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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Jul 07. 2023

첫 시험에 당당히(?) 떨어지다

준비는 철저히,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최선을 다하라.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은 지 1시간쯤 된 것 같다. (실제로는 1분도 안 되었다.)


"답안지 제출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아... 네..."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딱 5분만 멈춰주거나, 내가 영화 플래시의 주인공이 된다면 후다닥 답안지를 작성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감독관에게 건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은 절대 느려지지 않았다. 심장은 더 빠르게 뛰는데, 얼굴과 손끝마디는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시험 종료 15분 전)


3개월 동안 피나게 준비했던 시험. 영어부터 국사 국어 순으로 풀어나갔고 OMR카드에 답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었다. 영어, 국사를 끝내고 국어 XX번 문제를 마킹하던 중 뭔가 잘 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시계를 쳐다봤다. 15분 정도 남은 것 같았다. '바꿀까 말까', '15분이면 가능할 것 같은데?' 손을 번쩍 들었다.


"(속삭이며) 시간 얼마 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나도 작은 목소리로) 네..."


한 문제라도 아쉬웠기에 다시 필사적으로 마킹을 해 나갔다.  15분이다. 할 수 있다.



'띵 동 댕 동 ~ 띵 동 댕 동'


????????


마킹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반도 못 적었는데 갑자기 종이 울렸다.


"수험생들은 손을 책상밑으로 내리시고 잠시 대기 바랍니다."


절망적이었다. 분명 15분이었는데... 야속한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8분은 더 남아 있는 듯했다.


'아~! 시계가 잘 못 되었구나...'


얼굴이 붉어지며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 짧은 순간 가족들 얼굴도 지나갔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제대로 해 본 기억이 없어 무조건 찍어서 제출했던 나로서는 이런 일도 처음 겪는 것이었다. 당황했다.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말도 할 수 없었지만) 3개월 동안의 고생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우유에 빵을 적셔 먹고, 담배도 끊고, 휴대폰도 폴더폰으로 바꾸고, 친구 결혼식도 못 가서 친구명단에서 잘리고... 여러 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감독관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내 앞으로 왔고, 나는 힘없이 내 답안지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일을 준비할 때 건성으로 준비하는 습관이 있었다. 말이 좋아 습관이지 게으르고 철저하지 못한 성격이 오늘 잘 발휘되어 시험을 망쳐버렸다.


누가 인생 걸린 시험을 앞두고 손목시계 하나 안 챙겨간다는 말인가. 물론 시계를 살 돈조차도 없었지만 돈 만 원짜리 시계면 부모님께 사달라고 했었어도 됐다.


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내게 늘 보여주셨던 모습이 생각났다. 내일 장거리 운행이 예정되어 있으면 입을 옷과 짐들을 현관문이나 머리맡에 두고 주무셨다. 약주를 한 잔 하고 들어오셔도 웬만해서는 준비를 하고 주무시고, 너무 피곤하시면 아침에 3시간이나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하셨다. 그리고 나가기 한 참전에 한번 더 확인을 하곤 하셨다.


나도 다음날 시험을 치러 가노라면 밤에 항상 "내일 입고 갈 옷 다 챙겼나?"라고 말씀하셨는데 난 그때마다 "네, 다 챙겼어요"는 무슨 그냥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잠에 들었었다. 늘 닥치면 하는 편이고, 벼락치기는 일상이었다. 내가 삶을 대하는 이런 태도가 오늘의 이 사태를 만들었으리라.


액셀을 밟고 있는 발은 힘이 없었다. 아무리 밟아도 차는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니 아예 멈췄으면 싶었다. 무슨 낯짝으로 집에 가나 싶었다.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아버지의 전화가 왔다.


"잘 봤나?"


"네... 답안지를 바꿔서 그냥 떨어졌어요..."


"아이고 하하하 고생했다. 첫 시험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다음에 또 준비 잘하면 되지. 조심히 내려오너라"


"네..."


분명 아쉬워하셨을 텐데 내겐 내색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웃으며 첫 시험이니 괜찮다고 토닥거려 주시는 아빠의 목소리에 다시 힘을 얻었다.


순탄한 인생도 때론 부럽지만 꼬불꼬불한 인생도 참 스릴 넘친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번 액셀 페달을 힘껏 밟았다.


내년에는 제대로 해보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것들을 저의 방식대로 써봅니다. 때론 웃기도, 때론 울기도 했던 지난 시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분명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새롭게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수험생, 직장인, 아빠, 엄마 그 누구라도 잠시나마 위로가 되시기를 바라며 계속해서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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