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수
홍양은 참 잘 흘리고 다닌다.
물이나 음식 얘기가 아니다.
지갑, 핸드폰, 차키 등을 가지고 외출을 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는 본인만 이동한다.
다른 장소에서 열심히 찾아본들 나올 리가 없다.
그때마다 나는 얘기한다.
"제발 나를 그렇게 흘려봐."
그러면 홍양은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넌 네가 알아서 따라오잖아."
이쯤 되면 나는 가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나를 잃어버릴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신뢰일까, 아니면 내가 반드시 찾아올 거라는 당연함일까.
지갑이나 차키에 센서를 달아 주인이 움직이면 자동으로 따라오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슷한 기술은 이미 있다.
손목에 묶여 주인과 항상 함께 움직이는 스마트워치와, 그 워치로 소리를 울릴 수 있는 전화기가 그렇다.
물론 일정 거리 안에서만 가능하지만, 적어도 집 안에서는 매우 유용하다.
홍양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기술이다.
우리 아파트는 연식이 20년이 넘은 오래된 건물이다.
어느 날, 아래층 노부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관 천장에서 물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확인해 보니 우리 집에서 누수가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린 주말 부부라 나는 서울에 있고, 이 상황을 울산의 홍양에게 알리고 해결책을 논의하려고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학원 수업이 끝났을 시간인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니 점점 걱정이 밀려왔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서서히 무거워짐과 동시에 스트레스 지수는 올라갔다.
결국 홍양과 연락이 닿았는데 학원에 전화기를 두고 바로 운동하러 갔다는 것이다.
또 전화기를 흘리고, 장소를 이동한 것이다.
순간 걱정과 불안이 모두 헛되게 느껴지면서도, 그녀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논리 앞에서 한숨만 내쉬었다.
누수는 물리적인 문제였지만, 나는 홍양이 흘리고 다니는 물건들과 이 상황을 연결 짓게 되었다.
물이든 흘러가던, 물건이 흘려지던 그 자체로 귀찮거나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출처: 나의 누수 일지 (도서)
누수가 발생한 집과 흘린 물건, 연락되지 않는 전화기, 그리고 늘 한결같은 홍양.
모두 서로 다른 문제 같지만, 결국 흘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행히 누수는 심각한 상황이 아니어서 전문가를 불러 깔끔히 해결했지만, 한결같은 홍양을 깔끔히 해결해 줄 전문가는 없다.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제발 나를 흘려"라고 말한다.
그녀는 변함없이 "넌 흘려도 알아서 돌아오잖아"라고 대답한다.
나는 홍양과 어디를 가거나 이동할 때 항상 주위를 살피는 습관이 있다.
흘림을 당해도 나 혼자 돌아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 많은 확률로 홍양이 흘린 물건 무언가와 함께 그녀 옆으로 다시 간다.
주인이 공을 던지면 쫓아가서 물고 다시 오는 강아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