, 지금도 절대 꺼지지 않는 내 삶의 불씨가 되어주고 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낮에 상품판매를 주업으로 했었는데,  그때는 약간의 가면을 쓰고 상대를 설득해 나가야 했다. 그러면 고객님은 의심의 가면을 쓴 채 나를 떠보며 가격을 흥정했다.


하지만 대리운전은 달랐다.

나만 마음을 열면, 고객님들은 쉽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약간의 취기가 마음을 무장해제 시키기 때문이다.


나도 마음이 열린 손님들의 고민과 걱정을 진심으로 들어주었다.

그러니 마음과 마음이 통하였고, 헤어질 때즈음은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아 헤어지기 싫은 친구 같은 사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공무원 준비를 하며 가장 문제가 되는 '자존감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준 것이 바로 '대리운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로 지금도 아내에게 가끔 자랑하듯 이야기하고 있다.


"여보, 나 그때 대리운전 안 했으면 시험에 합격 못 했을지도 몰라"


물론, 대리를 하며 외제차를 타는 친구들을 모신(?)적도 있다. 순간적 자존감 하락은 있었으나, 장기적 자존감 회복이었다. 이를 악물게하는 효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그때 그 손님들이 한 번씩 생각난다.

아들같이 이뻐해 주시면서 손 꼭 잡아주시던 고객님.

가다가 야식이라도 사 먹으라며 만 원짜리 한 장 더 주시던 고객님.


소방관이 된 지금 현장에 출동하면,

혹시 내가 모셨을 고객님을 만날 때도 있을까?


몇 년이 지나 주황색 소방관 옷을 입은 나를 알아볼 리 없겠지만...

이제 어디 가서 어떻게 만나볼 수도 없는 그런 분들이지만...


혹시 나의 감사한 마음이 한 분이라도 전달될까 싶어

애꿎은 브런치에다 대고 한 번 외쳐 본다.


"고객님! 저, 진짜 소방관 됐습니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제 제가 베풀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것들을 저의 방식대로 써봅니다. 때론 웃기도, 때론 울기도 했던 지난 시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수험생, 직장인, 아빠, 엄마 그 누구라도 잠시나마 위로가 되시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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