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습관
때는 2017년 2월 즈음, 첫째 아이를 출산했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고 서툴렀던 초보 엄마가 된 나는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카페나 블로그 등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중구난방으로 제공되는 정보들 보다는 하나부터 열까지 정리가 되어 있는 책이 좋았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 바로 남편과 나는 서점으로 가 육아 대 백과사전을 구입해 전공서적 공부하듯 마냥 정독했었다. 육아 대백과사전을 다 읽고는 유명한 육아 에세이들을 빌려 책에 코를 박고 읽어 내려가다 공감이 돼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들, 읽었던 내용들 중에 매일 잠자기 전에 책을 읽어줘라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아이에게 매일 잠자리 전 규칙적인 습관을 만들어주면 수면 교육에 좋다고 해서 열심히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아이에게 큰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첫째한테는 유난히 책을 많이 읽어 주었다. 실은 엎드려서 놀이할 때 가장 에너지가 덜 드는 놀이가 책 읽어주기여서 책을 자주 읽어줬던 것도 있다. 반면 둘째에게는 온전히 둘이서 노는 시간 조차 잘 주어지지 않아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강박일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고집했었다. 그 결과 지금 아주 올바른 첫째의 생활 습관이 몸에 배었지만, 한편으로는 일방적인 나의 양육방식에 서로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리고 아이가 조금은 아이답지? 않은 완벽주의 성향이 나올 때도 있어 고민이 들기도 했었다. 어릴 적부터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던 나였기에, 앞으로 첫째가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 많이 괴롭히게 될까 조심스럽게 걱정도 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건강한 방법으로 아이의 기질을 잘 발달시킬 수 있을지가 요즘 남편과 나의 주요 관심사이다.
그렇게 나는 첫째와 다섯 살이 된 지금까지 매일 여섯시즘에 저녁식사를 하고 목욕과 양치를 한 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의식을 치르듯 책을 두 권씩 읽고 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거나 인간적으로 너무 피곤하거나 하는 날에는 다른 놀이를 하고 넘어갔다.) 이렇게 읽히려고 하다 보니 집에 있는 책의 종류가 부족했고 가까운 시립 도서관으로 가 난생처음 도서대출 카드를 만들었다.
어릴 적 나는 당최 책이라고는 거리가 먼 아이 었다. 수업시간에 펼쳐놓은 교과서는 나에게 도화지이기도 했다. 여백의 미를 참을 수 없던 나였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던 아이는 자라 성인이되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야 독서의 즐거움을 알기 시작했다. 친구와의 약속시간이 남았던 어느 날, 우연히 큰 대형 서점에 들어가 무엇인가 홀리듯 집어 든 책을 들고 구석진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면서 시작되었다. 항상 달고 살던 이어폰은 귀에서 멀어져 가방으로 들어갔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책에 더 집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발소리, 작은 말소리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 어느새 들리지 않았다. 도서관보다는 서점을 좋아했었다. 서점은 비교적 더 소음이 있었고 일단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베스트셀러들을 보기 좋게 배열해 놓고 그때그때의 트렌드에 맞는 책들이 가득하다. 그런 점이 좋았다 트렌디 한 책들이 알아서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이를 낳기 전 서점이 좋았던 나였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그저 무료로 많은 책들을 보고 빌릴 수 있는 서점이 최고가 되었다. 그리고 항상 북적이는 상황 속에서 지내다 보니 그런지 조용한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도서관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만큼 엉덩이를 구석에 붙이고 있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사실은 근처 대형서점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시간을 내서 책을 가득 담을 수 있는 가방을 챙겨 도서관에 가서 읽을 책들을 고르고 검색해 카드의 바코드를 찍어 책들을 챙겨 나오는 이 행위가 왠지 모르게 뿌듯하기도 했다. 아마 스스로가 부지런하고 바른생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일까? 이 좋은 그림책들과 내가 읽을 책을 무료로 이만큼이나 가져올 수 있다는 기쁨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 다니는 엄마라는 ‘적당히 바른길로 모성애’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친정 엄마와 남편도 나의 이런 습관을 높이 평가한다. 하루에 두 권씩 적은 양인 것처럼 느껴져도 꾸준함이 쌓이면 거대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 일 것이다. 한번씩 엄마와 통화를 할 때에 아직도 매일 책을 읽어주냐고 물어본다. 요즘은 아직 책을 읽기에는 무리가 있는 둘째가 있어 일주일에 5일 정도는 읽어 준다라고 대답하니 그래도 많이 읽어주네 하며 칭찬해주셨다. 엄마에게 칭찬은 항상 귀하고 달콤하다.
앞으로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수 있을까. 요즘 한글을 조금씩 읽고 알아가고 싶은 첫째가 어느 순간 책을 스스로 읽게 된다면 더 이상 잠자기 전 책 읽기 행위는 멈출까? 아니면 첫째는 스스로 읽고 이제는 둘째에게 읽어주는 방식으로 변화될까? 생각해보니 아마 첫째가 책을 스스로 읽게 된다고 해도 엄마의 목소리로 듣는 책 읽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첫째가 태어나고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며 도서관에 다닐 때 기대하고 있는 날이 있다. 바로 딸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각자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내가 아주 초기에 그린 그림에도 그런 장면이 있다. 서점에 가서 등을 마주하고 정해진 시간 없이 책을 읽는 데이트. 아이들이 자라나도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아이 었으면 하는 엄마의 작은 욕심이 있다. 내가 미처 늦게 알아채버린 책이 주는 즐거움을 너희들은 더 일찍부터 느껴, 더 많이 누리도록.
독서를 즐겨하게 된 계기에 있는 몇 권의 책들이 있다. 그중 일등으로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이다. 민음사의 세계문학 전집 중 내가 읽은 첫 번째 책이다. 그 뒤로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말할 수 있다. 시간이 나면,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모래의 여자’는 꼭 읽어 볼만한 책이다. (얼마 전 갯벌로 바다 캠핑을 다녀왔는데 그때 오랜만에 ‘모래의 여자’가 떠올라 웃을 수 없는 해프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