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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l 14. 2023

고객님, 대리비는 주고 가셔야죠...

전설의 대리 고객  worst 5.

고객님들의 따뜻한 배려 속에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니 조금 부족한 청년인 키랭이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직장을 뛰쳐나와 기꺼이 공시생이 되겠노라 귀향하여 주경야독하던 그때 그 시절. 좋은 고객님만 만날 것이라는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는 일들이 꿈틀꿈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를 위기의 순간으로 몰아넣었던 고객 유형을 정리해 보았다. 행여나 이 글로 말미암아 대부분의 많은 대리운전 고객님들이 오해하시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아주아주 극소수의 유형이니 말이다. 그리고 틈나면 언급하고 있지만 한 때는 동료였던 대리운전 기사님들을 모두 존경하고 사랑한다.)


1. 함흥차사형 - "한잔만 딱 더하고 나갈게"

 힘겹게 고객을 모시러 와서 땀을 훔치며 전화를 했더니, 금방 나오시겠다던 고객님께서는 2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으신다. 다시 전화를 걸어 "고객님, 혹시 언제쯤 나오실까요?"라고 물으면 "아 저기 죄송한데, 저희 그냥 콜 취소하고 나중에 탈게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2. 연비절약형 - "천천히 좀 갑시다"

 연비가 3킬로도 채 나오지 않는 외제차를 운전한 적이 있다. 평소 안전 속도에 맞춰서 운전하는 편이라 잘 밟지도 않는데, 제한속도 이하를 달리고 있던 내게 차량 속도 보다 더 빠른 고객님의 날 선 목소리가 들어왔다. "기사님, 엑셀 좀 많이 밟지 말고 좀 천천히 갑시다. 이 차가 연비가 얼만지 아십니까?"


... 몰랐다... 그냥 잘 안 나오겠거니...


그럼 어떡하겠는가. "네, 고객님 죄송합니다. 천천히!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하고 숙여야지.

고객님의 댁까지 평소보도 2배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3. 바꿔치기형 - "차에 타고 있는 분은 제가 아닙니다"

 고객군이 거의 없는 외곽지에 고객님을 내려드리고 다음콜을 힘겹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운 좋게 고객 한분이 컨텍되었는데, 차 앞에 나와 있겠단다. 그런데 차량 번호와 종류 등을 술술 이야기해 주시길래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차량에 도착하니 고객님께서는 앞 좌석에서 다리를 대시보드에 올린 채 취침에 들어가셨다. 분명 방금 통화할 때는 정상이었는데...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하니


"차에 타고 있는 건 제가 아니고, 제 친군데 좀 데려가 주세요"

"네... 목적지는요?"

"잘 몰라요 물어보세요"

"네?"


램수면을 지나 깊은 수면에 빠져든 고객님을 겨우 깨워 취조했고, 목적지를 진술했다. 도착 후 대리비를 받고 빨리 도망갈 생각만 했던 나의 계산이 심각하게 틀렸음을 깨달았다. 잠을 깨지 못하는 고객님을 깨우느라 벌써 10분 넘게 시간이 흘렀고 전화기까지 방전... 집에 올라가서 돈을 가져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다시는 그분을 보지 못했다. 목적지도 하필 외곽지.


4. 언언불일치형 - "아니 왜 여기를 왔어요? 돌아가세요!"

 해가지기도 전인 늦은 오후에 아버지께서 첫 콜 목적지까지 태워주셨었다. 방향이 같아 얻어 타고 온 나는 좋은 콜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잔뜩 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말을 도대체 누가 남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왜 그 말이 항상 맞는 건지... 명언이 원망스러울 지경인 사건이 있었다.


고객님께서는 목적지로 아주 먼 곳을 지목했고, 그곳으로 향했다 아직 시간은 오후 6시 전이라 취기도 그다지 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몇 마디 말씀도 하셨다. 별로 취해 보이지도 않았다. 느낌이 좋았다. 30여분 넘게 한 참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고객님은


"아니, 아니! 여기 어디예요? 여기 왜 왔어요?"

"00 아파트라고 하셨잖아요"

"아니 내가 언제 그랬어요 차 돌려서 00 식당으로 가주세요"

"네? 정말요?" "아니 그러니까 00 식당으로 가라고"

"네..."


도착한 곳에서 또 호통을 쳤고, 여기 왜 왔냐고 하며 다른 목적지를 읊었다.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정말 시험이면 참을 수 있는데... 이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고객은 술이 정말 많이 취하지 않은 건지 대리비를 바로 꺼내 주시려고 했다. 얼마냐는 질문에 이동비용과 소요비용을 대략 계산하여 말씀드렸고, 뭐가 그렇게 비싸냐는 호통이 추가되었다. 나는 당당하게 웃으며 000원이 맞습니다 고객님이라고 하자 돈을 던지며 주셨고 난 감사합니다 고객님을 외치며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날 왜 그러셨는지 아직 이유는 모른다...


5. 전설의 형  (님) -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시면 됩니다.(저기 산입니다)"

 목적지를 일부러 도로가로 잡은 후 산 중턱까지 올라가 달라는 미션을 내리는 고객유형이다. 산 꼭대기까지 차를 끌고 올라가서 무조건 걸어 내려오거나, 합류차가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도저히 돌릴 공간도 안 나오는 곳이 있었다. 그러니 기사들이 목적지를 들으면 이미 알고 기피를 했었더랬다.

고객은 현금을 두고 왔다며 집으로 들어갔고 밖에 내려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잠이 들었는지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그 순간 큰 개 두 마리가 나를 현행범으로 판단해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애써 눈을 피하려 노력했지만 으르렁 거리던 두 마리의 짐승은 포위망을 좁혀왔다.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던 그 순간! 뒤에서 노란 불빛을 반짝이며 100마력의 합류차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간발의 차이로 차에 올라탔고 사나운 짐승들은 닫힌 문 앞에서 멈춰 서 짓고 있었다. 합류차 기사님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대리비는 받을 수 없었다... 받으러 가려고 차에서 내렸다가는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오판을 하지 않은 것이다.


(정말 이해가 가는 고객님들도 꽤 있다. 하지만 기사님들이 돌려 나올 수 없는 길은 미리 안내를 해줄 필요가 있다... 택시기사님들도 많은 애를 먹는다고 한다.)




다른 많은 유형들이 있지만 위 몇 사례들 외에는 일을 하는데 크게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술을 한 잔씩 드신 고객님들을 모시다 보면 으레 있는 단순한 이벤트들은 대부분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위와 같은 유형의 고객을 만났을 때 화가 났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때마다 나는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엄마에게 많이 물어보았다. 엄마는 이런 고객 만난 적 있느냐고.

셀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속으로 고객들을 위해 축복을 해주신다고 한다.


기꺼이 내게 운전대를 맡겨주신 고객들의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끝까지 친절을 베풀었더니, 오히려 팁을 받는 일이 더더욱 늘어났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참는 법도 배우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도 통제하는 법도 배웠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시작했을 뿐이지만 대리운전은 내게 인생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일이든 진심을 다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반드시 성장한다는 믿음이 있다.


수험생활 중 대리운전은 부족한 공부시간을 보상하기 위해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이를 악물게 하는 파이팅을 선물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길 위에도 철학은 있는 법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것들을 저의 방식대로 써봅니다. 때론 웃기도, 때론 울기도 했던 지난 시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수험생, 직장인, 아빠, 엄마 그 누구라도 잠시나마 위로가 되시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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