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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l 13. 2023

엄마는 왜 자판기 커피만 마실까?

땀의 가치를 깨닫다

와이셔츠에 재킷까지 걸치고 대리기사 합류지점까지 열심히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일을 하던 당시는 회사에 소속된 지역별 합류차가 지정된 합류지점까지 와서 기사들을 싣고 다니다가 콜을 잡으면 내려주는 시스템이었다.


요즘은 꼬리차라고 해서 기사 한 명당 꼬리차 한 대가 따라붙어 영업을 많이 한다.


고객의 집이 제법 안으로 들어가는 곳이면 합류지점까지 발바닥에 불나도록 걸어 내려가야 했다.


하루에 몇 킬로씩 걸어 다니면 발바닥과 허리가 비명을 질러댔고, 식도와 위는 목마름에 타들어갔다.


그러나 일 초반에는 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물통을 가지고 다니려면 가방 하나쯤 있어야 하는데, 기사님들의 상징(?)인 크로스백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냥...


'쪽 팔렸기 때문이다'


깔끔한 세미슈트를 입고 가방하나 확! 메면 그야말로



대. 리. 기. 사.



일에는 귀천이 없고, 굳이 부끄러울 일도 아닌데, 처음 이 일에 뛰어들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그냥 부끄럽다였다. 그냥 그랬다...


(주업으로, 부업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기사님들을 욕보이려 하는 말을 아니다.

글의 서두에도 밝혔지만 난 지금 대리기사님들을 너무도 존경한다.)


좁디좁은 동네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고 아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마주친다면 굳이 고개를 돌리지는 않겠으나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며칠을 내가 처한 현실을 부정해 오다 더위가 너무너무 심해져 견딜 수가 없어서 집에 있던 작은 가방 하나와 동행하기로 했다.




유난히 더웠던 그 해 여름 어느 날, 물을 너무 빨리 들이켠 탓에 준비해 간 물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운전을 할 때는 고객님들과 대화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라 목이 빨리 건조해져 물이 금방 바닥 나 버린 것.


합류지점으로 가던 도중 C~익 웃고 있는 편의점 하나가 보였다.


'땡그랑'


"어서 오세요" 점원이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 냉장고 앞에 서서 콜라부터 딸기우유, 빨대커피까지 스캔을 시작했다.

한참을 둘러보다 시원해 보이는 이온음료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손이 가질 않았다.

이상했다.


작년에 일을 할 때는 얼마 안 되어 보이던 그 음료수들이 너무 비싸 보이는 것이 아닌가...


망설였다.


1,000원이 넘는 음료수 가격표를 바라보며 계속 고민했다.


담배 사러 가서 커피하나 사고 과자까지 집어 들던 내 모습 어디 갔나... 편의점 한번 가면 1만 원짜리 하나는 그냥 탕진하곤 했는데...


이 기분을 다시 표현하자면, 망설인 이유가 단순히 돈이 아까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음료가 '비싸 보였다'



어리둥절하며 빈 손으로 나온 나는 새벽 4시가 되어 퇴근을 하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5시...

택시기사인 엄마와 거의 동시에 집으로 들어왔다.


"아들 고생했어~"


"응 북극~" (북극곰은 내가 지어준 엄마별명)


둘은 저녁인지 아침인지 모를 애매한 시간에 간식을 준비해 들었다.


엄마는 오늘 손님들께 받은 돈들을 빨간 가방에서 꺼내 세어보고 있었고,

많이 고될 텐데도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아이처럼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말없이 엄마를 보았다.



이어서 나도 오늘 벌어들인 지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매 콜마다 손님이 가면 가계부를 사용하고 집에 오면 돈을 꼭 정리해서 오늘 번 만큼은 다음날 통장에 입금하곤 했다.


엄마와 난 그렇게 비슷한 모습으로 마주 앉아 돈을 계속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천 원짜리 많네'


....



'응???'


'아!!!!!!! 이제 알겠다.'


"엄마!"


"응?? 왜 아들?"


"나 알 것 같아!"


"뭘??"


"오늘 목이 너무 말라서 음료수를 사 먹으로 편의점에 갔거든?"


"그래서?"


"그런데, 이상하게 음료수를 못 사겠더라고. 가방에 돈도 있고 그냥 사 먹으면 되는데, 비싸서 못 사 먹겠다는 그런 느낌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냥 못 사겠더라고."


"에잉?"


"그래서 처음 그런 느낌이 들킬래 신기하기도 하면서... 그냥 나왔지. 그런데, 왜 그랬는지 알겠어"


목이 말랐는데 음료수를 못 사 먹었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 무슨 이렇게 분석을 하고 있는지 글을 쓰는 지금도 웃기긴 하지만, 그때 그 깨달음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예전에 가게에서 일을 할 때는 만 원짜리 우습게 벌었잖아. 천 원짜리는 그냥 인형 뽑기에 쓰거나, 거스름돈 안 받고 지갑에 두지를 않았거든, 만 원짜리 아니면 오만 원짜리만 지갑에 가득했지. 지갑 배 부르니까.

그러고 보니 그때 나 진짜 철도 없었네... 으이그..."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엄마가 돈 세는 거 보다가 알게 됐어. 엄마가 자판기 커피만 그렇게 마셨던 이유를...

천 원짜리를 계속 보다 보니까 천 원 귀한 줄 알게 된 거야. 만 원짜리를 매일 볼 때는 만 원 귀한 줄 몰랐거든. 참 신기해. 그냥 며칠 동안 천 원짜리 50장씩 가방에 시제로 넣어 다녔을 뿐인데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바뀌지."


엄마는 "아들~~ 대견하시고~~"라고 말하며 서른이 훌쩍 넘은 덩치만 큰 철없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식당에 가면 꼭 자판기 커피 한 잔씩 하고, 주유소에 자판기가 있으면 3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먼저 배달음식 한 번 먹자고 안 하시는, 몸이 아파 도저히 요리가 안 될 때는 아직도 4,000원짜리 자장면을 찾으시는, 엄마를 보며


"엄마는 왜 자판기 커피만 마실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정답은 가까이에 있었다.

돈을 아끼려고 그런 것은 2차적인 문제이고, 우선적으로는 피땀 흘려가며 번 돈의 가치를 높게 보고 소중히 여기는 엄마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은 돈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내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큰 것도 소중히 여길 수 있고

타인의 것도 소중히 여길수 있다.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는데

신나게 떠들고 있던 내게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어이구~ 그냥 목마르면 음료수 하나 사 먹어 아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것들을 저의 방식대로 써봅니다. 때론 웃기도, 때론 울기도 했던 지난 시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수험생, 직장인, 아빠, 엄마 그 누구라도 잠시나마 위로가 되시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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