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 아내와 ISTJ 남편이 사는 얘기

직장생활

by namddang

9월 첫째 주 금요일 오전. 사무실에서 회의가 한창일 때 카톡이 왔다.

"저 OO기술사 땄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 정진해서 내공을 기르겠습니다!"

메시지를 읽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3년 전에 개인 사정으로 다른 회사로 이직한 후배의 기쁜 소식이었다. 축하 인사를 건네며 '한턱 쏴라' 답하자, 다다음 주에 자기가 서울 출장이 있으니 그때 저녁을 함께 하자고 답장이 왔다.


그 후배는 내가 팀장일 때 직접 면접을 보고, 경영층을 설득해서 입사를 시켰다. 오지랖이 넓고, 업무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천재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본기가 탄탄했고, 꾸준히 노력해 결국 좋은 성과를 내던 친구다. 함께 협업했던 옆 부서 사람들도 그 후배를 좋아했다. 함께 일을 해보면, 적극적이고 열정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표시가 난다. 그런데 회사가 서울로 이사하면서 그 후배는 개인 사정으로 함께 올 수 없어 이직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안타깝다.


그 후배 소식을 들으니 그 시절 함께 했던 팀원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당시 나는 신설 팀의 첫 팀장이었다. 팀원은 여섯 명 정도였고, 대부분 신입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를 따르라'는 스타일로 팀을 끌어갔다. 내가 전체 방향과 세세한 업무까지 모두 챙기고, 팀원들에게는 부분적으로 업무를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개별적으로 모두 똘똘한 친구들이었으나, 회사 일은 학교 공부와 다르다. 마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야구 스타가 프로 무대에서 바로 주전으로 뛰기 힘든 것처럼 바로 실무를 해내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팀원들에게 하나하나 과외하듯 업무를 가르쳤다. 사실 그때 나도 신임 팀장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 잘 모르기도 했다.

지금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일은 맡기고, 큰 흐름만 관리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구성원들의 성장을 위해서도 그게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식 덕분인지 그때 팀원들과 사이는 각별했다. 우리는 마치 조교와 학생 같았다. 팀원들이 모두 미혼이던 시절이라 야근을 마치면 홍양까지 불러 함께 소주 한잔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주말에 집에 안 가는 팀원이 있으면 바닷가로 데려가 함께 고기를 구워 먹기도 했다. 서울이 아닌 지방의 기숙사 생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월이 흘러,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하게 성장했다. 한 명은 국립대학 교수가 되었고, 다른 후배들은 회사의 중요 부서에서 핵심 인재로 컸다. 그리고 연락 온 그 후배는 회사 업무를 병행하며 기술사 자격증을 땄다.


가끔 그들과 커피 타임을 가지거나 식사를 할 때면 그들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한다.

"팀장님 밑에서 배운 걸로 지금까지 밥벌이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 밑에 들어온 신입들을 가르치다 보니 그때 팀장님 심정이 이제야 이해돼요."

그럼 나도 "그때 너희 코흘리개들 키우느라 힘들었다."라고 농담으로 대꾸한다.


회사의 만남은 학교의 그것과 다르다. 퇴사하면 남이다.

더욱이 나는 ISTJ라 남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늘 업무 중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하고서도 여전히 연락을 하는 후배들을 보면 나름 보람 있는 회사 생활을 한 것 같다.


기술사를 딴 후배와 수서역 근처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했다.

그리고, 그 후배는 바로 SRT로 내려갔다. 그날 자리는 축하의 의미로 내가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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