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 아내와 ISTJ 남편이 사는 얘기

달리기

by namddang

지난 주말, 홍양이 바쁜 일이 있으니, 울산 오지 말고 서울에서 쉬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랜만에 한강을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달리는 동안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나중에 달리기를 끝낸 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성수대교와 동호대교 구간에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마치 하늘이 내 달리기가 끝날 때까지 잠시 비를 멈춰준 것 같아 괜스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토요일 새벽 4시 30분에 기상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5시부터 강북 영동대교 근처에서 서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일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나 같은 사람이 드문드문 있었다.

반포대교에 가까워질수록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은 조금씩 물러났다.

비 소식이 있는 날이라 회색 구름과 하얀 구름이 마치 도화지 위에 흩뿌려진 유화처럼 두껍게 펼쳐져 있었고,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잠시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했다.

날이 더 밝아지자 다리 밑으로 흐르는 한강물이 눈에 들어왔다. 나만의 착시일까? 강물이 마치 거꾸로 흐르는 듯 보였다. 그런데 잠수교를 달리다가 우연히 교각 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교각과 부딪히는 물을 보면서 본래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누가 뭐래든 강물은 그저 본래의 길을 간다. 그 진중함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리는 동안 이런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떤 생각은 꼭 붙잡아두고 싶었지만, 달리기가 끝나면 대부분의 생각은 꿈처럼 사라지고 만다. 메모라도 하고 싶지만, 그 순간 어쩔 수 없다. 아쉽다.


날이 완전히 밝아오자 여기저기서 러닝 모임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몸을 풀면서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스치듯 바라보며 나는 계속 달렸다.

그날의 목표는 영동대교에서 시작해 잠수교를 건너 유턴한 뒤 다시 영동대교로 돌아오는 22km 완주다.

지난주에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글을 썼는데, 이날은 이상하리만큼 컨디션이 좋았다. 잠수교 오르막길도 거뜬했다. 단 한 번도 걷지 않고, 5분 40초대의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며 달렸다.

달리면서 '항상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라고 문득 생각했다.


지난 한 주간 나는 4km, 3km, 7km를 달렸고, 이번 22km를 포함해 총 36km를 채웠다.

​이번 일요일에는 10km 마라톤 대회가 있고, 10월 중순에는 하프 마라톤이 예정되어 있다.

대회를 앞둔 이번 주는 러닝머신에서 가볍게 5km를 한 번 뛰고, 나머지 날에는 스쿼트로 근력을 다지며 준비할 생각이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나는 왜 마라톤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는 "나는 팀 경기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마치 내 얘기를 대신해 준 것 같아 놀랐다.

젊었을 때, 나는 테니스 레슨을 꽤 열심히 받았다. 그러나 테니스는 늘 상대가 필요하다. 게다가 상대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강해, 어지간히 친한 사람이 아니면 함께 치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코트에 나가는 날이 줄었다. 지금은 전혀 치지 않는다.

골프 역시 비슷한 이유로 시작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루키 작가가 말한 것처럼 마라톤은 그럴 염려가 없다. 마라톤은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 오롯이 나와의 싸움일 뿐이다. 그래서 마라톤이 좋다.

아마도 이러한 감정 때문에 하루키 작가의 글이 마음 깊이 닿았던 것 같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의 다른 에세이 세 권을 추가로 주문했다.


하루키 작가가 말했듯이 그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나도 강한 'I'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혼자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30여 년간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관계는 친구도 되고, 적도 되면서 늘 변했다. 이제는 그 관계들을 위해 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영원한 동반자인 홍양만 곁에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읽고, 쓰고, 걷고, 달리면 충분하다. 그리고 가끔 한 잔도 포함. 홍양도 나랑 같은 생각이라 믿는다.

달리고 나면 머릿속은 한결 가벼워진다.

좋은 도파민 중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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