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키카눈넝

근황

핑계

by 키카눈넝

둘을 키워 바쁘다는 핑계로 그림과 글을 멀리한 지 오래다. 글은 진작부터 블로그를 웹툰용으로만 바꾸고 난 후는 거의 쓰지 않았다고 봐도 무관하다. 예전에는 글 쓰는 게 참 재미있었는데 어느 새부터인지 오글거리기 시작하고 자꾸 읽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그런 후로 나의 글쓰기는 멈춘 것 같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재워놓고 남편의 키보드를 빌려 식탁에 앉았다. 나의 책상이 있기야 하지만 그 위는 온갖 잡동사니와 딸내미의 끄적이기 작품들이 무질서하게 놓여있다. 사실상 나의 공간은 모두가 잠든 더는 오늘 하루에는 식사 시간에 사용할 일이 없는 고요한 식탁이다. 그래도 이러한 시간이 생긴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요즘이다. 하나가 아닌 이제 둘이니 더 정신없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정말 어찌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다. 한 달 반 전부터 집 근처 파트타임 강사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더 빠르게 흘러간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바빠서 딱 하나 좋은 점이 있다. 바로 월급날이 생각보다 빠르게 온다는 점? 아직 첫 번째 월급뿐이지만 너무나 오랜만에 노동을 통해 돈을 입금받았다는 사실이 내가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아이들을 재우며 누워 생각한 내용을 글로 쓰러 왔다. 저번 주말 바닷가에 다섯 살 난 첫째에게 갯벌이란 곳을 체험해주기 위해 캠핑을 다녀왔다. 모래와의 전쟁이 실로 걱정이 되었지만 난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별생각 없이 떠났다. 남편도 최근 새로운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해 바빴고 나 또한 정신없는 평일들을 보내다 결국 아무런 준비 없이 금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다행히 둘째의 어린이집은 방학이 없었다. 그러나 첫째의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되어 남편은 첫째를 데리고 캠핑 준비를 혼자서 해냈어야 했다. 그것도 내가 일이 끝나는 4시 전까지 말이다. 아까도 말했듯 우리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금요일 출근 전 아이들과 우리의 옷을 간단히 꾸리고 세면도구와 수건 정도? 캠핑하는 동안 먹을 것들이 하나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걱정스러움을 뒤로한 채 나는 출근길에 올랐고, 남편은 지옥의 준비 시간이 시작되었다. 혼자서 그 많은 짐을 차에다 싣고 마트에 가서 무려 2박 3일 동안 먹을 음식 재료들을 골라 담았다. 심지어 우리는 메뉴를 정하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캠핑용품점에 들러 필요한 것들도 사고 코로나 검사도 했다고 한다. 대단한 남편.


계획상 나의 4시 퇴근과 함께 집에서부터 2시간 30분 떨어져 있는 태안의 어느 한 해변으로 출발하여 해지기 전 텐트를 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퇴근을 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와중에도 남편의 전화는 묵 묵 답답이였다. 당연히 하원 하는 둘째까지 데리고 나를 데리러 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 나는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반쯤 갔을 때 한가득 짐이 실려있는 차에 탈 수 있었다. 남편도 첫째 딸도 점심을 건너뛰고 열심히 준비했다고 했다. 이렇게 첫날부터 고난과 역경이 가득한 휴가가 시작되었다. 갯벌 체험도 좋았지만, 일요일 텐트 철수 날 이게 웬일, 비가 쏟아져 텐트와 모든 것이 쫄딱 젖었다. 물론 우리도.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었던 캠핑을 마치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가 놀기 좋아하는 첫째도 캠핑이 싫다며 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중에 들어보니 바다 캠핑이 싫다고 정정하여 한시름 놓았다. 아니었음 이때까지 캠핑용품에 투자한 돈이 아까워 눈물이 나올 뻔했다. 하여튼 그렇게 우리의 월요일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집에는 캠핑 장비들이 놓여 있고 화장실 욕조에는 모래가 가득한 수영복이 쌓여 있었다. 아 주방도 손을 못 댄 지 오래다. 정말 눈뜨고는 못 볼 지경이었다. 하지만 체력과 시간이 따라주지 않아 나는 이틀 동안 이 꼴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나에게 가혹한 벌이었다. 잘못이라곤 준비 없이 떠난 캠핑이었을까. 무식에서 나오는 용감함일까.

수요일 정도 되니 정신이 좀 돌아왔다. 아침에 둘째는 어린이집, 첫째는 가까이 사는 시댁에 맡기고는 집 청소를 시작했다. 일단 욕조에 씻어 말려 놓은 아이스박스들을 차례로 베란다에 옮기고 모래가 한가득 묻은 수영복들을 샤워기로 대충 털고는 울 코스로 세탁기에 돌려버렸다. 나는 도저히 이것들을 손으로 빨 자신이 없다. 내 손목과 시간과 허리를 투자하느니 새로운 수영복을 사겠다 싶었다. 사실 세탁기를 돌린다고 해도 외관상으로는 수영복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모래가 쏟아져 나와 세탁기를 고장 낼 걱정은 좀 되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생각이 걱정을 없애버렸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제자리로 돌려놓고 정리를 했다.


그러니 좀 살 것 같았다. 정리된 집안을 보니 내 마음이 정리되었다. 하 이제 됐다. 아직 오래된 반찬들로 가득 차 있는 냉장고가 한쪽 마음에 거슬리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건 됐다 싶었다. 내친김에 어제 이 와중에 또 부지런히 도서관에 가서 빌려온 나의 책들을 들여다보았다. 나를 위해 쓰는 찰나의 여유로움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조금은 행복도 했다. 청소와 정리를 하니 땀이나 아침부터 샤워했다. 선풍기를 쐬며 시원하게 책을 읽고 노래도 틀어 놓으니 힘들었던 나에게 보상이 되어주었다.


남편의 타자기가 너무 낮아 손목이 좀 아프다. 안 되겠다 나만의 타자기를 사야겠다. 나는 왜 이리 무엇을 사지 않으면 손이 근질근질한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새 장난감, 나의 옷 등을 검색하다 결국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잠자리에 든다. 다들 이렇게 사는가... 모르겠다. 하여튼 오늘은 오랜만에 글이라도 써서 위안이 된다. 이거 다 쓰고 책을 좀 보다가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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