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키카눈넝

더 큰 나무가 되어야겠다.

어른

by 키카눈넝



다섯 살이 된 첫째가 부쩍 겁이 많아졌다.

아는 것도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겁도 많아졌다. 엄마는 언제 죽냐는 질문부터 어른이 돼서도 모르는 게 많으면 어떡하냐는 등의 걱정이 산더미이다. 어른이 되기까지 너에게 많은 시간이 있으니 하나하나 차근히 배워가면 된다 하니, 본인은 잘 까먹는 스타일이라 모르는 게 많으면 어떡하냐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리고는 엄마도 할머니가 되면 이가 삐뚤삐뚤해지냐고 묻는다. 아마 무서운 마녀 할머니로 변할까 걱정인 모양이다.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너는 더 이상 이런 것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려다 삼킨다.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나이를 먹고 엄마 아빠는 늙는다는 것을 느꼈겠지, 앞으로 본인에게 주어진 삶이 어떠할지 감이 도통 안 오는 모양인데 뭔가 엄청난 게 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을까.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내가 10살 즈음 이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다. ‘나는 이제 세상을 알만큼 알았어. 10살이면 많이 컸고 나도 이제 다 안다고!’ 하지만 곧이어 11살이 되던 해에 다시금 깨달았다. ‘뭐야, 내가 아직도 모르는 세상이 가득하잖아?!’ 나의 어릴 적은 걱정도 많고 소심이었다. 엄마가 쓸데없는 걱정 좀 그만하라고 했던 것 같은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나는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제 보니 꾀나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아마 내 딸은 나를 닮은 게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는 어떠한 공포를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를 삼켰다.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날에도 나는 무엇인가에 쫓기듯 불안했다. 자꾸만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지금의 나는 왜 그땐 그렇게 멍청하게 불안하게만 살았냐고 나무라고 싶을 정도이다. 왜 그냥 모든 일에 덤덤하게 밝게 긍정적으로 살지 못했을까?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성인이 돼서야 불안한 마음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얼떨결에 되어버린 지금의 ‘어른’인 나는 더 이상 원인 모를 불안감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혹여나의 딸이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게 될까 마음이 쓰리다.

내 딸에게 나는 세상의 전부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내 딸이 나에게 두려움과 불안함을 말해올 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해 기대해도 될만한 인생이라 그러니 걱정 말라 어떻게 말을 해줄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갑자기 그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 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할 말을 찾지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이다. 딸이 성인이 돼서도 엄마는 아직도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른다고 한다. 노인이 돼서도 죽기 직전까지도 알 수 없는 게 삶인 것 같은데 내가 너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결국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하고 말한다.

“네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 엄마 아빠는 너의 곁에 항상 있을게. 아니 어른이 돼서도 네 곁에 있을 테니 걱정 마.”

아이는 조금은 안심이 되는 말이었는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잠에 들었다. 내 아이는 나와 같지 않고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본다. 다행히 남편이 모든 일에 덤덤하고 긍정적인, 별 걱정이 없는 성격이라 조금의 기대는 해보려 한다. 나의 단점은 닮지 않기를 바라며 어김없이 떠오르는 내일의 해가 오기 전,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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