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조별예선에서 3경기 2승 1패, 10득점 1실점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8강에 진출했지만 북중미의 축구 강호 멕시코를 만나 패하며 올림픽 일정을 마무리했다.
김학범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대회에 앞서 “도쿄 올림픽에서 사고 한 번 치고 싶다.”고 말하며 출사표를 던졌다. 조별예선에서 대표팀이 보여준 화끈한 공격 축구는 팬들의 기대를 올리기에 충분했지만, 8강 멕시코전에서 6실점이라는 우리나라 역대 올림픽 축구 최다실점 기록과 더불어 최악의 경기력을 펼치며 다른 의미로 ‘사고’를 쳤다.
원두재를 중심으로 한 후방 빌드업과 발이 빠른 측면 공격수들을 활용한 공격 축구를 시도했던 조별예선과는 다르게 멕시코전에서는 김학범 감독이 준비한 전략에 대한 의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김학범 감독과 우리나라 대표팀이 멕시코전에서 보여준 문제점들은 크게 세 가지다.
1) 선수들의 특성과 구성을 고려하지 않은 빌드업 방식
대표팀 후방 빌드업의 주축 선수인 원두재는 선발로 출전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골 킥 상황에서는 송범근부터 빌드업을 시작하며 후방 빌드업을 시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공을 받은 센터백은 곧바로 전방으로 길게 패스를 보냈다. 최전방의 황의조는 제공권에서 강점이 있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힘겹게 제공권 싸움을 했으며, 우리나라에 비해 선수들 사이의 간격을 더 촘촘하게 유지했던 멕시코에게 번번히 세컨볼을 뺏겼다. 이렇게 소유권을 너무 쉽게 넘겨주는 장면이 반복됐다.
후방 빌드업을 제대로 시도하지 못한 이유는 선수들의 포지셔닝에도 있었다. 보통 센터백이 공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3선 미드필더 혹은 풀백이 센터백과 가까이 이동하며 공을 받을 위치로 움직이거나, 상대의 압박을 유도해 다른 방향으로 패스를 보낼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한다. 하지만 3선의 김동현과 김진규는 공을 받으러 내려오지 않았고, 양쪽 풀백인 설영우와 강윤성은 센터백이 패스를 보내기에는 너무 높은 위치에 있었다. 이렇게 선수들이 애매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을 때마다 결국 제공권에 강점이 없는 황의조에게 긴 패스를 보내며 공격수들의 스타일에 적합하지 않은 공격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
오히려 효율적인 롱 볼 공격을 활용한 팀은 멕시코였다. 멕시코는 자신들이 세컨볼 경합에서 우위에 있다는 점을 파악하고, 공격 시 라인을 높게 올려 긴 패스로 공격을 시작했다. 수비 지역에서도 세컨볼을 제대로 따내지 못한 우리나라는 대부분 하프라인을 넘어선 위치에서 멕시코의 공격을 막아야 했다.
만약 우리나라가 롱 볼을 활용하려고 했다면 후반 8분 김동현이 시도한 측면을 향한 롱패스와 같은 패스들을 시도해야 했다. 최후방에서 전방에 황의조의 머리를 향해 한 번에 보내는 패스보다는 김진야와 이동준의 속도를 믿고 공간으로 투입하는 패스, 그리고 수비 상황에서 한 쪽 측면에 선수들을 순간적으로 많이 배치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압박의 밀도를 높이는 멕시코의 수비 방식을 고려해 압박이 강해지기 전에 전환 패스를 시도해야 했다. 또한 너무 낮은 위치에서 패스를 했고, 패스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패스의 체공시간이 길어 멕시코 수비진들이 여유롭게 공중볼에 대처할 수 있었다.
2) 아쉬웠던 수비진의 수비 능력과 판단
멕시코는 중앙 미드필더들이 꾸준히 상대 수비라인 사이로 침투해 순간적으로 공격 숫자를 늘리며 수비수들의 판단을 흐려지게 하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이에 대한 우리나라 수비진의 대처는 미흡했다. 수비수들은 대인 마크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비라인이 높은 위치까지 올라온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앞에 있는 선수를 압박하기 위해 뒷공간을 비운 채 전진했다. 공간 침투에 강점이 있는 멕시코 미드필더들은 이렇게 발생한 공간으로 침투했고, 드리블이 뛰어난 멕시코의 측면 공격수들은 자신들이 드리블해서 전진할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공간에 대해 신경을 제대로 쓰지 않았던 수비진의 태도는 결국 멕시코의 두 번째 득점으로 이어졌다. 박지수가 멕시코의 공격수 헨리 마르틴을 견제하기 위해 움직이며 박지수와 강윤성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는데, 이 틈을 포착한 루이스 로모의 침투를 막지 못하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3선 미드필더들의 수비 가담과 수비 라인 사이에서 마킹에 대한 소통과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소통 부재의 문제는 경기 내내 보였다. 후반 33분에도 멕시코의 에즈퀴벨이 공을 몰고 전진하는 역습 상황에서 정태욱과 설영우가 서로 수비를 미루며 에즈퀴벨의 드리블을 지연시키지 못했다. 박지수는 선수를 압박하기 보다 상황을 주시하며 공간 커버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에즈퀴벨과 가까이 있었던 정태욱이 압박을 하고, 설영우가 박스 안으로 복귀하며 정태욱의 자리를 커버하는 움직임이 필요했지만 결국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두 선수 모두 애매한 위치에서 수비를 하게 되며 에즈퀴벨에게 넓은 공간을 내줬다.
수비를 미루며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상황은 반복됐다. 멕시코의 6번째 득점 장면에서 정태욱과 설영우는 아귀레와 앙굴로를 신경 쓰지 않은 채 돌파해 들어오는 라이네즈만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네즈의 훌륭한 드리블 능력이 만들어낸 득점이었지만, 아귀레를 신경 쓰지 않고 공을 가진 선수만 보고 있었던 점은 아쉬웠다. 또한 설영우의 뒤에 있던 앙굴로는 견제하는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공을 받을 수 있었다.
멕시코의 측면 공격수들은 1대1 상황에서 강한 선수들이다. 설영우와 강윤성은 경기 내내 멕시코의 측면에 출전했던 베가와 안투나를 상대하며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특히 베가는 드리블 돌파 4회를 기록하며 경기에서 드리블을 가장 많이 성공한 선수가 됐다. 풀백들이 수비 상황에서 힘들어했지만 김진규와 김동현은 적극적으로 협력 수비를 펼치지 않았고, 이동준과 김진야도 수비에 가담하는 횟수가 적었다. 그리고 3선 미드필더들과 윙어들이 수비에 가담했을 때에도 확실하게 공을 뺏지 못하며 오히려 더욱 위협적인 장면이 나왔다.
3) 김학범 감독의 선수 기용에 대한 의문
원두재의 부재로 후방 빌드업에 어려움을 겪고, 롱 볼을 활용한 공격 전개는 효과적이지 않자 김학범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원두재를 투입했다. 3선의 김동현과 김진규, 그리고 왼쪽 풀백으로 출전한 강윤성을 빼고 권창훈과 엄원상을 기용하는 공격적인 용병술을 감행했다. 원두재의 교체 투입은 성공적이었으며, ‘원두재 효과’로 인해 우리나라는 전반전보다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김학범 감독은 온두라스전에서 후반 25분에 체력 안배를 위해 원두재를 교체했는데도 불구하고 멕시코전에 선발로 기용하지 않은 점은 의아했다.
원두재의 출전으로 우리나라는 드디어 후방 빌드업으로 공격을 풀어나갈 수 있었다. 김동현과 김진규와는 달리 원두재는 멕시코의 압박 상황에서도 전진 패스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1번 사진) 수비 상황에서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4번 사진). 멕시코의 미드필더 코르도바는 원두재를 거쳐가는 빌드업을 견제하기 위해 압박을 시도했는데 이 과정에서 생긴 넓은 공간에서 권창훈과 이동경이 공을 받을 수 있었다(2번 사진). 롱 볼로 전개를 하더라도 코르도바가 전진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반전에 비해 세컨볼을 따기 수월했다(3번 사진).
또한 세부 전술의 다양성도 늘어났다. 전방에만 머물러 있던 황의조는 공을 주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시도할 수 있었는데, 이는 원두재의 원터치 패스 능력 덕분이었다. 위 사진은 후반 32분 황의조가 멕시코 수비를 끌고 내려와 원두재에게 패스하는 장면이다(1번 사진). 황의조가 수비를 끌고 오면서 생긴 공간으로 이동준이 침투를 시도했지만(2번 사진) 멕시코의 미드필더 에스퀴벨의 커버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유의미한 시도였고, 원두재의 후반전 투입으로 이런 시도를 전반전부터 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원두재의 투입이 좋은 결과만 가져오지는 않았다.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있던 전반전과는 다르게 후반전은 수비 라인을 보호하는 선수가 원두재밖에 없었는데, 원두재는 일대일 수비 능력이 부족한 설영우를 돕기 위해 자주 측면으로 끌려 나갔다. 멕시코는 이 점을 활용해 원두재가 비운 공간과 하프 스페이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고 결국 후반전에도 3실점을 허용했다. 하지만 답답했던 공격 전개 방법을 바꿨다는 부분을 고려한다면 원두재는 전반전부터 필요했던 선수였다.
원두재를 선발로 출전시키지 않은 점 외에도 김진야를 윙어로 기용했지만 수비 가담을 지시하지 않아 멕시코의 측면 공격을 견제하지 못한 점, 엄원상을 교체로 투입했지만 26분 뒤 이강인과 다시 교체시킨 점, 후반 36분 득점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수비수인 김재우를 투입하는 판단 등 김학범 감독의 선택들 중에는 아쉬운 선택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