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두는 죽음 vs 숨기고 감추는 죽음

by 비움


사라진다는 것


인간은 소중한 것을 가까이에 두고 싶고, 싫은 것은 멀리하고 외면한다.

하지만, 때로는 가장 두려운 것마저 곁에 둘 때 오히려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부모님과의 ‘떨어짐’이었다.

지금도 생생한 감정인데, 부모님이 시골에 잠시 주말에 다녀온다고 하시면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집에 동생과 단둘이 남았던 날.

둘이 붙들고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당시의 나는 죽음이 뭔지도, 영원한 이별이 뭔지도 몰랐다.

다만 한 여름밤. 시골집 모기장 안에 4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자다가,

불안한 마음에 문득 일어나 엄마를 덮고 있는 이불이 오르내리는지

눈을 희미하게 뜨고 확인하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때로는 검지손가락으로 엄마 코에 대고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그건 분명 ‘사라짐’에 대한 공포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이어령 선생님도 『마지막 수업』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죽음’이라는 단어는 몰랐지만

막연하게 느꼈던 것 같다.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공포였다.

이 ‘사라짐’은 몇 년 전 ‘마지막’이라는 단어로 내게 다시 찾아왔다.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다.”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수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다.

계기는 코로나였다.

외숙모가 1달도 되지 않아 손 쓸 틈도 없이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격리 병동에 면회조차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

그저 모든 상황을 전화로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삼촌, 사촌동생들,

그리고 마지막까지 가족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 버티던 외숙모.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다.”

내가 친척들을 통해 전해 들은 그 문자가 마지막이었다.


그 감정과 충격은 아직도 몸에 남아 있다.

20대에 겪었던 대학동기와 선배의 죽음,

할아버지·할머니의 장례와는 많이 달랐다.

마치 나에게 점차 달려드는 느낌이 훅훅 들어왔다.


그때 이후로 삶에 대한 내 태도는 조금씩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 삶으로 훅 들어왔다.





서툰 표현


우리 가족은 표현에 서툴다.

아무튼 서로를 좋아하지만 참 표현을 못한다.

엄마, 아빠, 동생, 나. 각자 자기 삶에 좀 더 충실한 편이다..

(MBTI가 없던 시절, 우리 가족 모두 AB형이라는 점은 다른이에게는 납득이 되는 설명이 되더라)


하지만 코로나 이후엔 이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악수 대신 포옹을 했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나는 그 어렵던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사랑해.”


죽음이 곁에 오자,

미뤄뒀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했다.

‘다음’보다는 ‘지금’ 움직여야 한다고.

그리고 그 ‘지금’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앞으로 체력은 떨어질 테니

지금 운동을 한 번 더 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소모하기보다

지금 무언가를 만들어보자.

죽음은 그렇게 나를 움직였다.






내리사랑


비가 완연히 내리는 봄.

오랜만에 가족들과의 산속의 캠핑장

밤안개가 깔리고 개구리울음으로 배경음이 깔린 모닥불 앞에서

나와 함께 시골 간 부모님을 걱정하며 울었던 동생이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부모님이 제일 소중했어.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그 우선순위가 바뀌더라."


맥주 한 잔 하며 나눈 이야기였다.


엄마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게 내리사랑이야.”


나는 아직 느끼지 못할 그 감정들을 조용히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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