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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랭이 Sep 09. 2023

원장님, 학원비 좀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온다

제1장. 화재초기(발화기)


발화기는 화재의 4요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연소가 시작될 때의 시기를 말한다. 발화의 물리적 현상은 스파크나 불꽃에 의해 유도되거나 자연발화처럼 어떤 물질이 자체의 열에 의해 발화점에 도달하여 비유도 된다. 발화시점에서 화재는 규모가 작고 일반적으로 처음 발화된 가연물에 한정된다. 개방된 지역이거나 구획실이거나 간에 모든 화재는발화의 한 형태로서 발생한다.

※ 중앙소방학교 「소방전술 - 화재편」발췌    


불이 막 붙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화기만 있다면 대부분 진화가 가능하다. 양동이에 받은 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화재 초기에 적절한 대처를 한다면 화재를 완진할 수 있고, 피해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화재초기 진화는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적어도 내 인생이 붙어버린 불을 쉬이 끄지 못했다. 누구의 탓도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나는 나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나의 잘못된 선택과 나의 왜곡된 판단으로 화재를 더 키워버린 결과를 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조금만 더 자라면... 이 아픈 상처들이 모두 나아 새 살이 돋을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를 포함해서 초등학교까지 전학을 총 3번을 했다. 학교 부지 이전까지 합하면 학교 주소만 4번이 바뀐 셈이다. 어렸을 적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학을 많이 다니면 공부를 잘 못하거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응될 만하면 옮기고, 적응될 만하면 옮기고 하니까 말이다.


이것으로 나의 학업성적을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나, 학교 다닐 때 공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부모님께서 학습지 선생님을 붙여주기도 하시고, 책도 많이 읽어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나는 종이 접기나 장난감 놀이에 관심이 더 많았다. 종이접기를 너무 좋아해 내 방에 작품들을 100개나 만들어 전시해 놓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교 후에 혼자 종이접기를 하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6살 터울인 여동생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놀이터에 데리고 가거나 집에서 놀기도 했다. 아버지는 당번과 비번이 반복되는 근무 형태라 집에 잘 계시지 않았고, 어머니도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탓에 늘 동생과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여동생은 아버지가 근무하는 소방서 근처에 있는 유치원에 다녔다. 초등학생의 짧은 걸음으로 유치원까지 가면 대략 20분 정도가 걸렸고, 아버지 사무실에 들러 1,000원짜리 한 장씩 받아오곤 했다. 어머니는 저녁 늦게 들어오시는 경우가 많아 그 돈으로 라면을 사서 같이 끓여 먹고 잠이 들나 빈 속으로 잠들곤 했다.


책을 많이 읽을 것을 주문하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위인전기를 조금 읽기는 했는데, 아버지가 볼 때만 읽는 척하고 돌아서면 장난감이나 가지고 놀았다. 사실 아버지에게 잘 보여야 용돈을 받거나 칭찬을 받으니 집에 계실 때만 하는 척을 많이 했었다. 학습지도 딱 계실 때만 하는 그런 영악한(?) 소년이었다.


하루는 학교에 갔더니 분위기가 평소와 사뭇 다른 적이 한 번 있었다. 하도 이상해서 옆에 앉아 있는 친구한테 물어보니 "야, 니 오늘 시험인데 모르?" 며, 낄낄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시험 날이었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 시험을 친 기억이 없을 정도로 공부에 정말 관심이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반에서는 뒤에서 5등 안으로 늘 놓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딱 하나!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성적이 저조하면 매를 맞았다는 것이다. 중간고사 성적과 비교해 기말고사 성적이 떨어지면 원하는 부위(?)를 골라 맞는 방식이었다.


공부를 하기 싫기는 한데, 공부를 못한다고 맞기까지 해야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다만, 나이 40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그 선생님이 그립다. 정겹게 웃으시면서 매를 드는 그 모습이 지금은 너무 그립다. 2학년 내내 맞지 않기 위해 제일 쉬워 보이는 도덕이나 체육, 음악 같은 과목을 골라 억지로라도 공부를 하게 했으니 말이다.


어느덧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해가 바뀌면 지난날의 과오를 덮고 새로 시작할 수 있듯이, 중학교 3학년이 되면 나도 새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언제까지 공부 못하고 맨날 학교에서 잠만 자는 그런 아이가 아니라, 공부도 조금 하고, 친구들 하고도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역시 학원에 가서 배워야 하는 것일까. 사촌형님과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이 있어 학원비를 물어보았다. 종합학원이라 그런지 몰라도 생각보다 비쌌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가장 기분이 좋은 순간을 기다렸다.


때가 왔다. "아빠... 저... 학원 보내 주시면 안 돼요?"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공부라고는 안 하고 속이나 썩이고 다니는 녀석이 갑자기 학원이라니, 하지만 기대도 잠시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아직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학원비가 비싸다며 거절하셨다.


당시 중1 때 시작한 온라인 게임을 중2 때까지 폐인처럼 해 댔으니, 아버지가 공부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믿어줄 리 없었다. 날 밤을 새우고 학교에 가 잠만 자는 그런 녀석이었다. 다행히 중2 여름방학을 기점으로 모든 게임을 끊었지만 한 번 무너진 신뢰는 회복되기 참으로 힘들었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었다. 학원에 한 번 찾아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중학교 2학년 꼬맹이가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 카운터 앞에 직원분께 말씀드렸다. "저... 여기 학원 원장선생님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응??? 누구니 너는" "아, 저는 00 형님 사촌동생인데요. 학원에 다니고 싶어서요. 원장님도 만날 수 있을까요?" "아... 응응, 잠시만" 그분은 대뜸 원장님을 만나게 해 달라는 내 요구에 당황하면서도 뭔 일이지 싶어 원장실에 원장님이 계신지 확인을 했다. "어이~ 학생 이쪽으로 들어올래?" 드디어 원장님 실이다.


"안녕하세요" 원장님께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단발머리의 온화한 미소를 띠고 계시는 원장님께서 어쩐 일로 왔냐고 물었다. "저는 중학교2학년인데... 공부를 너무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쉽게 허락을 안 해주셔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원장님은 내가 진로 상담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말을 이어갔다.


"원장님... 그... 학원비를 좀 깎아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보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대신에... 대신에 저 공부 진짜 열심히 해서 학원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냥 질러버렸다. 갑자기 원장님의 표정이 싹 바뀌면서 정적이 흘렀다. '망했다...' 나는 어른을 놀린 죄로 혼이 나거나 쫓겨나지는 않을까 순간 걱정에 휩싸였다. 몇 초나 지났을까.


갑자기 원장님 밝고 크게 웃으시며 내게 말했다.


"00이라고 했지? 대단하네~ 너 그럼 내가 학원비는 네가 원하는 대로 00만 원에서 00만 원으로 깎아줄 테니까 열심히 하겠다고 나랑 약속해. 알겠지?"


"네!!!"


"김 쌤 ~ 이 학생 등록하러 오면 나한테 이야기 좀 해줘~"


너무 긴장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리고 말았다. 벌벌 떨며 학원을 나서는데,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할지가 문제라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래 학원원장님도 설득했는데, 까짓 껏 한번 해보자.' 최종보스 아버지께서 집에 계실 때, 기분이 조금 괜찮은 순간을 노렸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아빠, 학원비 깎았으니까 저 학원 보내주세요. 진짜 공부 열심히 할게요"


학원에 가서 원장님을 만나고 학원비를 깎고 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다음 학기 성적으로 보여주겠다고 거짓말 같지만 진심을 담아 말씀드렸다. 허락이 드디어 떨어졌다.


"그래, 한 번 해봐라"




이후 정말 나는 중3 첫 시험에서 최하위 성적을 상위권으로 올릴 수 있었다. 물론 2학기말까지 꾸준히 잘했던 것은 아니지만, 중간 이하로 처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그 강렬했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때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흔쾌히 나를 받아주셨던 원장님께 인사드리고 싶지만, 철없이 세월을 보내느라 인사를 따로 드리지 못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 뵙고 싶다.  





나에게는 도저히 기회가 없고, 끝났을 거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삶과 이 환경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제 정해졌으니 도저히 바뀔 수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생각보다 세상은 그리 굳어있지 않다. 내가 마음먹은 만큼, 내가 설정한 방향만큼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나는 누구라도 자기의 인생이 하찮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헛된 망상만 아니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믿는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고, 지금까지 나를 살고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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