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댑싸리
토요일 아침, 베란다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햇살 속에 여인초를 바라보면서 홍양과 식탁에 앉아 모닝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홍양이 커피잔을 들면서 말했다.
"이따 점심 먹고 슬도 갈래? 거기에 댑싸리가 이쁘다고 하던데 보러 갈까?"
"댑싸리? 그게 뭐야?" 내가 물었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화초 같은데 예쁘게 잘 꾸며 놓았다더라."
슬도를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를 한다.
슬도는 울산 방어진항 끝자락에 작은 무인도 바위섬이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거문고 소리가 난다 하여 한자로 큰 거문고 슬, 섬 도를 써서 '슬도'라 부른다고 한다. 섬이라지만 방파제로 연결되어 걸어갈 수 있고,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다.
우리는 일부러 차 대신 버스를 탔다. 가을을 느끼기 위해 많이 걷고 싶었다. 방어진항과 동진항을 지나며 보니 고깃배와 낚싯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었다. 슬도에 와서 먼바다를 보니 바람이 세서인지 파도가 높았다. 그제야 왜 많은 배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는지, 회센터 수조에 생선이 많지 않았는지 알았다. 바다는 오늘 출항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슬도에 도착했지만, 정작 댑싸리가 보이지 않았다. 둘러보니 그 화초는 슬도 맞은편, 대왕암공원 초화단지에 붉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 본 댑싸리는 몽글몽글한 모습이었고, 모여 있으니 엠보싱 화장지처럼 올록볼록하게 보였다. 진한 붉음과 연한 붉음(거의 노르스름하다)이 아름답게 뒤섞여 있었다. 글자 그대로 울긋불긋이다. 하늘을 덮고 있는 구름과 화물선들이 떠 있는 바다, 팜파스와 댑싸리 군락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을 우리는 아무 말없이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함께 손을 잡고 대왕암공원 쪽 해변 산책로를 걸었다.
해변의 소나무 숲 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 노랗게 피어 있는 국화, 오른쪽에는 탁 트인 동해 바다를 보면서 우리는 한참 걸었다. 이게 바로 '힐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대왕암공원을 지나 일산해수욕장에 닿았다.
지명이 낯선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아래 지도를 첨부하였다.
처음 울산에 왔을 때도 그랬지만, 이곳 풍경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지중해 풍경 못지않게 감탄을 자아낸다.
일산해수욕장 초입 횟집 수족관에서 킹크랩이 눈에 들어왔다.
홍양은 "비싸잖아."라며 망설였지만, 지난주 결혼 29주년을 그냥 지나쳤으니 오늘 특별한 외식을 하자는 나의 제안에 못 이기는 척했다.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홍양은 "토요일 오후에 낮술이 최고지." 하며 소주병을 흔들고, 뚜껑을 돌렸다.
홍양이 좋아하는 바닷게고, 오랜만이라 그런지 입술에 게살이 묻은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 순간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거품키스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을 여기서 시도하다가 게껍데기로 맞을 것 같아 손으로 떼줬다.
가을 오후의 바닷바람은 시원하면서 쾌적하였다. 게다가 적당히 걸어 출출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바닷게도 먹고... 술이 술술 들어갔다.
게껍데기를 넣은 라면과 내장 볶음밥으로 마무리했을 땐, 이미 바깥은 어둑해져 있었다.
배부른 우리는 또 걸어가기로 하였다. 오늘 하루 약 18km, 23,000 여보가 넘게 걸었다. 배 부르게 많이 먹었어도 위안이 된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가을 바다 냄새와 붉은 댑싸리 잔상이 마음 한편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